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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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계림

[마을숲 이야기 4] 경주 계림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 탄생 전설



경주 김씨 탄강(誕降)설화의 무대였던 계림. 현재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많은 시민

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과거 경주에는 경상도에서 가장 많은 15개의 마을숲

이 있었다. 최원석 박사의 ‘영남지역의 비보’ 연구에 따르면 이 마을숲 중 11개가 현재

의 경주시내에 있었으며, 그 중 7개는 형산강의 지류인 북천과 서천의 범람을 막기 위한

수해방지림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숲으로는 진흥왕 5년(544) 대흥륜사를 건축하는 데 필요한 목재를 공급했

다는 천경림(天鏡林), 분황사에서 지금의 보문호뚝까지 북천변을 따라 5리에 걸쳐 숲을 조

성하였다 하여 명명된 오리수(五里藪) 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숲들을 볼 수가 없

다. 일제 강점기 때 이미 많은 숲이 훼손되었고 해방 이후 보문호와 덕동호가 건설되면서

북천과 서천의 범람을 막는 수해방지림의 기능도 불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림만

은 살아남았다.


계림이 오랜 세월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金閼智)가 이 숲에서 탄생했다는 전설 때문이다. 계림은 원래 시림(始林)이라고 불

리던 숲이었는데, 김알지를 담고 있던 금궤가 닭 울음소리와 함께 발견되었기 때문에 계림

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김알지의 6대손이 신라의 13대 미추왕이 되면서 이 설화

는 경주 김씨만이 아닌 신라의 설화로 발전되었고, 이후 오랜 동안 누구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이렇게 신화가 살아 숨쉬는 계림이 지금은 친근한 마을숲이 되었다. 화창한 일요

일 오후, 이곳을 찾는 이들은 자유로이 이 숲을 거닌다. 물이 흐르는 도랑과 야트막한 돌

담으로 주위와 구분된 계림은 그 담 높이만큼이나 문턱이 없다. 나는 이 계림에서 자유로

움과 넉넉함을 느낀다. 만약 사적 제19호인 계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둘레에 금줄을 치

고 오는 사람들을 막았다면 지금처럼 경주 시민과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계림은 경주의 수많은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이 숲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며, 매

일 조금씩 자라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계림의 주인인 나무들이 죽어간다면 어떻게 해

야 할까? 문화재 수리의 가장 큰 원칙은 원형보전인데, 이 숲은 매년 조금씩 그 원형을 바

꾼다. 다른 모든 문화유산은 훼손된 부분에 한정하여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수리하면 되지

만 숲은 다르다. 아무리 인간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도 죽어가는 왕버들, 느티나무, 회화

나무와 똑같은 나무를 만들어 심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계림의 주인은 자연의 순리대로 점차 쇠약해지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숲 사이에 어린나무를 심고 가꾸며 기다리는 것뿐이다. 기다림의 결과는 명확하

다. 이 어린나무가 자라 계림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경주를 찾은 우리 아이들을 변함없이

맞이하는 것이다. forestory@foa.go.kr [한국일보 게재]

선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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