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감론 강의에 실패하자, 최창조는 산세의 모양을 보아 혈을 찾는 형기론을 가르쳤다. 서양 지리학의 합리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학생들은 형기적 풍수에는 어느 정도 수긍하였던 모양이다. 자신감을 얻는 그는 학생을 데리고 건원릉(健元陵, 태조)과 홍유릉(洪裕陵, 고종과 순종)으로 답사를 갔다.

  건원릉의 산천 형세를 형기론에 맞추어 설명한 그는 비록 건원릉은 형세 상으로 미진한 점은 있으나 지기(地氣)만은 탁월한 명당 대지라 하고, 형세 상으론 천하 대지인 홍유릉은 기가 없는 빈 땅 즉 허화(虛花)라고 결론지었다. 학생들이 극도로 혼란에 빠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자기들은 어느 곳도 기를 느끼지 못했는데, 선생은 한 곳에서는 기를 느꼈고 다른 곳에서는 기를 느끼지 못했다고 가르친 것이다.

  답사를 마치고는 토론에 들어갔다. 최창조와 학생간의 질문과 답변도 흥미진진하거니와, 그의 풍수 연구에 커다란 분수령이 되었다는 필자의 생각에서, 그 전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학생 : 우리는 한 학기 동안 어렵게 풍수이론을 배웠다. 그리고 오늘 현장에 나왔는데, 이론상 나무랄데 없는 땅(홍유릉)을 보고서는 가짜라고 말하고, 이론상 문제가 많은 땅(건원릉)을 보곤 제왕지지(帝王之地)라고 하니, 그렇다면 우리가 배운 이론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최창조 : 그래서 내가 처음에 말하지 않던가. 중요한 것은 지기의 감지라고. 그것이 되지 않으니 형세를 미루어 지기를 짐작하는 것인데, 그것은 언제든지 틀릴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학생 : 그럼 이론을 무엇 때문에 배우는가. 무릇 이론이란 현상에 투영되었을 때 부합되어야 맞는 것이 아니던가?
  최창조 : 그래도 나름대로의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고는 있지 않는가?
  학생 : 그것은 풍수의 형세론도 마찬가지다. 나름대로의 논리적 일관성은 있다.
  최창조 : 아니다. 그것은 논리적 일관성이 아니라 주관적 관념론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 : 기를 말로 설명될 수 없다면 풍수는 학문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개념인 기의 정의조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어떻게 현대 학문세계에서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는가?
  최창조 : 천지에 미만한 기여. 너를 느낄 수는 있으나, 너를 설명할 수는 없구나!["땅의 논리, 인간의 논리" - p90]

  이제 최창조는 자칭 도안을 가진 사람으로 땅을 만물을 생육하는 어머니라 보고 주변의 산과 물의 형세를 보와 풍수 이론에 근거하지 않고서도 어머니의 젖꼭지[혈]를 찾아내고 또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고 하였다. 자칭 '도안'의 경지로 '한겨레 풍수학교'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나는 인사말에서 풍수 자체의 논리체계에 연연치 말고 허심탄회한 땅과의 대화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를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경험을 갖게 되기를 기원했다. 책을 읽으면 책 속에 산이 튀어나오고 산을 바라보면 거기 이론이 씌여있는 경지. 우리는 이를 도안에 이르렀다고 표현한다.[한겨레신문 "땅의눈물, 땅의 희망, 2,000년 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