[마을숲 이야기 3] 선농단
조선때 임금이 祭올리던 곳 500년 함께한 향나무 '기품'
왠만한 설렁탕 집이라면 한쪽 벽면에 커다란 그림을 한점 걸어놓고 있다. 그림 속에
는 돌에 괴인 무쇠 솥과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이 있다. 솥에서는 벌써 김이 모락모락 나
는 것이 군침을 돌게 한다. 설렁탕이다. 요즈음 설렁탕은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로 자리잡았지만 그것이 선농단(先農壇)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
다. 선농단이란 조선시대때 임금이 직접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가
뭄이 심할 때는 기우제를 지냈다. 임금은 선농제를 올린 뒤에는 직접 밭을 갊으로써 백성
들에게 농사일의 소중함을 알렸다.
임금이 주관하는 행사인 만큼 참여 인원도 많아 일시에 많은 인원을 먹일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해야 했다. 그래서 지혜를 모아 만들어낸 음식이 설렁탕이다. 설렁탕은 소 뼈
다귀를 고은 육수와 삶은 쇠고기, 그리고 소금만 있으면 된다. 이것들을 끓인 후 밥만 얹
으면 되고 식객이 많아지면 육수를 보충하면 그만이다. 맨 처음 설렁탕을 끓였던 곳은 어
디인가. 설렁탕의 원조, 선농단이 있는 곳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주택가 한가운데 지
하철 1호선 제기역에서 느티나무 거목들이 서 있는 길을 따라 북족으로 야트막한 고갯마루
까지 가면 나타난다. '제터고개'라 부르는 이 고개 오픈족에 선농단이 보인다. 어린이 놀
이터, 철책과 측백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안에는 제단의 초석만 남아 있어 어떤 행사를 햇
던 장소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매년 곡우(금년은 4월 20일)를 맞아 동
대문구청이 선농제향을 지내고 있으며, 제향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설렁탕
을 제공하고 있다.
선농단을 오랜 세월 외롭게 지키고 있는 나무가 있으니 천연기념물 제240호로 지정
된 향나무. 공식 명칭은 '서울 제기동 선농단의향나무'이다. 선농단 남서쪽 귀퉁이에 서
있다. 높이 10m, 가슴높이 72㎝에 달하며 정확한 나이는 알려지지 않으나 선농단이 1392
년 지어졌다는 역사와 관련지어볼 때 500여년은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긴 가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처져 가지마다 받침기둥을 세웠다.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농업이 사회의 한
족으로 밀려난 요즈음 인간이 아닌 나무만 옛 명소를 외롭게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가도 나무는 남는다. 식목일을 4월5일로 정한 것도 바로 성종이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갈
던 날을 기리기 위함이다. 우리 강산을 푸르고 아름답게 가꾸는 나무심기는 자자손손 이어
져야 할 것이다. [한국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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