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산재한 역사적인 인물의 묘를 찾아다니고, 또 그분들의 일생을 더듬다 보니 어느새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회사의 업무도 아닌 일이었지만 그저 좋아서 찾아다니고 썼다. 바쁜 직장인인 탓으로 휴일을 이요하여 130명에 이르는 선현을 찾아 떠나고, 평일에는 주경야독으로 글을 써 현재 문헌과 기록으로 전하는 선현 모두를 3권의 분량으로 세상에 내게 되었다. 먼저 땀을 씻을 여유도 없이 걱정부터 앞선다.

  남이 찾지 않는 무덤을 구태여 찾아다닌 이유는 무엇일까? 무덤들이 있는 곳은 보통 깊은 산속의 양지바른 곳으로서 노송이 병풍을 치고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 약간 으스스하기도 하다. 망자(亡者)가 일어나 객(客)을 맞을 리 없고, 선조에 대한 존경과 자랑섞인 후손의 안내가 있을 리도 없다. 들길 산길을 가다 사람을 만나면 앞세우고 물어서 찾아갔다. 죽은 사람이 사는 집[유택(幽宅)].

  그러나 집주인은 있으되 인기척은 없다. 살아서는 같은 하늘을 쳐다보고 살 수 없을 만큼 원한에 사무친 사람도 죽어서는 서로 이웃해 살며, 누명을 받아 억울하게 죽은 원혼, 천군만마를 호령했던 장부의 기개도 묵묵부답....... 이렇듯 죽음은 모든 원한과 욕심을 잊게 하는 분수령인가?

  그러나 확실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무덤은 그 주인이 이 땅에서 실제로 살았다는 사실이며 증거이다. 덕망높은 정승도, 당대를 풍미했던 정치가도, 천하를 호령했던 장군도, 문필에 뛰어났던 문장가도, 뭇 사내의 애간장을 태웠던 시기(詩妓)도, 개혁을 부르짖었던 혁신주의자도 모두 이 땅의물을 마시고 살았다. 시공(時空)을 초월하면 우리와 똑같이 삶의 애증에 몸부림치는 이웃인 것이다. 진실로 전설과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똑같이 이땅을 살다간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선현의 유택을 찾고 나면 남아 있는 내 삶을 좀더 잘 가꾸어야겠다는 각오와 다짐을 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일상에선 잊고 지내다가 어느 무덤을 찾고서야 문득 깨닫는다. 무덤은 나 또한 예외가 아님을 확인시켜주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 생명을 다하면 흙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 어찌 지금의 내 인생을 열심히 가꾸며 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이 유한하니 삶은 내게 너무도 고귀하다. 따라서 선현의 묘를 찾는 시간은 바로 내 삶의 질을 높이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가 꼭 지키고 보존해야 할 선현의 유택이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날로 그 자취가 사라지고 있다. 옛날에는 궁벽한 산골이었을 그곳이 지금은 공단과 아파트가 들어서고, 인적이 닿지 않는 곳엔 잡초와 잡목이 뒤덮여 형태까지 잃어버린 것이 많다.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사라져버리고 말 우리의 문화유산을 두 발로 찾아다니며 밝힌 이 글이, 우리의 역사적이 인물에 대한 실체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이 땀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 : 역사인물의 묘를 찾아디니며......('한국의 묘지기행'의 머릿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