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이름 아래 어김 없이 ‘정승’이란 말을 붙여 부르는 재상이 있는데, 황희(黃喜) 황정승, 맹(孟)고부리 맹정승(본래의 호는 古佛인데, 이 경우에는 꼭 ‘고부리’라고 한다.) 상진(尙震) 상정승, 오리(梧里) 이(李)정승의 네 분 정승이다. 이 네 어른은 워낙 덕망이 뛰어나고 정승 구실을 잘 해 붙여진 이름일 것이나, 어쨌든 정승이란 말은 단골로 붙어 다닌다. 이 중의 한 분인 맹고부리 맹정승의 산소를 찾아 나섰다. 맹정승은 성품이 소탈하고 조용하였으며, 엄하지 않아 비록 아랫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공복(公服)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가 정중히 맞아들여 윗자리에 앉히었고, 돌아갈 때에도 공손히 배웅하였다. 나들이 할 때는 언제나 ‘그리마’라는 검은 소를 타고 다녀 보는 이가 재상인지를 몰랐으며, 청렴하고 검소하여 집에는 먹거리가 충분하지 않았다. 소탈한 성품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고불의 묘는 광주군 광주읍 직리 뒷산에 있다.


   맹고부리 맹정승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은 조선 초기의 재상으로 벼슬은 좌의정을 지냈으며 79세까지 장수하였다.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 본관은 충남 신창(新昌)이다.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을 지낸 희도(希道)의 아들이며, 최영(崔瑩) 장군의 손자사위이다. 1386년 문과 을과(乙科)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춘추관 검열을 시작으로 조선조에 들어서는 예조 의랑을 거쳐 좌의정을 지냈다. 성품이 어질고 부드러우면서도 조정의 정사에는 과단성이 있었다. 사헌부 대사헌으로 있을 때 태종의 딸 경정공주(慶貞公主)의 남편인 평양군(平壤君) 조대림(趙大臨)을 왕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잡아다 고문하자이 일로 태종의 노여움을 사 죽을 뻔 하였으나, 영의정 성석린(成石璘)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 남았다. 고불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1411년 판충주목사에 임명되자 예조에서는 음률에 정통한 고불을 선왕의 음악을 복구하기 위하여 서울에 머무르며 음악을 가르치도록 건의하고, 또한 이듬해 관찰사로 임명되자 영의정 하륜(河崙)은 고불로 하여금 악공을 가르치도록 아뢰어 결국은 부임하지 못하였다.

   효심이 지극하였던 고불은, 모친이 돌아가자 7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고, 장사를 지낸 후도 묘 옆에 여막을 짓고 조석으로 3년 간이나 예를 올렸다. 이 때 돼지가 묘 앞에 심은 잣나무를 비벼대어 죽이자, 잘못을 뉘우치며 돼지를 다음 날 호랑이 밥으로 주니, 사람들은 효있는 사람이라 하였다. 이처럼 효성이 지극한 고불이라, 그 후 여러 번 아버지를 모시고자 벼슬을 물러나려 하였으나 그 때마다 허락되지 않았고, 호조 판서로 있을 때에 늙은 아버지가 병으로 눕자 또 다시 사직을 원하니 임금도 할 수 없이 그를 충청도 관찰사로 삼아 아버지를 곁에서 봉양하게 하였다. 1420년에 이조 판서에 오르고, 1427년 우의정에 올랐을 때, 「태종실록」을 편찬 감수하는 직책을 맡은 적이 있었다. 실록이 완성되니, 세종이 보자고 하였다. 그러자 고불은, “왕이 실록을 보고 고치면 반드시 후세에 이를 본받게 되어 사관(史官)이 두려워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니, 세종은 그 말을 따랐다. 나이가 많아 벼슬을 물러났으나 나라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임금은 반드시 고불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한다. 어느 날 김해에 있는 연자루(燕子樓)에 올라 시 한수를 읊기를,

가락이 남긴 터는 몇 해나 되었는가 (駕洛遺墟幾見春)
수로왕의 문물도 티끌로 돌아갔네 (首王文物亦隨塵)
가련해라 저 제비는 마치 옛이 그리운 듯 (可憐燕子如懷古)
연자루 곁에 와서 주인을 부르네 (來傍高樓喚主人)



   맹 정승의 유택

   광주읍에서 성남으로 가다가 직리로 가는 2차선 도로로 접어들면 간신히 차 두 대가 비껴 갈 수 있는 길이 있고, 내를 건너 산 밑으로 가면 길은 계속 산 속으로 이어지고, 잡초와 덩굴이 우거져 헤쳐 나기 어렵다. 더운 날씨라 등에선 땀이 흐르고, 풀에서 솟는 더운 기운은 숨 쉬기 조차 힘들게 한다. 고불의 묘는 산 중턱에 있는데, 망주석이 두 개이고 그 앞에는 문신석과 동자상이 있다. 묘 중앙에는 묘비와 상석이 놓였고 오른쪽에는 신도비가 있는데, 묘는 네모지게 호석을 쌓고 위로 갈수록 둥근 형태의 봉분을 만들었다. 뒤에서 보니 앞쪽에는 문형산(497m)이 보이고 산세와 전망이 좋아 올라 오면서 한 불평이 저절로 가신다. 묘비에는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集賢院事世子傅 諡文貞 新昌孟公之墓’라 쓰여 있는데, 그러나 이 묘비에 쓰여진 명문 중 집현원(集賢院)은 집현전(集賢殿)의 잘못된 표기이다. 또한 고불은 평소에 유언으로, “내가 타고 다니던 그리마를 내 곁에 묻어다오.” 라고 하였는데, 평소 타고 다니던 소가 죽자 후손들이 맹고불 산소 윗쪽에 소무덤을 따로 만들어 그 유언을 따랐다 한다.



   공당문답(公堂問答)

    고불에 대한 일화는 여러 문헌에 재미있게 전하여 오는데, 하나같이 넓은 도량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소탈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 들이다. 고불은 청렴하여 살림살이가 항상 부족하였기 때문에 먹거리는 늘 녹미(祿米)로 충당하였다. 하루는 햅쌀로 밥을 지어 드렸더니, “어디서 쌀을 얻어 왔느냐.”하니 부인이 주저하며 대답하기를, “녹미가 심히 묵어서 먹을 수 없기에 이웃집에서 빌렸나이다.” 하자, 고불은 얼굴을 찌푸리며, “이미 녹을 받았으니 그 녹미를 먹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무었 때문에 빌렸오.” 라고 부인을 몹시 나무랐다. 또한 필원잡기」에 의하면, 고불은 옥피리 불기를 좋아하여 항상 피리를 갖고 다녔으며, 피리를 불 때는 손님을 맞이하지 않다가, 공무에 관한 일을 품하려 오는 자가 있으면 언제나 문을 열고 맞이하였다 한다. 워낙 청렴한 선비라 여름이면 소나무 그늘에 앉고, 겨울이면 방안 부들방석〔蒲團〕에 앉되 좌우에는 아무런 집기가 없었고 일을 품하는 자가 가면 곧 문을 닫고 피리를 불어, 누구든지 동구 밖에 이르러 피리 소리가 들리면 고불이 있음을 알았다 한다. 그러나 고불이 그토록 아끼던 옥피리는 일제 때 어떤 일본인 교수가 보자고 하여 그 후손이 보여 주었는데, 감상하다가 그만 떨어뜨려 피리가 동강이 났고, 더욱이 고불이 쓰던 포도 덩굴 문양의 벼루까지도 깨졌다 한다.

   온양에서 태어난 고불은 선친을 찾아 뵙고 또한 온천욕도 좋아하여 때때로 온양으로 내려왔는데, 행차할 때에는 가마를 타지 않고 늘 검은 소를 탔으며 관가나 역원이 아닌 주막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근처 원님들은 서로 그를 잘 모시어 높은 벼슬을 하려고 애를 태웠는데, 하루는 고불이 내려 온다는 이야기가 있자, 양성(陽城)과 진위(振威)라는 두 원님이 장호원에서 아침부터 기다렸다. 마침 그들 앞으로 어떤 늙은이가 소를 타고 지나 가자, 그들은 화가 나 하인을 시켜 그를 혼내어 주라고 하였다. 하인이 그 노인을 세우고 무례함을 힐책하니, 하인에게 하는 말이, “네 가서 온양에 사는 맹 고불이라 일러라.” 하였다. 하인이 돌아와 그대로 이르자, 원님들은 깜짝 놀라 달아다가 가지고 있던 관인(官印)을 언덕 밑에 있는 연못에 빠뜨렸다. 이러한 연유로 뒷사람들은 도장이 빠진 곳이라 하여 그 연못을 ‘인침연(印沈淵)’이라 불렀다 한다. 또한 고불의 집이 어찌나 헐고 보잘것 없었던지 병조 판서가 일을 품하러 와 방에 앉으니, 마침 구멍이 난 지붕으로 소낙비가 쏟아져 관복이 모두 젖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자 그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정승의 집이 그러한데 내 어찌 바깥 행랑채가 필요하리요.” 하며 바야흐로 짓던 바깥 행랑을 철거하였다 한다. 고불은 효성이 지극하고 청백하여 그의 집은 비바람을 가리지 못하였고, 출입할 때도 늘 가마 대신 소 타기를 좋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그가 재상인 줄을 몰랐다하니 얼마나 소탈한 성품인가.

   고불에 대하여 가장 잘 알려지고 또한 재미있는 일화는 용인에서 있었던 ‘공당문답(公堂問答)’이다. 하루는 고불이 온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용인의 한 주막에 묵게 되었는데, 그 주막에는 행장를 멋있게 꾸민 젊은 사람이먼저 와 다락[樓] 위에 앉아 있었다. 할 수 없이 다락 아래에 짐을 풀고 앉으니, 노인이 밑에 있는 것이 안되었든지 올라오게 하여 이야기도 하고 더불어 장기도 두었다. 그는 영남 사람으로 녹사(錄事) 시험에 응시하러 가는 도중이었다. 그러자 고불은 그에게 농으로 말 끝에 ‘공’과 ‘당’을 넣어 말하기로 하였다. “무엇하러 서울로 올라가는 공” “벼슬을 구하러 올라간 당” “무슨 벼슬인 공” “녹사 취재란 당” “내가 마땅히 시켜주겠 공” “에이 그러지 못할 거 당” 이런 일이 있은 뒤에 고불이 정사를 보고 있는데, 그 사람이 과거에 급제하여 인사차 찾아왔다. 고불이 그를 보고 말하기를, “어떠한 공” 하니 그 사람은 비로소 깨닫고 송구스러워 말하기를, “죽어지 당” 하였다. 그러자 한 자리에 있던 재상들이 무슨 소리인가 궁굼하여 그 연유를 물으니, 고불은 자초지정을 이야기하고 드디어 그 사람을 녹사로 삼았다 한다.


    공불여맹(孔不如孟)

‘   거짓말은 사람보다 빠르다’ 라는 말이 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은진미륵불 갓 위에 대추나무를 심었다. 돌 위에 심었으나, 그 나무는 그 후 크게 자라 풍성하게 대추가 열렸다. 그러나 너무 높은 곳이라 아무도 딸 수가 없으니, 어떤 사람이 미륵불 얼굴에 고추가루를 뿌리면 그 미륵불이 매워서 재채기를 할 것이고 그러면 대추가 떨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주워다 팔면 큰 돈을 벌게 될 것이라는 거짓말을 한 뒤 수원에 이르니, 벌써 대추를 주우려 출발한 사람이 있었다 한다. 옛날 홍계관이라는 점장이가 있었다. 어찌나 귀신같이 점을 잘 치는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 어느날 상진(尙震) 정승이 길을 가는데 그 점장이가 스스로 점을 쳐 주겠다고 하였다. 워낙 젊잖고 도량 있는 정승이라 그 말을 무시하고 돌아서니, 그는 끈질기게 계속 졸라 하는 수 없이 응하였다. 사주를 풀고 손금과 관상을 본 후, 그 점장이는 깜짝 놀라며 아무 날 어느 시에 죽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상정승은 워낙 용한 점장이의 말이라 그 말을 믿고 모든 것을 정리한 채 죽을 날짜만 기다렸다. 그러나 죽기로 정한 날이 지나도 죽지 않으니, 상정승은 다시 불러 그 연유를 물었다. 당황한 홍계관은 다시 한 번 자세히 점을 치더니, “혹시 남이 죽을 것을 도와 은덕을 베푼 일이 있읍니까?” 하였다. 사람의 명이 다 해도 생전에 은덕을 베풀면 그 명이 길어지는데 혹시 그런 일이 있는가를 물은 것이다. 그러자 상정승은 한참을 생각한 끝에 말하기를, “얼마 전에 궁궐에 들어 가는데, 돈화문 앞에 웬 비단 주머니가 있어 주어 보니 은수저 10벌이 있었네. 이에 근처에 적어 놓기를, 비단 주머니를 잃은 사람이 있으면 어디로 오라고 하였더니, 어느 궁인(宮人)이 와서 찾기에 주었네. 사연을 들으니 그 여자는 집에 있는 오라비의 생일에 선물로 궁중의 물건을 구경하는 즐거움을 주려고 가지고 나갔다가 잃었다는 것이네. 생명의 은인이라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갔네.” 하였다. 당시에 은수저는 임금이나 고관대작만이 사용할 수 있었는데, 더구나 궁중의 물건을 몰래 가져 나갔으니 그 일이 발각되면 일족이 멸할 수 밖에 없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자 홍계관은 무릎을 치면서, “그처럼 많은 사람을 살렸으니 하늘도 어찌 못합니다. 한 10년은 더 사시겠읍니다.”하였다. 실제로 상정승은 65세에 영의정이 되어 5년간 국정을 총괄하셨고, 나이가 들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궤장(几杖)을 하사 받았으며 청렴하고 관후 인자한 명재상으로 72세에 운명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성씨가 휼륭하냐 못하느냐 하는 기준은 대개 선조들이 어떤 벼슬을 하였고, 또한 얼마나 많은 훌륭한 인물을 냈느냐에 따라 우열이 정해진다. 예전에 공불여맹(孔不如孟), 용불여어(龍不如魚), 마불여우(馬不如禹)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공씨는 맹씨보다 못하고, 용씨는 어씨보다 못하고, 마씨는 우씨보다 못하다’라는 뜻이다. 양반들이 할 일 없고 적적할 때 서로 잘났다고 떠들던 이야기이니 믿을 것은 못되지만, 맹씨 집안은 맹정승으로 인하여 명성이 급격히 올라갔음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