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성의 축조와 시설들

     [수원성을 쌓게 된 유래]
     융능이 자리한 화산은 조선 제1의 명당으로 손꼽았는데, 화산은 당시 수원읍치의 진산으로 풍수적으론 주산에 해당되었다. 마을의 진산에 무덤을 쓸 경우 마을로 공급되는 생기를 빼앗아 풍수상 문제가 발행한다.

     그러으로 정조는 무덤을 옮기고 '현융원(顯隆園)'이라 정한 후 수원읍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명하였다. 이때가 정조 13년(1789) 7월이었다. 새 읍은 지금의 팔달산 아래로 결정되었고, 나라에서 금 10만 냥을 내어 그읍에 살던 주민들을 이주시켰으며 신읍에 거주하는 주민에게는 10년 동안 면세 혜택을 주었다. 먼저 관청 건물을 새로 짓고 이어서 수원향교를 옮겨 세웠으며,몇 해 후에는 도시 주변을 둘러싸는 성곽까지 축조하게 된 것이다.

     정조는 융릉 천장과 수원 읍치 이주, 그리고 화성 공사에 필요한 비용을 대부분을 당시 병권을 장악하고 있던 벽파들의 군문에서 충당하라고 명하였다. 영조 때 사도 세자를 죽이게 했던 벽파들은 정조가 즉위하자 대대적인 복수극이 있을 거라며 몸을 떨었는데, 이상하게도 정조는 사도세자의 문제를 재위 초기이후에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직접 주동한 인물 몇 명만 처단했을 뿐 십여 년간 일체의 함구령으로 일관했던 정조가 재위 13년에 측근인 체재공 체제를 앞세워 중대 발표를 했고, 사도세자 현륭원(융릉) 천장에 관한 것이었다. 안도의 숨을 내쉰 벽파들은 면죄부를 사듯 천장과 이주 비용을 앞다투어 바쳤다. 그런데 그 비용은 점점 불어나 벽파 군문들의 10년 예산에 해당되는 비용이 들어가고, 그들은 졸지에 재정고갈로 실세에서 밀려났다.

     화성 공사가 거의 마무리 될 즈음에 정조가 왕이 수원에 내려가," 새고을에 이르러 두루 살펴보니, 주택과 거리가 즐비하고 전답들이 무늬를 지어 엄연한 일대 도회를 이루니 그 동안의 수고가 정말 컸었다."라고 치하했다.그리고 이듬해인 정조 14년에 친히 현융원에 내려와 전배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그 자리에서 신읍(수원)의 상업 활동을 진작시킬 방도를 모색하라고 명하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3년후, 정조 17년 정월에는 새로운 읍을 화성이라 명명하고 읍을 유수부(留守府)로 승격시켜 초대 유수에 명재상 채제공을 임명하였다. 수원성을 축성한 동기는 정조가 부친에 대한 효성으로만 돌리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으며, 오히려 새로운 터전에 고을을 만들고 주민을 이주시켜 상업 활동을 적극 권장하는 등 경제력을 갖춘 신도시를 건설하려는 또 다른 의도가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정조는 이곳에 새로운 도읍을 만들어 구세력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양과는 별도의 터전에서 신진 세력들을 중심으로 개혁적인 정치를 펴려고 하였던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이런 추측은 정조 20년(1796) 수원성이 완성되고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정조가 49세에 갑작스런 죽었고(1800년), 정조가 죽은 뒤 벽파가 시파를 처참하게 궤멸시켰기 때문이다.

     [수원성의 축성계획]
     수원성의 축성 계획에는 조선 후기에 대두된 성곽의 방어능력 향상을 위한 노력과 실학파 학자들의 실용성을 추구한 학문적 관심 그리고 이 모든 생각들을 집대성할 수 있었던 조선 후기의 대학자 정약용이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조선 후기 성곽 건축의 꽃이 필 수 있었다.

     임진왜란을 겪고 난 조선은 왜적의 침입에 무력하게 무너진 조선의 방어 체제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성곽의 방어 능력을 향상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유성룡(1542∼1607)은 「징비록」에서,

     〈성곽에서 중요한 것은 치성과 옹성인데 당시 조선의 성들은 거의 이런 기능을 제대로 갖춘 성이 없다.〉라고 치성과 옹성을 반드시 갖출 것을 역설했다. 치성은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서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 격퇴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며, 옹성은 성문 앞에 둥글게 또는 네모지게 한 겹 더 성벽을 쌓아서 성문을 이중으로 지킬 수 있도록 한 시설을 말한다.

     이러한 것들을 이미 고대 중국에서부터 고안되어 활용되어 오던 것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특별한 곳외에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그 밖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성가퀴도 충분한 크기로 만들고 포루를 설치할 것도 제안하였다.

     조헌·유형원은 중국과 일본 성제의 장점을 연구해 조선의 성을 보다 견고히 할 것을 제안했는데, 그 내용은 주민이 거주하기에 충분한 크기여야 하며, 전쟁이 나면 살던 곳을 떠나서 주변의 산성으로 피난하던 종래의 방법을 버리고 평시에 거주하는 읍성에서 방어를 할 것, 그러기 위해서는 읍성에 포루 등을 많이 설치하여 방어력을 높일 것 등이다. 특히 성내에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도록 하고 상공업을 장려하면 시장이 번성하고 주민이 부유해져서 성은 자연히 견실해진다고 생각하여 상공업의 활성화를 주장하였다.

     당시 중국을 방문한 경험을 가진 북학파들은 중국의 앞선 기술문명을 직접 눈으로 보았는데, 조선 건축 구조 개선책은 벽돌의 적극적인 활용이었다. 중국의 건축물들이 대부분 벽돌을 이용하여 견고하고도 오래 견디며 집을 짓는데도 편리하다는 점을 체험을 통해서 확인하고 이를 조선에서도 적극 활용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궁궐이나 주택을 벽돌로 짖는 것은 관심을 끌지 못했고, 벽돌로 성벽을 축조하는 방안만은 일부 채택되었다. 강화 유수인 김시혁은 북경에 다녀온 체험을 살려 1774년 강화의 외성을 벽돌로 축조하고, 수원성을 쌓으면서 벽돌을 대대적으로 활용하였다.

     정약용은 수원성의 축성을 위하여 모두 7편의 글을 작성하여 왕에게 바쳤다. 곧 「성설(城說)」「옹성도설(甕城圖說)」「포루도설(砲樓圖說)」「현안도설(懸眼圖說)」「누조도설(漏槽圖說)」「기중도설(起重圖說)」「총설(總說)」등이다.이 글들은 수원성의 기본적인 형태와 규모, 각종 방어 시설, 그리고 축성 공사와 관련된 공사 방법 등을 적은 것이다.

     그 중에는 재래의 축성술을 계승한 것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이제까지 조선의 성곽에서 설치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시설들이 많이 들어 있었고, 공사 시공을 위한 새로운 기구들이 여러 가지 고안되었다. 이것은 모두 다산이 오랜 기간 조선의 종래 성제를 검토하고 중국의 관련 서적들을 면밀히 연구 검토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그 중에 특히 기구의 고안은 서양의 과학 기술에 관한 지식을 활용한 것이었다.

     정약용이 계획한 수원성의 기본적인 형태와 새로운 방어 시설 그리고 자재를 운반하는기구는 다음과 같다. 우선 수원성의 기본 형태와 규모를 살펴보자."성의 둘레를 약 3,600보(1보는 周尺으로 6척. 약 1.18미터)로 하고 성벽의 높이는 약 2장 5척으로 함. 성을 쌓는 재료는 돌로 함. 성벽의 주변에는 호(壕)를 팜(호의 깊이는 약 1장 5척, 넓이는 7장, 바닥은 3장)"이것이 이상적인 성의 모습이다.

     이어서 성에 필요한 방어 시설로는 옹성, 포루, 현안, 누조를 들었다. 우선 옹성에 대하여 과거에는 우리나라 성곽에 옹성을 별로 설치하지 않아 서울의 동대문에만 있었음을 상기시키고, 중국의 병서에 나오는 옹성 등을 참고하여 새로 마련하는 성의 성문에는 반드시 옹성을 설치함을 물론 옹성에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공격용 시설을 적었다. 포루에 대하여도 중국의 병서에 나와 있는 예와 전에 유성룡이 제안했던 방안 등을 검토하여 수원성에 필요한 만큼의 포루를 고안하였다.

     다산은 수원성에 포루 7, 적루(敵樓) 4, 적대(敵臺) 9, 포루(鋪樓) 2, 노대(弩臺) 1, 각성(角城) 7 개소가 필요하다고 제안하였다. 현안은 적을 감시하고 공격도 할 수 있는 시설이며 성벽에 설치하는 개구부이다. 이것을 성벽이나 치성, 성가퀴 등에 다수 설치하도록 하였으며 성문 위에는 적의 방화에 대비하여 물을 저장하는 누조(물탱크)를 만들 것도 계획에 넣었다.

     다산은 이러한 성의 규모나 방어 시설 외에 특별히 운반용 가구의 활용을 건의했다. 성곽 공사에는 많은 석재를 운반해야 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큰 괴로움을 주게 되고 공사 비용이나 기간이 많이 드는 점을 고려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석재를 운반할 수 있는 운반용 기구를 활용할 것을 생각하고 자신이 직접 이러한 기구를 고안해 내었다. 그 대표적인 기구가 거중기이다.

     거중기는 여러 개의 활차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체를 적은 힘으로 들어 올리도록 고안 한 장치이다. 다산은 독일인이 지은 「기기도설(奇器圖說)」이라는 책에 실린 서양의 기구 그림들을 보고, 조선에서 만들어 사용할 만한 새로운 기구를 고안한 것이다. 다산의 설명에 의하면,

     "활차가 무거운 물건을 움직이는 데 편리한 점이 두 가지가 있으니 힘을 더는 것이 하나요,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둘이다. 100근짜리 물건을 드는 데는 100근의 힘이 필요하나, 활차 1구를 쓰면 50근, 2구를 쓰면 무게의 4분의 1인 25근의 힘만으로도 들 수 있다. 같은 이치로 활차의 수가 늘어나면 힘은 덜 들게 된다. 지금 상하 8륜이면 힘을 25배를 얻을 수 있다."라고 한다.여기에다가 "녹로( ?)라는 밧줄을 감는 장치를 덧붙인다면 40근의 힘으로 2만 5천 근의 무게도 능히 들 수 있다" 고 하였다.

     이처럼 다산의 수원성 계획은 기존 조선 성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당시의 중국이나 서양의 앞선 문물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백성들의 수고를 덜어 주고 공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거중기 등을 고안한 점은 당시 실학파 학자들의 위민사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수원성은 이와 같이 조선 후기 (18세기)의 축성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함께 그에 따른 지방 읍성 방어 시설의 구축에서 얻은 일련의 체험 그리고 벽돌의 사용 등이 큰 역할을 하였다.

     또 이와 함께 중국을 다녀온 실학파 학자들의 여러 가지 제안 그리고 강화 외성의 실험적인 벽돌 성벽 축조 기술 등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18세기말 정조의 강력한 축성 의지와 함께 실학파 학자의 중용으로 이제까지의 성곽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면모를 갖춘 성곽으로 계획되기에 이른 것이다.

     [화성성역의궤]
     수원성은 1792년, 정조 18년 정월에 공사가 시작되어 2년 반 후인 정조 20년 9월에 완성을 보았다. 공사가 무사히 마무리되었음을 기뻐한 정조가 공사에 종사한 여러 관리나 기술자들을 불러 치하하고 여러 가지 물품을 하사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왕은 단순히 성이 완성된 것을 치하나는 연회만을 베푼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 역사적으로 뜻 깊은 큰 일을 했다.

     그것은 수원성의 공사 과정을 낱낱이 적은 일종의 공사 결과 보고서를 발간한 일이다. 「화성성역의궤」라는 이 책자는 전체 640여 장에 정리자라는 금속활자를 사용하여 인쇄하였다. 방대한 분량 탓으로 곧 발간되지 못하다가 공사 완료 5년 후인 l800년(순조 원년)에야 출간되었다.단일 공사를 대상으로 하여 이를 활자화된 책자로 발간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의 건설 공사와 관련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공사 종사자는 크게 나누어 공사를 감독하는 관리 계층(管理階層)과 직접 공사의 노역을 담당한 노동 계층(勞動階層)으로 분류할 수 있다. 관리 계층은 주로 조정의 전·현직 관리들이었으며 노동 계층은 서울과 수원 주변은 물론 전국 각 지방에서 동원된 각종 공장(工匠)들과 모군(幕軍) 곧 단순 노동자들이였다.

     공사 관리를 책임 맡은 관리 중 중요 직책과 그 직책에 임명된 사람들을 보면,총리대신 영중추부사 채제공(擔理大닮 領中樞府事 蔡濟꿨)감동당상 행부사직 조섬태(藍童堂上 行副司直 趙心泰)도청 행부호군 이유경(都聽 行副護軍 李f需敬)책응도청 수원부판관 김노성(策應都聽.水原府判官 金魯成) 등이다. 이들이 공사 전체의 총괄적인 책임을 맡았고 그 아래에 별감동(別藍童), 감동(藍童), 별간역(別看投), 간역(看投) 둥의 직책이 마련되어 여기에 현직 또는 전직 관리 등이 공사의 각종 감독일을 맡아 보았다. 그 밖에 감독은 아니지만 서리(書更), 서사(書寫), 고직(庫直) 등의 직책이 있었다.

     노동 계층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공장들은 모두 l,856명이었고, 직종별로는 22종이었다. 곧 석수(石手) 662명, 목수(木手)335명, 이장(泥匠) 295명, 와벽장(瓦 匠) l50명, 야장(冶匠) 83명, 개장(蓋匠) 34명, 차장(車匠) l0명, 화공(畵工) 46명, 가칠장(假漆匠) 48명, 대인거장(大引鉅匠) 30명, 소인거장(小引鉅匠) 20명, 기거장(岐鉅匠) 27명, 걸거장( 鉅匠) l2명, 조각장(雕刻匠)36명, 마조장(磨造匠) 2명, 선장(船匠) 8명, 목혜장(木鞋匠) 34명, 안자장(鞍子匠) 4명, 부계장(浮械匠) 2명, 병풍장(屛風匠)·박배장(朴排匠)·회장(灰匠) 각 l명씩이었다.

     이들 각 공장들의 출신지를 보면 전체 공장의 약 절반인 l,lOl명이 서울 출신이고, 그 나머지는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황해도, 경상도, 전라도 둥지에서 동원되었다. 이 가운데 특히 지방 공장은 대부분이 석공과 목공들이었으며 목공 중 일부는 불교 사원의 승려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원성은 공사의 규모가 컸던만큼 많은 양의 자재가 소요 되었는데 이들 자재는 기본적으로 관에서 직접 조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부분적으로는 민간으로부터 구매하였다. 우선 자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석재(石材)는 공사장 가까이의 숙지산(熟知山)에서 떠내 왔는데 그 수량은 크고 작은 각종 돌이 모두 l9만 5,24l덩어리였다.

     그 밖에 온돌석 800장은 호조와 강화부에서 조달하였다. 목재의 경우는 총 소요량이 일반 목재 9,686주, 송판2,300잎, 서까래용 1만 4,2l2개였는데 이 가운데 관급 곧 나라에서 조달한 양은 일반 목재 5,72l주, 서까래용 2,2l7개이고 나머지는 민간으로부터 구입하였다. 관급으로 조달된 목재는 충청도의 안면도와 황해도 장산꽂 그리고 강원도와 전라도에서 벌목해서 해로를 이용하여 공사장으로 운반하였다.

     수원성의 공사는 규모에 비하여 2년 반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내에 완성되었다. 그것은 물론 공사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주도 면밀한 공사 계획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조선후기의 전반적인 기술 수준의 향상과 자재의 원활한 조달 때문인것으로 생각된다. 설제로 공사를 위하여 제작된 운반 기구는 거중기 l대, 유형거 lO량, 대차 8량, 별평차 l8량, 평차 76량, 동차 l92량, 발차 2량, 썰매 9대, 녹로 2대, 구판 8대 등이었다. 이러한 다양한 운반 기구를 사용하고 당시의 축적된 생산 기술을 발휘하여 수원성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공사를 완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수원성의 공사 비용은 물론 정부에서 모두 염출해야만 되었는데, 이를 위하여 조정에서는 약 87만 냥의 돈과 l천 5백 석의 쌀을 조달하였고 자금의 대부분은 향후 l0년간 군영이나 기타 지방관부가 거두어들일 예정으로, 있는 돈을 미리 앞당겨 사용하는 방안을 취하였다. 이렇게 하여 조달된 공사 자금은 대체적인 추산으로 자재비에 약 32만 냥, 인건비에 약 30만 냥, 운반비에 약 22만 냥, 기타 비용에 약 9만 냥이 소요되었다.

     [수원성의 여러 시설들]
     성벽은 원칙적으로 돌로 쌓았지만 일부 방어 시설은 전돌로 쌓은 곳이 있다. 성벽의 높이는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4내지 6미터로서 평균 5미터 내외이다. 그리고 성벽 위에 높이 l 내지 l.2미터 정도의 여장(女뽑)을 쌓고 여장에는 여러 개의 총구멍을 뚫어 놓았다.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돌을 쓰고 위에는 작은 돌을 사용하였으며 성벽은 위로 올라가면서 배가 안으로 들어가는 형태로 쌓았다. 이것을 규형(圭形)이라고 하는데 함경도 경성(鏡城)에 이와 같은 성벽이 있어 그 효과가 우수하다 하여 취하였다고 전한다.

     수원성에는 동서남북 방향에 4개의 성문이 있으며 서울을 향한 북문이 장안문(長安門), 반대 방향의 남문이 팔달문(八達門), 그리고 동서에 각각 창룡문(蒼龍門)과 화서문(華西門)이 있다. 이 가운데 장안문과 팔달문은 거의 같은 규모 같은 형태이고 수원성의 남북 대문 구실을 하는 대표적인 건물이다.장안문은 서울을 향하여 북향하고 서 있는데, 돌로 높이 쌓은 사다리꼴의 육축(陸葉) 가운데에 홍예문(아치형 문)을 내고 육축 위에는 2층으로 된 장중한 누각을 세우고 앞쪽에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다. 전면의 옹성을 제외한다면 전체적인 문의 형태가 서울의 남대문과 흡사하다.

     아치의 크기에 대해서는 「화성성역의궤」에 높이가 l7척 5촌, 너비 l6척 2촌, 두께 40척이라고 하였다. 아치에는 두 짝의 나무문을 달았는데, 문에는 철엽(鐵葉)을 대고 큰 나무 빗장을 걸었다. 아치 상부에는 물통인 누조(遍樓)를 설치하였으며 그 안과 밖으로 여장을 쌓아 여장에 여러 가지 크기와 위치의 총구멍을 내었다. 육축 위에 세운 누각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화려하고 복잡한 다포식(多包式) 공포를 결구한 2층 구조의 목조 건물이며 성의 정문으로서의 위염을 한껏 갖추었다.

     건물 내부는 l층과 2층이 따로 구분되어 있어서 그 뽑에 마루를 깔았는데, 이 2층 마루에 올라서면 성 앞을 멸리 내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지붕은 이른바 우진각 지붕이라고 하는 각 처마가 한데 모여지는 형식인데 이것도 서울의 남대문과 같은 형식이다. 옹성은 장안문의 육축에 잇대어서 반원형으로 쌓았는데 성문과는 달리 모두 전돌로 쌓았다. 역시 옹성 한가운데에 아치문이 나 있다. 옹성은 서울의 동대문에도 있지만 동대문의 옹성은 돌로 쌓았고 출입구를 한가운데가 아닌 한쪽 모서리에 내었는데, 여기서는 장안문의 출입문과 마주 뚫리는 중앙 위치에 두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화성성역의궤」에,

     “고제에는 문의 왼쪽이나 오른쪽에 하나씩 설치하였는데 이제는 사방으로 열리고 뚫린다는 뜻을 따서 한가운데에 문을 내어 정문과 마주 대하게 되었다.”라는 설명이 있다.옹성 아치의 상부에는 오성지(五星池)라는 구멍이 다섯 개 뚫린 일종의 물탱크를 설치하였는데, 이것은 적이 성문에 불을 질러 파괴하려고 할 때를 대비하여 만든 것으로 다른 성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다.

     장안문의 좌우에는 적대(敵臺)가 각각 하나씩 있는데 이것은 높은 위치에서 적을 공격할 목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장안문과 반대 방향에 남향하여 서 있는 팔달문은 모든 규모나 형태가 장안문과 동일하다. 역시 반원형의 옹성이 있고 문 좌우에 적대가 설치되어 있다. 동문인 창룡문은 장안문에 비하여 문의 규모도 작고 형태도 간략한 편이다. 창룡문에도 옹성이 있는데 아치문이 정변에 설치되지 않고 서울 동대문처럼 왼쪽 모서리에 설치되어 있다. 화서문의 제도는 창룡문과 거의 비슷하며 다만 성벽의 일부가 휘어져 있는데 이것은 지형에 맞추어 쌓았기 때문이다.

     성곽에는 흔히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는 출입구를 내어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양식 등을 나르도록 하는데 이것이 암문(暗門)이다. 수원성에는 모두 다섯 곳에 암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곧 북암문, 동암문, 서암문, 서남 암문, 남암문이다. 북암문은 동북 각루 남쪽 약간 골짜기진 곳에 있어서 성 밖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성벽에 따로 전돌로 벽을 쌓고 높이 6척 5촌, 너비 4척의 아치문을 내고 그 위에 성가퀴를 만들었다.암문에는 일반적으로위에 건물을 세우지 않지만 서남 암문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포사(鋪舍)라고 부르는 일종의 망루를 세웠다. 이곳은 팔달산 한쪽의 높은 곳이어서 성의 서남 방향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기 때문에 특별히 적을 감시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한 것이다. 이 포사는 한 칸 사방의 규모로, 안에는 온돌망이 있으며 사면에 판문(板門)을 대고 그 문에는 짐승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수원성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개천이 성내를 관통하고 있다. 따라서 성내에는 개천과 성벽이 만나는 곳에 수문을 설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성내에 북수문과 남수문이 었으며, 북수문은 용연이라는 연못이 있는 비교적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있어 동북 각루를 세우는 동 장대하게 꾸였으며 남수문은 소박하게 만들었다 북수문에는 물이 흐를 수 있는 일곱 개의 아치형 수문이 있고 그 위에는 화홍문이라는 누각이 세워져 있다.

     아치문의 위로는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 성벽과 바짝 붙여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을 세웠다 누각사면에는 분합문을 달고 동, 서, 남 삼면에는 난간을 붙였다 북쪽은 바로 성 바깥이 되므로 전돌로 성가퀴를 높이 쌓고 여러 개의 총구멍을 내었다.

     성 주변 사방을 조망하면서 장병들을 지휘하는 곳으로 서장대와 동장대가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어 성의 안팎이 모두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이다. 장대석으로 대를 쌓고 세 벌의 계단을 마련한 위에 또 한 단의 대를 놓고 그 위에 2층 지붕의 건물을 세웠다. 건물의 모습은 남한산성의 수어장대와 같이 하층을 개방하고 그 일부에 마루를 들였다. 서북 모퉁이에 사다리를 놓아 상층으로 오를 수 있도록 하였으며 지붕은 모임 지붕으로 하고 중앙에 절병통을 장식으로 올렸다.

     서장대의 뒤편에 노대(弩臺)를 세웠는데 이곳은 쇠뇌를 쏘는 노수(弩手)가 머무는 곳이다. 동장대는 성의 동북간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지형이 높은 곳은 아니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언덕의 둥성이가 솟아 있는 곳이어서 동쪽 구롱인 일명 선암산의 가장 요지이다. 삼단으로 쌓은 대가 있고 바닥을 돌로 깔아 말을 타고도 건물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장대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익공식(翼工式) 팔작 기와 지붕이다. 건물 주변에 터를 넓게 잡아 동서 l8O보, 남북 240보의 조련장을 두었다. 동장대 부근에도 역시 노대를 두었는데 이 동북 노대는 치성 위에 전돌로 대를 높이 만들어 성벽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돈(墩)은 일종의 망루(望樓)와 같은 것으로 이미 남한산성과 강화도의 해안 주변에 설치한 적이 었다. 그러나 공심돈 곧 돈의 내부가 비도록 한 것은 아마도 수원성이 최초가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의 병서인 「성서(城書)」에는 공심돈을 가리켜, “벽돌로 삼면에 섬돌을 쌓고 그 가운데를 비워 둔다. 널빤지로 누를 만들어 가운데를 2충으로 구분한 다음 나무 사닥다리를 놓고, 위아래에 공안을 많이 뚫어서 바깥의 동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불랑기, 백자총들을 발사하여도 적으로서는 화살이나 총탄이 어느 곳에서부터 날아오늘회 모르게 되어 있다.” 라고 풀이하고 있다. 수원성에는 서북 공심돈, 남공심돈, 동북 공심돈 둥 모두 세 군데에 공심돈이 설치되어 있다. 서북 공심돈은 화서문 북치(北雉)위에 있다. 치의 높이 l5척이고 그 위에 전돌로 돈대를 네모지게 높이 쌓았다. 높이 l8척이고 아래의 넓이는 23척, 위의 넓이는 2l척으로 위로 갈수록 좁아졌다.

     내부는 3층으로 꾸며 2층과 3층 부분은 마루를 깔고 사닥다리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돈대의 꼭대기에는 포사를 지었으며 돈대 외벽에는 총안, 포혈(砲穴) 등을 뚫었다. 남공심돈은 남암문의 동치(東雉) 위에 세워져 있다. 제도는 대체로 서북 공섬돈과 같고 규모가 약간 작다. 꼭대기에 건물을 지었는데 판문을 달지 않고 사방을 개방하였다. 동북 공심돈은 큰 원통 모양으로 수원성에서 가장 특이한 건물의 하나이다.

     동장대 옆 동북 노대에 서쪽에 위치하며 중국 요동 지방의 계평돈을 모방하여 전돌로 둥그렇게 돈대를 만들었다. 높이 l7척 5촌, 바깥 둘레 l22척, 벽의 두께 4척, 안쪽 둘레 7l척이며 내부에 나선형의 계단을 설치하였다. 계단이 나선형이기 때문에 이 건물은 혼히 소라각이라고도 한다. 벽에는 여러 개의 총안이 있어 안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그 위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우진각 지붕 건물이 있다. 건물 제일 아래쪽에는 온돌방을 들여 군사들이 숙직하도록 하였다. 또한 돈대의 벽 중간에는 열쇠 구멍처럼 생긴 화살 구멍을 두었는데 이곳을 통해 내부의 물이 흘러나가게 되어 있다.

     비교적 높은 위치에 누각모양의 건물을 세워 주변을 감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 있는데 이를 ‘각루’라고 한다. 동북 각루 서북 각루 서남각루 동남 각루가 있다. 규칙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주변 경관과 어울림이 뛰어난 건물로, 조선시대 정자 건물의 높은 수준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북쪽 수문인 화홍문에서 동쪽으로 경사져 올라간 위치에 있다. 아래쪽으로 용연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성벽에 대어서 용두라는 바위 위에 누각을 세웠다. 이곳 지형을 「화성성역의궤」에서는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

     “광교산의 한쪽 기숨이 남으로 뻗어 내려 선암산이 되었고 다시 서쪽으로 감돌아 수리(數里)를 내려가 용두에서 그치고 북쪽을 향하여 활짝 열렸다. 용두란 것은 용연 위에 불쑥 솟은 바위이다. 성이 이곳에 이르러 산과 들이 어울리게 되고, 물이 모여 아래로 흘러 대천에 이르게 되었으니 여기야말로 실지로 동북 모퉁이의 요해처이면서 장안문을 안에 안고 화홍문과 이어져 쇠뿔처럽 마주 서서 일면을 제압하고 있다.”

     이처럼 동북 각루가 위치한 지형은 전략상으로도 중요할 뿐 아니라 주변 경관도 뛰어난 곳인데, 여기에 또한 빼어난 건축미를 갖춘 누각을 세워 놓은 것이다. 건물은 2층 구조이며 상층은 사방이 트인 누각이고 성곽 위로 횟마루를 달고 난간을 설치하였다. 평면 형태가 매우 복잡하여 북측면은 팔각형을 이루고 남측면은 자형으로 되어 있다.

     상층은 동서 세 칸 가운데 온돌을 놓고 북쪽에 한 칸, 남쪽에 반 칸을 물리었으며 또 서쪽으로 한 칸을 길게 물리었다. 하충 벽체는 아래에 돌을 쌓고 그 위에는 전돌로 쌓고 성 바깥 쪽으로 총안을 뚫었다. 이 건물에서 특히 눈길을혐는 부분은 지붕의 형태이다. 평면의 형태가 복잡한만큼 지붕도 단순하지 않다. 팔작지붕의 꺾이고 펼쳐지는 품이 여러 겹으로 전개되면서 우리나라의 다른 건물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외관을 보여 준다.

     더욱이 지붕 각마루의 희게 회칠한 양성과 그 위에 올려 놓은 취두 그리고 지붕 한복판 위에 놓은 절병통 둥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서북 각루는 화서문의 남쪽 산 위 휘어 굽은 곳에 있다.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동북 3칸은 마루를 깔고 사면을 평난간으로 둘렀다. 위에는 판문을 설치하고 외면에는 모두 짐승의 얼굴을 그리고 화살 구멍을 내었다. 서남 각루는 일명 화양루(華陽樓)라고도 하는데, 성의 서남쪽으로 멸리 떨어지고 높은 지점 경치 좋은 곳에 따로 우뚝 서 있다.

     정면 2칸이고 측맴 3칸으로, 앞의 4칸은 바닥에 전돌을 깔아 삼면을 개방하였고 뒤의 2칸은 방을 들였다. 이 서남 각루가 위치한 곳은 이른바 용도라고 하여 양쪽으로 성가퀴를 쌓고 그 사이에 군량을 운반하기 위한 길을 좁고 길게 낸 곳으로 서남 암문의 밖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서남 각루는 바로 이 용도 끝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이 건물은 경관을 즐기기 보다는 방어의 요충을 견고히 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건물 자체는 미적인 조화를 앓지 않고 있으 면서 요충져의 군사적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포루(砲樓)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치성과 유사하게 하면서 내부를 공심돈과 같이 비워 그 안에 화포를 감추어 두었다가 적을 공격하도록 만든 것이다. 모두 전돌을 쌓아 벽을 이루고, 위에는 작은 누각식의 건물을 올렸는데 수원성에는 서포루, 북서포루, 동포루, 동북 포루, 남포루의 다섯 포루를 설치하였다.

     포루는 화포를 장착한 것이 아니고 성 위에 대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세운 것을 가리키는데, 치성의 군사들을 가려 적이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세운 것이며 모두 다섯 군데에 설치하였다. 동북 포루는 각건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방화수류정 동쪽으로 지세가 갑자기 높아져서 용두를 굽어보는 곳에 위치하였다.

     그 밖에 서암문 남쪽에 서포루, 북서 포루 서쪽에 북포루, 창룡문 남쪽에 동 l포루, 봉돈 남쪽에 동 2포루가 있다. 봉돈(烽墩)은 행궁올 지키고 성을 파수하며 주변을 정찰하여 인근에 사태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로 다섯 개의 커다란 연기 구멍을 두어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성벽 일부를 치성처럼 밖으로 돌출시키고 아래는 돌로 쌓고 위는 전돌을 성벽보다 높이 쌓아 상부에 성가퀴를 두었다.

     내부는 3층으로 만들어서 제일 높은 곳에 다섯 개의 화두를 설치하였다. 다섯 개의 화두 가운데 평상시에는 남쪽의 첫째 것만 사용하는데, 저녁마다 남쪽의 화두에서 횃불을 올리면 동쪽으로 용인 석성산의 육봉(陸鍵)에서 봉화로 응하고 서쪽으로는 수원부의 홍천대에 있는 바다 봉화둑에서 응하게 된다.

     [수원성의 아름다움]
     보물 제402호 팔달문(八達門)
     수원에 오면 성곽에 붙은 담쟁이 덩굴을 매만지며 걷는 즐거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대문(四大門)의 건축미를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남문(南門)인 팔 달문(八達門:보물 제402호)은 서쪽에 있는 팔달산에서 따온 이름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데, 먼저 화강암으로 홍예(虹霓)를 만들고 무사석(武砂石)의 기부(基部) 위에 2층의 문루를 세웠으며, 문의 바깥쪽에는 반월형의 옹성(甕城)을 쌓아 적으로부터 이중으로 방어할 수 있게 하였다.

     현재 전해지는 성문(城門)은 1920∼1930년에 수리가 있었고, 1975년 수원 성곽 복원 공사 때에 현재의 형태로 개보수 한 것이다. 문의 좌우에는 성벽이 연결되었으나 도로를 넓히면서 성벽을 헐어내니, 방어의 건축물이기 보다는 건물과 차들로 가득찬 수원 시내를 그 화려함으로 인하여 멋스럽게 만들어 준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장안구 장안동에 있는 '방화수류정'은 정조 18년(1794)에 착공한 수원의 북쪽 수문 화홍문(華虹門)의 동쪽 벼랑 위에 있는데, 용지(龍池)와 어울려 하나의 승경(勝景)을 이룬다. 이 정자는 아자형(亞字形)의 평면으로 건축미와 예술적 가치에서 조선 후기 건축미를 대표할 만큼 아름답다.

     지금의 현판 글씨는 1956년(丙申)에 김기승(金基昇)이 쓴 것으로 한껏 멋을 부렸고, 그 중에서 유(柳)자는 마치 수양버들이 봄비에 휘날리는 듯하다. 이 정자 이름은 중국 송(宋) 나라의 대학자이며 시인이었던 정명도(程明道)의 시 중에서 따 온 것이다.

     [봄날 우연히 시를 지음 (春日偶成) ]
     구름은 엷고 바람 살랑이니 한낮이 가까운데 (雲淡風輕近午天)
     꽃을 찾아서 버드나무 따라 앞 내를 찾아갔네 (訪花隨柳過前川)
     벗은 내 마음 즐거운지 모르고 (傍人不識余心樂)
     틈 나면 소년들처럼 살아가라 이르네 (將謂偸閑學少年)

     정자를 오르면 전망이 확 트여 수원 시내가 한 눈에 보이고, 아자(亞字)형의 난간은 어느 쪽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 아래에는 화홍문과 용지(龍池)라는 연못이 있다.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이 정자에 많은 시인 묵객이 다녀 가면서 그 향기를 남겼을 만도 한데, 정작 안에는 흔한 중수기나 시 한 수가 걸려 있지 않다.

     현대의 풍류는 느낌보다는 자국만이 중요하게 생각되는지 청춘 남녀의 신발 자국만 마루에 가득하고, 풍상에 씻기운 단청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색동저고리 같아 슬픔만 자아낸다. 정조 20년 병진 11월에 세운 이 정자의 상량문(上樑文)은 당시 사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인 이서구(李書九, 1754∼1825)가 썼다. 상량문의 일부를 보면 이 정자의 빼어난 절경을 자세히도 적어 놓았는데,

     "화려한 기둥이 물가에 걸쳤으니 비단 무지개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고, 높은 난간은 별을 만질 듯하니, 흰 비단 띠에 얽히어 있었구나. 붉은 놀이 봄나무를 가리어 비추니 만 사람이 집을 한 아름에 안았고, 푸른 물결이 실연기를 곁들이니 10리의 길을 떨쳐 쓸었구나. 층층이 쌓인 난간과 첩첩이 감싼 정자는 이름난 도읍의 번화를 더욱 은성하게 하였고, 맑은 구름에 나부끼는 바람은 가절에 마음껏 놀며 즐기는 듯하구나. 눈을 돌려 대궐쪽을 바라보니 흐르는 내와 솟은 고개가 생동하는 빛을 자랑하고, 아름다운 정자 이름을 달았으니 붉은 꽃 푸른 나무까지도 영광을 머금은 듯하구나. 화려한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니 봄의 화창한 빛이 나라를 세우던 옛날에 머무는 것 같고, 임금께서 때 맞추어 거둥하시니 임금이 풍기는 기운이 상원(上苑)의 봄에 통하는 것 같구나."

     라고 기록하고 있다. 정자를 받친 깍아지른 듯한 언덕 밑에는 푸른 연못이 있는데, 이름하여 용지(龍池)이다. 연못은 깊어 지금도 용이 살고 있는 듯 검푸른데, 못의 중앙에는 둥근 섬이 있고, 그 섬에는 수양버들 몇 그루가 서 있다. 마치 이 정자의 이름처럼 버드나무의 가지는 주렴처럼 드리워져 있고, 간간이 부는 바람에 하늘하늘 휘날린다.

     화홍문(華虹門)
     화홍문은 일명 북수문(北水門)이라고 하는데, 아래에는 수문이 일곱 개 있고 그 위에는 문루가 있다. 수문은 석조 아치형으로 만들고 가운데 한 간이 약간 넓은데, 너비가 8자, 높이가 7자 8치이다. 아치 위로는 다릿돌을 놓아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게 하였으며, 바깥쪽에는 벽돌로 낮은 첩(堞)을 쌓아 네모난 대포 구멍을 만들고, 그 위에는 14개의 소총 구멍을 내었다.

     누각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겹처마 팔작지붕을 올린 익공식(翼工式) 누각으로, 수원 북쪽을 경계할 수 있도록 사방이 트였다. 이 문은 동쪽 언덕의 정자 방화수류정과 그 아래의 용지, 그리고 이 문 아래로 흐르는 물 사이에 넓적한 바위와 더불어 수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인데, 이 문의 상량문을 보면 아름다움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상량문(上樑門)은 정조 20년 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輔國崇祿大夫判中樞府事)이며 후에 영의정에 추증된 윤숙(尹塾, 1734∼1797)이 썼다.

     "하늘의 궁실과 거리가 멀지 않다. 광악(光嶽)의 구름과 놀이 서로 만나 신비한 무지개를 끌어다 냇물에 뿌리 박게 하고, 화령(花嶺)의 해와 달이 높이 떠 있어서 인가의 연기와 섞여서 땅에 깔린다. 많은 골짜기의 물을 받아들여 큰 내의 언덕을 이루었고, 넘실거리며 흐르는 천리의 물결은 끝내 큰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이 것은 산 밝고 물 좋은 신선의마을이라 땅은 신비롭고 하늘은 견고하여 만물이 다 드러나는 때이다...... 앞 내에 가서 시를 읊으며 돌아오니,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와서 내려다 보고 올려다 보니, 하늘 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한다."

     [수원성의 쇠락과 현재]
     1796년 완공된 수원성은 4년 뒤에 정조가 죽자, 쇠락의 길을 걸었다. 새 고을을 만들어 상업을 권장하는 등 경제력을 갖춘 읍을 만들 정조의 원대한 포부는 정조의 사후에 성장을 못한 채 지방의 한 읍으로 명백을 유지하였다. 그 후는 세도정치로 인한 극도의 사화혼란 속에서 수원성은 그대로 방치된 채 훼손되고, 결국 목조 건물의 대부분은 사라져버렸다. 그리나 수원성곽은 1975년 4개년 계획으로 복원공사가 벌어져, 현재는 대부분의 원형을 되찾았다.

[사진 : 수원성 전경(대원사 간행 '빛깔있는 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