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이론을 종합하고는 그 사상이 한반도에 끼친 영향을 고찰한 최창조는 긴 공백을 두고 6년만에 『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1990)』를 출간하였다.

  그렇다면 풍수에 대한 열정이 식어서였을까? 아니다. 식은 것이 아니라 번뇌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시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으로부터 그는 정통 풍수를 윤리성이 무시되고 자신과 가족의 번영만을 추구하는 '터잡기 술수'라고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먼저 자기 또한 학계의 연구자로서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정통 풍수를 유행시킨 장본인이라며 자책하고 나섰다. 그리고는 실학자들의 풍수적 견해를 바탕으로 정통 풍수는 나라를 망쳐 버릴 독소 같은 사상이란 주장과 함께 , 풍수는 땅을 보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 행실의 근본을 찾는 학문임을 새롭게 밝히겠다고 하였다.

  부모님으로부터 몸을 받아 땅에 의지한지 40여 년, 풍수사상에 접한 지 20년여, 그간 얻은 것은 입으로 지은 죄와 땅을 모르겠다는 것 두 가지 뿐이다. 모르면서 떠든 필자의 말을 듣고 심신을 상한 많은 사람들에게 할 말이 없다.["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 - 머리말]

  책의 전반부는 풍수의 본질을 탐구하겠다는 의도 하에 기(氣)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풍수의 핵심은 생기인데, 생기는 땅 속에서 얻는 음기(陰氣)와 땅 위에서 얻는 양기(陽氣)로 나뉘고, 음기는 혈로써 찾고, 양기는 좌향으로 획득한다. 그 말은 『장경(葬經)』의 '죽은 자를 장사지내면 생기를 받는다(葬者乘生氣也)'라는 말에 근거한다.

  생기는 스스로 형체를 가지지 못함으로 흙에 의지해 만물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때문에 흙은 생기의 몸이다. 따라서 흙이 있으면 생기가 존재한다고 본다.[장경]

  즉, 정통 풍수의 생기는 흙 속에 존재하니 '흙이 곧 생기'라는 등식이다. 그리고 풍수의 이론체계는 먼저 땅 속에서 생토(生土)를 찾는 방법과 과정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런데 최창조는 정통 풍수와 결별하기 위해 우주에 가득 찬 기 에너지를 생기로 달리 보았으니, 그의 생기에는 형체가 없다. 따라서 그것을 찾는 방법도 학문적으로 체계화되기 어렵다는 것을 독자들은 먼저 인지해 주었으면 좋겠다.

  기는 천지만물의 존재 운동의 근원적 법칙이고, 그있게 함의 원천이다. 천지간의 자연현상을 총칭하는 말로서의 천둥, 번개, 바람, 구름, 눈, 비, 우박, 안개, 무지개 등은 모두 기의 변화에 기인한다. 기는 음양의 정(精)이며 몸의 활동력의 바탕으로 모두 살아있는 것에 가득 차 있다. 만물생성력의 근원으로는 힘, 바로 그것이며 빛, 냄새, 소리 등 인간의 일체 감각기관의 근본적인 존재력이다.["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 - p30]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생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직관으로만 인식된다고 주장하고 보니, 과학과 합리라는 기준과 실증적 방법론에서 그의 풍수론은 학문으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것이다. 학문이 아닌 직관이라면 풍수는 당연히 대학 내에서 가르치거나 연구할 대상이 아니다.

  물론 풍수지리의 기술적인 것들이 틀린 것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그것의 합리성이나 지혜의 축적이라는 점들이 분명하게 밝혀질 가능성도 또한 있는 것이다.["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 - p47]

  즉 풍수적 생기를 찾는 기술적인 방법(정통 풍수학의 제반이론)이 틀렸을 가능성까지는 제시했으나, 정작 그가 직관으로 인식된다는 기 에너지를 찾는 기술적인 방법은 더욱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그러자 논제를 급선회하여 풍수가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의 풍토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지리적 사고를 성숙· 발전시킨 지혜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즉, 혈 잡기가 풍수학의 본질이 아니라는 뜻으로 풍수에 지역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 예로서 정통 풍수가 산보다 물을 중시하는 데 비하여 우리는 산을 더 중하게 여겨 왔다고 하고, 마을· 주거지 혹은 묘지의 위치 선정을 위한 자생적인 풍수적 사고방식이 성립된 이후에 중국에서 이론 풍수를 전래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한국 풍수에서 정통 풍수와 자생 풍수를 분리해 한국에서 자생한 풍수에 우월성을 두기 위한 포석이다. 그가 도선의 풍수를 신봉하는 것은 도선이 정통 풍수를 한국적 풍토에 맞게 변화하여 수용했다는 가설에 집착한 결과이다. 도선은 풍수를 이용해 발복할 터를 찾은 사람이 아니라 병든 땅을 치료하기 위해 풍수를 사용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못하는 한 어떤 수단으로도 명당 길지를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 - p137]

  생기를 찾는 풍수의 기술적인 방법이 풍토에 맞게 변화된 것을 윤리성으로 해석한 그는 풍수를 혈을 찾는 학문에서 사람의 문제로 귀결시켰다. 정통 풍수는 사람이 아닌 땅의 기운이 좋고 나쁨에 따라 후손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보는데, 최창조는 인간성이 좋아야 명당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론보다는 사람의 성품이 주요 화제로 떠오른 셈이다. 최창조의 풍수를 이해하려면 먼저 한 권의 책 내에서도 주장들이 여러 번 번복되니, 종잡기 어렵다는 사실을 먼저 주지해야 한다.

  사람이면 모두가 고귀한 것처럼 땅에도 나쁜 땅은 없다. 땅의 용도를 잘못 고르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나 그것은 사람의 잘못이지 땅이 나쁜 때문은 아니다. 풍수 원칙에 꼭 맞는 자리도 허화(虛花)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