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의 화엄사

     [화엄사의 연혁]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화엄종을 선양하였던 사찰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연기라는 승려가 세웠다고 기록됐는데, 1979년에 화엄경사경이 발견됨으로써 연기는 황룡사의 승려이고, 경덕왕 때에 창건되고 자장 및 의상의 중수 또한 사실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이 절은 신라말 도선에 의하여 크게 확장되고, 고려 광종 때에 흥경선사가 퇴락한 건물을 중수하였다.조선시대의 화엄사는 1424년(세종 6)에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되었지만, 임진왜란의 병화로 완전히 불타버렸고, 석경마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에 각성은 1630년(인조 8)에 중건을 시작하여 7년 만인 1636년에 대웅전을 비롯한 약간의 건물을 이룩하였고, 그 이듬해 선종대가람으로 승격되었다.

     1702년(숙종 28)에는 각성의 뜻을 이어받은 성능이 장륙전을 중건하였는데, 숙종은 이를 각황전이라 사액하고 선교양종대가람으로 격을 높였다. 이후에도 부분적인 보수가 계속 이루어졌지만 대규모으 중수는 없었다. 화엄종의 중심사찰이 되었던 이 절에는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승들이 머무르면서 창사의 이념인 화엄사상의 구현이 울어져 왔다.

     창건주인 연기조사를 비롯하여 정행·낭원·현준·결언·관혜등의 화엄학승들이 머물렀으며, 특히 신라말 화엄학이 남북악으로 나누어져 대립할 때, 후백제 견훤의 복전이었던 고나례가 고려왕건의 복전이었던 해인사의 희랑과 대립된 학파를 형성함으로써 이절은 중요시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의천이 이 절에 들러 연기조사의 영정에 예하고 그를 찬탄하느 시를 남겼으며, 의천의 문도인 정인왕사는 이곳에서 도량을 베풀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서 많은 고승이 배출되었다.

     [화엄사의 건물들]
     대웅전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서 조선 중기에 조성된 삼신의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각황전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은 정면 7칸, 측면 5칸의 2층 팔작지붕으로 그 건축 수법이 뛰어났다. 각황전 내부에는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각황전은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이 긱황전을 복원시키기 위해서 시주를 구할 사람을 정하는데, 항아리에 밀가루와 엿을 넣고서 차례로 엿을 꺼내게 했다.

     손에 밀가루가 묻지 않는 사람을 택하기 위해서이다. 매월이란 중이 손에 밀가루가 묻지 않아 선택되고, 그가 탁발을 나섰다. 그런데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반드시 첫 번째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받으라고 하였다. 길을 떠난 매월은 아랫마을의 가난한 벙어리 노인을 만났다. 시주를 청하자, 그 노인은 계곡의 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시주하였다.

     그 뒤 탁발로 당나라까지 간 매월은 길에서 어떤 소년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년은 황제의 아들로 태어나면서부터 벙어리였는데, 매월을 만나자마자 말을 하게 되었다며 많은 시주를 하였다. 이렇게 매월이 당의 황제를 깨우쳐 준뒤에 중건하였다고 하여 "각황전"으로 부르게 되었다.

     화엄사사사삼층석탑
     국보 제35호로 석탑의 사방에는 머리로써 석탑을 받치고 있는 네 마리의 사자와, 그 중앙에 합장을 한 채 머리로써 탑을 받고 서 있는 승상이 있다. 이는 연기 조사의 어머니인 비구니의 모습이라고 전하며, 석탑 바로 앞 석등의 아래쪽에도 꿇어앉은 한 승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불탑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한 연기 조사가 석등을 머리에 이고 차공양을 올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들 석탑과 석등은 능숙한 기법과 균형있는 조형미로도 주목되지만, 그 특이한 형태는 더욱 눈길을 끈다. 이 석탑은 창건주 연기의 효성을 나타낸 것이기에 효대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구례의 개발과 보호의 방안

     [구례의 땅과 사람의 아픔]
     구례는 예로부터 사람이 가장 살만한 완복지지로 알려져 왔고, 그 결과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집을 짖고 살며 인생의 부귀영화를 꿈꿔왔다. 하지만 그런 바램과는 반대로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면 깊은 상처를 받은 곳도 구례 땅과 사람들이다.

     時運이라 치부하더라도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 간 억울한 생명들이 너무도 많다. 특히 토지면의 산간 사람들은 공비에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죽임을 당했거나, 또는 강제로 부역을 강요당하거나, 또는 정부군에 의해 강제로 고향을 떠난 채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이것은 평화로운 삶을 구하던 사람들에게 전쟁과 이념은 너무도 집요한 불행의 그림자였다.

     그들에게 이념은 교육받은 선택이 아니라, 생생한 피해의 상처 그 자체였다. 그럼으로 구례 특히 토지의 땅은 복지낙토(福地樂土)가 아니라 난토(亂土)라고 부르는 것이 알맞다며 푸념의 목소리가 높다.

     구례의 땅과 사람이 역사적 사건에서 혹독한 시련을 격은 것이 과연 그 땅이 성격이 악독하거나 지기가 쇠락한 결과인가? 아니다. 구례는 예전에도 현재도 사람이 가장 살 만한 생기를 가진 땅이다. 전국 군과 도시 중에서 장수 노인의 비율이 가장 많은 장수촌이 밀집한 것만 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구례의 땅과 사람이 당한 시련은 크게 정유재란 때와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국한되어있다. 그렇지만 한국 역사의 최대의 악몽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 구례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그럼으로 역사적 비운을 총체적으로 판단해 볼 때, 구례 땅과 사람들은 다른 고장에 비해서 그 피해를 적게 받았는지도 따져 볼일이다.

     우리의 시대에 일어난 반란과 전쟁의 피해지 였다는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순반란의 최대 피해지는 여수와 순천이고, 한국 전쟁 중의 빨치산 피해 지역은 거창을 비롯한 지리산을 에워싼 모든 고장이 해당된다. 광주에는 아직도 1980년 5.18민주 항쟁의 깊은 상처가 가슴속에 남아 있다. 이제 구례하면 이념과 사상적 희생지가 아닌 살기좋아 장수하는 고장이란 인식을 전국민에게 심어줘야한다.

     [구례의 개발과 보호]
     구례는 아직 개발의 손길이 덜 닿아 수려한 산과 맑은 강을 그대로 보존한 깨끗하고 조용한 고장이다. 특히 지리산이란 큰산과 섬진강이란 천혜의 자원 속에 그 안쪽에 사시사철 가물지 않는 논밭이 많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가 쾌적하고, 산에서 나는 온갖 나물과 과실 또한 풍부하고, 계곡이 깊고 물이 맑아 피서객이 끊이질 않으니 백년 장수를 꿈꿀 수 있는 곳이다. 그럼으로 구례의 개발은 깨끗하고 풍성한 자연 자원을 활용한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지리산에는 고산 지대를 이용한 자연휴양림을 개발해 도시민의 지친 건강과 활력을 되찾게 하고, 섬진강과 계곡의 맑은 물을 즐기고 이용하는 관광 개발에도 주력할 필요가 있다. 또 천 년 사찰인 화엄사도 좋은 관광자원이다. 하지만 높은 백두대간과 정맥으로 에워싸인 험준한 산맥이 사방을 막아 교통이 불편한데, 이것 또한 단점을 장점으로 살리면 그만큼 마음을 쉬기 좋은 곳이란 뜻도 된다. 세상이 온갖 공해에 뒤덮여 숨이 막힐 지리도 구례만큼은 지리산에서 뿜어 나오는 신선한 공기가 천지를 덮고, 세상이 오폐수로 인해 물을 먹지 못해도 구례에는 어느 곳이나 맑은 물이 샘솟는 곳이다.

     현대인에게 장수의 비결은 좋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이 으뜸이고, 먹거리가 풍부하여 배 주리지 않고 편히 사는 일이 최선책이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이다. 그런 면에서 구례는 아직도 완복지지이고, 누구나 찾아가 살고픈 명당이다.

[사진 : 구례 화엄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