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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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삼국유사 속의 숲

[숲이 희망이다 5]삼국사기·삼국유사 속의 숲




숲에서 태어나 숲의 나라를 이루도록 한 이가 김알지(金閼智)다. 시림(始林)이라 불리는 숲은 알지의 탄생에서 지어진 이름 같고, 그 숲을 다시 계림(鷄林)이라 불러 신라를 가리키는 나라 이름으로까지 쓰지 않았는가. 금빛 궤짝에서 나왔다고 김씨 성을 가지게 된 알지는 탈해왕(AD 57~80년) 때 사람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알지의 탄생을 이렇게 일러주고 있다. 서기 60년 8월4일 밤, 월성의 서쪽 마을을 지나가던 호공은 숲 한 가운데에 매우 밝은 빛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 드리웠는데, 구름 속에 황금 궤짝이 걸려 있고, 궤짝에서는 빛이 새어나왔다. 또 흰닭이 나무 아래에서 우는 것이었다. 호공이 이 사실을 탈해왕에게 알렸고, 왕은 몸소 숲으로 와서 궤짝을 열어보는데, 거기서 어린 사내 아이가 누워있다 일어났다. 계림에서의 알지 출현이었다. ‘삼국사기’는 알지의 탄생에 대해 ‘삼국유사’와 사뭇 달리 기술하고 있다. 처음 이상한 빛을 발견한 사람이 왕이고, 호공은 왕의 명령을 받아 현장을 살펴본 다음, 문제의 궤짝을 들고 왕궁으로 향하고 있다. 탈해왕 쪽을 훨씬 배려한 느낌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가 알지의 탄생을 두고 다른 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알지는 스스로 왕이 된 사람이 아니다. 200여년이나 기다린 끝에 그의 후손이 김씨 성을 가진 첫 왕으로 등극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을 그리는 시각은 다르다. 일연은 알지가 출현하는 광경을 쓰고 난 다음 “혁거세의 옛일과 같다”고 부연한다. 혁거세가 신라 땅으로 올 때, 남산 아래 나정 곁에 이상스러운 기운이 번개처럼 드리우고, 흰말 한 마리가 무릎 꿇어 절하는 바로 그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흰닭이 아닌 흰말이며, 알에서 깨어나오는 과정이 다르다면 다르다. 그럼에도 혁거세와 알지를 연결하려는 일연의 의도에 일단 주목해 보자.


탈해왕이 알지를 태자에 책봉하였지만 알지는 뒤에 바사에게 양보하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바사는 탈해 앞의 왕 노례의 아들이다. 신비스러운 탄생은 박씨의 혁거세, 석씨의 탈해 그리고 김씨의 알지가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알지는 200여년 뒤 그의 후손이 왕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그랬음에도 신라 왕위 계승의 주도권은 결국 김씨가 쥐게 되었다는 점을 또 주목하기로 하자.


그 핵심에서 우리는 계림이라는 곳의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계림은 본디 시림이었다. 생명이 비롯하는 숲이다. 흰닭이 울어 새벽을 깨우는 곳이다. 그래서 계림으로 바뀌었고, 그것이 곧 나라의 이름이 되었다. 모두가 환호작약하는 생명을 탄생시킨 숲이 곧 나라의 처음이라 가리키는 듯하지 않은가.


한편 신라의 마지막도 숲에서부터 그 소식이 전해 오고 있다. 제48대 경문왕(861~874)의 시기는 신라 하대의 혼란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왕은 희강왕의 손자다. 그런데 희강왕은 사촌간인 민애왕에게 죽임을 당했고, 민애왕은 또다른 사촌 신무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물고 물리는 형제간의 살육극 끝에 왕들은 1년 남짓 자리에 있다가, 권력은 고사하고 목숨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왕손 시절의 경문왕은 무엇보다 덕치(德治)와 의리를 무겁게 여기고자 했던 듯하다. 그러기에 혼란을 끝낼 적임자로서 드디어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삼국유사’에서 일연은 말한다.


시대와 함께 밀려오는 혼란은 어느 뛰어난 한 사람의 힘으로 제어하기 어려운가 보다. 그것은 경문왕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치세(治世)가 시원치 않았음을 ‘삼국사기’는 곳곳에서 증언하지만, 나는 경문왕의 개인적인 능력이나 덕성이 아닌 시대의 한 흐름을 생각한다. 경문왕도 어쩔 수 없는 침몰의 그림자가 신라 하늘에 드리우고 있었다. 바로 이 왕에게 신라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절규와 탄압이 교차하는 비극의 숲 이야기 말이다. 일연의 이야기 솜씨에 새삼 탄복하는 ‘삼국유사’에만 나오는 내용이다.


왕위에 오른 다음 경문왕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커졌다. 사건은 거기서 벌어진다. 귀가 커졌다는 것을 사실로 아니면 어떤 상징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뒤로 미룬다. 그것을 오직 왕의 두건을 만드는 기술자만이 알았다. 그러나 입 밖에 낼 수 없는 법, 그는 죽을 무렵에야 대나무 숲 깊숙한 곳에 들어가,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고 외쳤다. 그 말을 뱉지 않고는 쉽게 눈도 감을 수 없었던가 보다.


그 다음부터 이야기는 다른 나라 동화와 비슷하면서 달라진다.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는 소리가 울려온다는 대목은 같고, 왕이 이 소리를 싫어하여 대나무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를 심게 했다는 대목은 다르다. 그랬더니 바람이 불면 다만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네”라고 울려왔단다. 이야기가 상징하는 바야 여러 가지다. 흔히 말하는 여론이라든가 탄압과 저항의 함수관계를 들먹일 수 있다. 신라 하대의 혼란스런 정치상을 생각할 때 맞는 말이고, 일연은 그 같은 메시지를 이야기로 구체화시켜 놓은 듯하다.


그러나 감추어야 할 비밀을 가진 사람은 오직 스스로 혼자 지고 가야 하는 고민으로 얼룩져 있다. 기울어가는 나라의 사망선고를 왕은 숲으로부터 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산수유를 베어버리면 거기서 자라난 풀들이 일어나 외쳤을 것이다. 신라를 숲에서 시작하여 숲에서 끝난 나라라고 보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숲을 살렸을 때 나라가 살았고, 숲을 죽였을 때 나라도 죽었다. 〈고운기/시인·동국대 연구교수>

외국 신화 속의 숲

나무의 능력, 숲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