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의 죽음과 융릉

     [사도세자]
     때는 조선 후기 문화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영조 때, 영조는 무수리 집안의 딸이며 숙종의 후궁인 이씨의 몸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천한 신분에서 태어나 열등 의식과 혹시나 세자에서 폐위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영조는 남 모를 편벽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사색당파의 회오리 속에서 힘들게 왕으로 등극하였고, 항상 모반과 반역의 당쟁속에서 그 자신 또한 수 많은 괴로움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영조와 중전 서씨(徐氏) 사이에서는 아들을 두지 못하였고, 정빈(靖嬪)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진종(眞宗)을 왕세자로 책봉하였으나 향년 10세에 죽었다. 그 뒤를 이어 영빈(瑛嬪) 이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었는데, 이가 바로 사도세자이다.

     영조는 그 후 김한국의 딸인 15세의 김씨를 중전으로 맞아 81세의 천수를 누리면서 신하와 백성들에게 인군(仁君)·현군(賢君)으로 칭송되었으나, 사도세자와는 친하지 못하였다. 세자는 어려서부터 영민하였으나, 그 성격이 괴퍅하여 여러 일로 영조의 성미를 건드리며 눈 밖에 났는데, 무수히 많은 일화가 전한다.

     어느날 세자는 궁궐 정원에서 호미로 개미집을 부수고 일일이 손으로 개미를 잡아 죽였는데, 이를 본 대신들은 '세자는 모름지기 어질어서 마땅이 하찮은 미물이라도 귀중히 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토록 성격이 괴퍅하고 모지니 장차 왕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하였다.

     한번은 영조가 매우 귀여워하는 외국의 개가 있었는데, 세자가 그 개를 못살게 굴자 그 개는 세자를 보고 짖으며 물려 하였다. 그러자 화가 난 세자는 감히 왕세자인 자기를 몰라 본다고 그 개를 즉석에서 칼로 베어 죽였다. 이 사실이 영조에게 알려지자 영조는 극도로 화를 냄은 물론 세자의 자질을 의심하였다.

     그 이외에 세자가 대행 왕의 직무를 수행할 때, 하루는 영조가 사랑하는 숙의 문씨가 남동생인 문성국을 병조 참의로 등용하여 줄 것을 왕에게 부탁하였다. 이에 영조는 대행 왕인 세자에게 검토를 부탁하였으나, 세자는 이 것이 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청을 거절하여 왕의 노여움과 더불어 숙의 문씨의 미움을 샀다.

     이 일로 대리청정에서 물러난 세자는 그 후로 더욱 분별을 잃고 고집스러워졌는데, 세자의 의대공포증(衣帶恐怖症)은 유명하였다. 이 증세는 한 번 입은 옷은 벗지 않고 계속 입으려 하는 일종의 정신병으로, 빨래와 왕의 알현을 위하여 반드시 옷을 바꾸어 입어야 하는데 세자는 고집을 부리며 벗으려 하지 않았다. 한번은 어느 궁녀가 세자의 옷을 갈아 입히려다

     세자가 밀어 젖히는 바람에 벽에 부딪쳐 죽은 일까지 있었다. 계속되는 꾸지람에 세자는 급기야 그 돌파구로 밤을 틈 타 몰래 담을 넘어 여승들과 동침하는 미행(微行)을 서슴치 않았으며, 평양까지 가서 기생과 술로 소일하고 왔다.

     이 때는 당파 싸움으로 조정이 시끄러운 상황이었는데, 나경언(羅景彦)의 상소로 세자의 미행이 낱낱이 밝혀지자 영조는 세자의 미행을 추궁하였고, 이 책임을 짊어진 영의정 이천보(李天輔), 우의정 민백상(閔百祥), 좌의정 이후(李후) 등이 연이어 자살을 하였다. 계속되는 세자의 파행과 남동생의 등용에 불만을 품은 숙의 문씨의 이간질로 영조는 더 이상의 자제심을 잃고 햇볕이 내려 쬐는 여름날 세자를 문초한 뒤, 뒤주에 가두고 밖에서 못을 박아 7일 만에 죽게 하였으니, 그 때 세자의 나이는 28세였다.

     이것이 전대미문의 극형으로 전해지는 사도세자의 죽음이며, 이 현장에는 11살 된 아들(뒤의 정조)이 할아버지인 영조의 옷을 부여잡고,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애걸하였으나, 영조는 끝끝내 손자의 애원을 무시하였다.

     [사도세자의 양주 묘]
     뒤주에서 비참하게 죽은 사도세자는 양주의 배봉산(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묻혔는데, 그곳은 휘경원(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의 묘로 순조의 어머니의 묘)의 오른쪽 산자락이었다.

     이 묘지가 흉지라는 소문을 세손 때부터 알고 있었던 정조는 임금이 되고 13년 되던 1789년 아버지의 무덤을 현재 화성의 화산 아래의 융릉으로 이장하였다. 풍수에 조예가 깊었던 정조는 1789년 박명원의 상소를 참고하여 이장을 단행했는데, 박명원의 상소에는 사도세자의 묘가 매우 흉지였음을 잘 나타내준다.

     <첫째는 잔디가 말라죽는 것이고, 둘째는 청룡이 뚫린 것이고, 셋째는 뒤를 받치고 있는 곳에 물결이 심하게 부딪치는 것이고, 넷째는 뒷부분 석축이 천작(天作)이 아닌 것입니다. 이로써 볼 때 풍기(風氣)가 순하지 못하고, 토질이 온전하지 못하고, 지세가 좋지 않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 더구나 뱀과 같은 것들이 무덤 주변에 똬리를 틀고 무리를 이루고 있으며 심지어 정자각 기와에까지 그 틈새마다 서려 있는데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당시 풍수사들이 사도세자의 묘가 흉함을 풍수의 이기론에 입각해 설명한 내용이 『홍재전서』에 전한다.

     〈묘에서 바라보면 수구가 亥破이고, 壬坎方의 내룡은 乾亥方과 午丁方에서 박환되어 일절이 내려와 卯方에서 입수하여 卯坐酉向을 놓았다. 坤申方과 艮寅方이 낮고 허하여 바람이 火氣를 보낸다. 물은 丁方에서 득수한다.〉

     [고제희의 풍수감결]
     사도세자의 묘 터는 백두산에서 뻗어내려 한반도의 근간을 이루는 백두대간의 한북정맥에 위치한다. 분수령(금강산 위쪽)에서 남서방으로 뻗어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의 지형을 이룬 한북정맥은 대성산(1175m)→광덕산(1046m)→백운산(904m)으로 장엄하게 솟구치면서 운악산을 지나 남서진하며 굴고개→국사봉→죽엽산으로 기세를 가다듬었다. 죽엽산을 지난 한북정맥은 남양주의 운악산에 이르러 한 지맥을 동진시키고, 힌 지맥은 왕숙천의 지류를 만나 전진을 멈춘다.

     휘경원이 자리한 터는 운악산에서 서진한 용맥이 왕숙천의 광릉쪽 지류와 팔야리쪽 지류가 합수된 지점으로 뻗어가던 중 147m의 봉우리에서 남진한 내룡에 자리잡았다. 자료에 따르면, 사도세자의 묘는 휘경원의 오른쪽 산자락에 위치했다고 하는데, 1/5,000축적 지도 상에서 『홍재전서』에 기록된 대로 亥破 卯坐의 내룡은 찾을 수 없다. 지도상으로 이곳의 물은 동남방으로 흘러빠지니, 서북방인 亥方으로 물이 빠진다는 것과, 이곳의 내룡은 남진하는데 동쪽에서 서쪽으로 용맥이 뻗었다는 기록을 참고하기 어렵다. 때문에 정확한 묘의 풍수적 입지는 기록과 지도상의 판단이 전혀 어긋나 현장을 답사해야 제대로 알 수 있다.

     [화산의 융능]
     이장할 장소로 선정된 화산의 전설
     융릉이 자리한 화산(花山)은 '꽃뫼'라고도 하는데, 높이는 약 100m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산을 하필이면 꽃뫼라고 한 데에는 화심(花心)이라는 처녀에 얽힌 슬픈 전설이 전하여 온다. 옛날 이 곳 화산 아랫마을에 이한백(李漢伯)이라는 홀아비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바닷가에 갔다가 물에 빠진 선녀를 구해 주었다.

     이 선녀는 지상의 꽃을 관리하는 여신으로, 억센 바람에 시달리는 절벽의 꽃 한송이를 구하려다 잘못하여 물에 빠진 것이다. 이한백은 그녀를 구하여 배를 타고 오는데, 그 배에 탔던 다른 사람이 그녀를 겁탈하려 하자 가까스레 그들을 물리치고 집으로 데려 오게 되었다. 그 선녀는 은혜를 못 잊어 그와 일 년 동안 동거하기로 하고 화산 중턱에 살림을 차렸다. 그들은 외부와 왕래를 끊고 집 둘레에 온갖 꽃을 가꾸며 행복하게 살았고, 선녀는 일 년 뒤에 예쁜 딸을 낳아 주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한백은 어미를 닮은 딸 화심(花心)만을 의지하며 살았는데, 그녀가 장성하자 구혼자가 문 앞에 늘어섰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청혼을 거절하고 오로지 병석에 있는 아비를 구완하려고 하였는데, 수원부사가 수청들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절개를 지켰고, 그 보복으로 참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화심의 목이 잘리자 땅에는 피만 남고 몸은 하늘로 올라갔는데, 아버지를 부르는 목소리가 멀어지면서 새빨간 꽃비가 내렸다. 이 꽃은 옛날 이한백이 선녀를 구해 줄 때 머리에 꽂혀 있던 바로 그 꽃으로, 그는 그 꽃송이를 주워 모아 그가 살던 오막집 옆에 묻었다. 그 꽃무덤이 바로 꽃뫼요, 사람들은 그 꽃무덤이 있던 이 산을 화산(花山)이라 불렀다 한다.

     [융능에 대한 정조의 평가]
     조선 제일의 명당으로 정조가 수원읍치를 옮기면서까지 사도세자의 능을 만든 융능에 대해 정조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1) 龍
     내룡이 외백호가 되어 청룡과 백호가 삼중으로 얽히고 본룡이 려러가지로 나뉘어 퍼져 사방으로 호위하며, 두 손을 마주잡고 읍을 하는 듯하여 안산과 조산이 되었으니, 광교산이 태조산이고, 오봉산이 중조산이고, 증악산이 소조산이다. 참으로 100여 리에 전일한 기운이 결집되어 만들어진 곳이다.(광교산→오봉산→증악산→고금산→홍범산→화산)

     (2) 穴
     穴星은 坎方의 봉우리가 腦가 되고 참된 기맥이 은은리 내려오다가 丑方에서 艮方으로 휘어 艮方에서 입수하였다. 혈은 乳房의 오양이고 그 아래에 窩形이 되어있으니 음양이 교합하는 이치이다. 혈장이 넓지 못한 것은 묘는 혈에 기를 집중시켜야함으로 형체의 대소는 관계가 없다.

     (3) 砂
     가장 좋은 격은 산성의 용이 산성의 조종산 落脈으로부터 길을 나뉘어 와서 수구를 긴밀하게 지키고, 혈을 돌아본다. 산의 허리 이상의 봉우리는 특이하여 긴 능선의 용과 합하여 보면 역량이 큰 것을 징험할 수 있다.

     (4) 水
     내당은 둥굴고 평평하며, 외당은 가로로 굽어 있으며, 局內의 물이 연모하는 뜻이 있고, 용이 따르는 무링 외당의 밖에서 서로 합하니, 참으로 물가운데의 용이다.

     (5) 總評
     癸方의 산과 午方의 물은 水火不相射의 격이 되고 또 丁方의 안산과 丙方의 파문은 天干生成의 격이 되니, 윤선도의 獻議에서 곁과 속이 모두 길격으로 둘려있다는 것이 이런 곳을 가리키는 말과 같다.

     [융능으로 이장한 다음의 풍수적 발복]
     정조는 융능의 혈처를 午破에 해당되는 지점으로 정하고, 묘의 좌향은 癸坐丁向을 놓았다. 정조는 효의왕후 김씨를 비롯하여 3명의 부인에세서 3명의 자녀를 얻고서 1800년 49세의 일기로 지병으로 얋던 종기가 도져 세상을 떠났다. 효의왕후는 자식을 낳지 못했고, 둘째 부인인 의빈 박씨가 문효세자를 낳았으나 어려서 죽어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정조는 셋째 부인인 수빈 박씨 사이에 한 명의 아들과 따(숙선옹주)를 낳았는데, 아들 공은 융능을 이장한 다음해에 태어나 명당으로 묘를 이장했기 때문에 아들을 두었다는 풍수의 발복설이 부각되었다. 이 아들은 문효세자가 죽은 다음 자식이 없던 정조에게 더 없는 기쁨을 주었고, 이 아들은 훗날 11살의 나이로 임금에 오른 순조 임금이다.

     융능으로 이장한 다음 정조는 11년 만에 좀 애매한 종기로 죽고(독살되었다는 풍문도 있음), 아들 순조가 즉위하여 34년 동안 통치했으나, 순원왕후 사이에 효명세자를 비롯해 3명의 공주와 숙의 박씨 사이에 한 명의 옹주를 두었으나, 효명세자는 임금에 등극하지 못한 채 22살에 죽고, 왕권은 효명세자와 신정왕후 사이에 낳은 순조의 손자 인 헌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헌종은 두 명의 부인을 두었으나 혈육 한 점을 남기지 못하고, 왕권은 결국 사도세자와 숙빈 임씨 사이에 낳은 은언군의 후손인 청종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발복의 내용은 정조가 11년을 집권하며 수원성 축조를 비롯한 문예부흥을 일으키고, 아들인 순조가 34년 집권하며 45세로 죽고, 손자인 효명세자는 임금에 오르지 못한 채 22살에 죽고, 증손자인 헌종은 14년을 집권했으나 23살의 짧은 나이에 죽어 결국 絶孫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정조는 융능을 옮기고 점을 쳤는데, 〈9개월 안에 자손을 볼 조짐이 있으니 나라의 경사가 될 것이고, 복덕으로 세상을 유지시키니 실로 억만년의 끝없는 터입니다.〉라고 나왔다. 이 중에서 아들(순조)를 얻은 것은 적중했으나, 그 이후의 자손들은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정치의 기강은 문란해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으며, 각종 도참과 비기가 유행하는 등 일대 사회혼란이 계속되고, 자손들은 모두 요절하였다.

     [융능에 대한 흉한 전설]
     정조는 융릉을 만들고 조경을 위하여 많은 소나무를 심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송충이가 번져 소나무가 말라 죽었다. 이것을 본 정조는 자신의 효심이 부족해서 그런 일이 생긴다고 자책하고 모든 주민을 동원하여 한 그릇에 엽전 7문(文)씩을 주며 송충이를 잡게 하여 서쪽으로 30리 떨어진 빈정포(濱汀浦)라는 바닷가에 버렸다.

     그 후에는 '빈정포'라고 쓴 부적을 소나무에 붙이기만 하여도 송충이가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하고, 한번은 정조가 송충이를 잡아 입으로 깨물어 죽이니 이 뒤로는 송충이가 없어졌다고도 한다.

     '국상 때 미역값'이라는 말이 있다. 왕이 승하하고 그 시신을 능에 안치하기까지는 보통 6개월에서 9개월이 걸렸다. 왜냐하면 능의 조성은 물론 그에 대한 시호(諡號)도 짓고, 장례 의식을 위한 물건도 준비해야 됐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으면 곧 상하기 때문에 약 9개월간 시신이 썩지 못하도록 방도를 취해야 하였다.

     이 방도의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 미역이다. 미역은 습기를 빨아들이고 자체에 염기가 있어 그것으로 시신을 싸면 휼륭한 방부제 구실을 하여 부패를 막을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 시신을 능에 안치할 때면 그 시신을 감쌌던 미역을 모조리 걷어 내는데, 그 미역이 시중에 은밀하게 나돌았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백성은 더러운 그 미역을 아주 헐한 값에 사서 먹었는데, 이런 연유로 '국상 때 미역값'이라는 말이 생겨 났다. 국상을 치루기 위하여 백성이 얼마나 고생이 심하고 굶주렸음을 알 수 있다.

     [융능에 대한 고제희의 감결]
     물이 午方으로 빠지고 이 때에 癸坐丁向을 놓으면 『지리오결』은 다음과 같이 길흉을 판단하였다. 〈水가 丙午方으로 나가니, 향상의 祿位(丁祿은 午)를 충파하는 것으로 小黃泉이 된다. 궁핍하고 夭壽하여 과부가 난다. 이 黃泉墓는 무수한 옛 묘를 경험해 보아도 혹간 壽를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여러 형제가 많아도 결국은 핍사하여 부자는 없더라.〉
     하지만 실록대로 午破에 丁向을 놓았는지는 현장에 가서 정확히 판단할 것입니다.

     [용주사]
     원래 이곳에는 854년(문성왕 16) 염거조사(廉居祖師)가 절을 창간하고, 952년(광종 3)에 소실된 갈양사(葛陽寺)가 있었는데, 이 터에다 정조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790년에 장흥의 보림사에 있던 보경화상(寶鏡和尙)을 불러 창건을 지시하고, 이 절이 완공되는 날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어 그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라 하였다 한다.

     그 뒤 이 절은 1911년 전국 31본산(本山)의 하나가 되어 경기도 일원의 48개 사찰을 관장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고, 수행과 아울러 효심을 간직한 사찰이 되었다.

     용주사의 천부루(天保樓)는 정조가 융릉에 거동할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누마루 삼면에 난간을 둘러 궁궐 건물처럼 만들고, 좌우에 두 채의 건물(那由他寮. 曼殊利室)을 지어 대갓집 사랑채처럼 꾸며 놓았다. 뒤 현판에는 홍제루(弘濟樓)라 하여 백성을 널리 제도하는 다락이라 명명하였다. 주련(柱聯)에는 부모를 생각하는 시가 걸려있다.

    어머니는 연세가 백 살인데도 (母年一百歲)
    항상 팔십 먹은 자식 걱정이네 (常懷八十兒)
    부모의 자식 사랑 끊어짐을 알려면 (欲知恩愛斷)
    생명이나 다 해야 떨어지려나 (命盡始分離)

     정조가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병적일 만큼 대단하여 정조는 부친의 극락왕생을 빌며 이 절을 지었고, 또한 보경스님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라는 불경을 전해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은중경」을 간행하게 하였다. 이 목판본은 정조 20년에 목판 54매로 만들었는데, 훗날 순조(1802년)가 동판(銅版) 7매, 석판(石版) 24매를 하사한 것으로, 부모의 은혜 중 열 가지의 크고 중한 것을 골라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 새겼다.

     또한 이곳에는 정조의 친필인 '어제봉불기복게(御製奉佛祈福偈)'가 있다. 이 책은 1796년 정조가 직접 지은 복을 구하는 글로, "용주사를 현륭원의 재궁(齋宮)으로 세운 소자(小子:정조)는 8만 4천 보면법문(普眠法門)의 경의(經義)를 썼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삼가 게어(偈語)를 지음으로써 삼업(三業)으로 공양하고 보은(報恩)의 불공을 드립니다." 라는 귀절로 부처님의 자비를 빌어 뭇 백성을 깨우치고자 하는 염원과 부처님의 자비를 찬양한 노래와 사도세자의 극락 왕생을 기원하는 글로 되어 있는데, 정조의 깊은 효심과 불심을 느낄 수 있는 명문장이다.

     [정조와 건릉]
     정조(正祖, 1752∼1800)는 조선 22대 왕으로 이름은 성이고, 호는 홍재(弘齋)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정조는 즉위하자 마자 사약을 내려 숙의 문씨를 죽였고, 자신의 즉위를 도운 홍국영(洪國榮)을 높이 등용하였다.

     뒤에 왕의 총애를 믿고 방자해진 홍국영은 누이를 정조의 빈으로 들여 세도 정치를 펼쳤고, 나아가 왕통을 바꾸려는 등 횡포가 심하자 그를 강릉으로 추방하였고, 당쟁으로 분열된 조정에 탕평책을 써서 그 때까지 소원하였던 남인과 서·북인을 골고루 등용하였다.

     1791년 신해사옥으로 백성들에게 널리 퍼진 천주교를 탄압하였으나 교세는 줄어들지 않았고, 규장각을 세워 역대 서적의 보관 및 서적 편찬에도 심혈을 귀울였다. 비록 재위 24년인 1800년에 승하였지만, 주자학의 공리공론식 학풍을 멀리하고 정약용같은 신진 학자를 널리 등용하여 실학을 장려하는 등, 조선 후기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건릉(健陵)은 융릉과 같은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봉분은 원형으로 호석에 에워싸여 있는데 그 호석은 12면으로 각 면마다 12지신을 새겼다. 능의 크기는 여느 능과 같은 크기이고, 능 앞에는 혼유석·상석·향로석이 있고, 그 앞에 장명등이 있다.

     능 좌우에는 망주석(望柱石)이 있고 그 뒤로는 홀(笏)을 두 손으로 가지런히 모아 쥔 문인석(文人石)과 칼을 짚고 서 있는 무인석(武人石)이 있다. 또한 무인석 뒤로는 석마(石馬)가 있어 어디든지 금방 떠날 차비를 갖추고 있는 듯하며, 비각(碑閣)은 저 아래 구릉 밑에 있다.

[사진 : 융릉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