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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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신화 속의 숲

[숲이 희망이다 4]외국 신화 속의 숲



유월의 숲. 밤꽃이 피었고, 잣나무가 열매를 맺었고, 숲 그늘엔 으아리와 인동이 꽃을 피웠다. 유월의 숲. 검붉게 익어 가는 버찌와 오디, 꾀꼬리와 흰배지빠귀의 지저귐. 깊은 산 어디쯤에서는 옥잠난초와 수정난풀이 꽃을 피웠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림동화집’으로 널리 알려진 그림 형제는 언어학자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는데, 그들은 ‘신전’이라는 튜튼어에서 게르만족의 가장 오래된 성소는 숲이었다고 말했다.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목에 귀를 기울여보자.


“신성한 숲은 고대 게르만족 사이에서는 보편화된 것이었고, 나무숭배는 오늘날 그들의 후손들에게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과거에 그들이 행한 나무숭배가 얼마나 진지하였던가는 나무의 껍질을 벗긴 사람에게 내린 가혹한 형벌을 통해서도 짐작이 된다. 죄인의 배꼽을 도려내 그가 벗겨낸 부분에 못질을 하고, 그의 내장이 줄기를 둘러쌀 때까지 나무 둘레를 돌게 하였다. 이 형벌은 죄인의 살갗과 내장으로 나무의 상처 입은 부분을 대신케 하는 데 그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생명으로써 생명을 보완하고 사람의 생명으로 나무의 생명을 보충하고자 했던 것이다.”


스웨덴의 웁살라에 있는 한 성림(聖林)은 그곳의 모든 나무들이 신으로 숭앙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앞에서 인용된 형벌이 지금 우리가 느끼듯 그렇게 가혹한 것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러 세기 동안 보존되어온 울창한 숲. 특별한 종교의식이나 성지순례라는 목적 없이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그 숲에는 신들이 살고 있었다. 농경문화가 정착하면서 인류에게 곡물의 씨앗을 전해주고 그 재배법을 가르쳐준 농경신들이 신앙의 대상이 되기 훨씬 전부터 고대인들은 숲의 신과 나무에 깃들인 정령들을 숭배해왔던 것이다.


숲은 또한 선조들의 영령이 깃들인 곳이었고 숲의 신은 그러한 모든 영혼들의 힘을 관장하고 있었다. 봄에 곡식의 싹이 움트는 것은 땅에 묻힌 선조들의 힘에 좌우된다고 믿은 고대 농경사회에서 숲은 삼라만상의 생명력을 주재하는 절대적인 힘 그 자체였다. 자크 브로스는 ‘나무의 신화’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숲은 조상의 무덤이 결집되어 있는 성소 자체를 보호함은 물론이고, 한 집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의 무덤까지 보호한다. 그 집안의 후손들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성림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전통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보존되어 있다.”


숲의 신은 때때로 수목정령으로 변형되어 특정식물의 수호령이 되기도 한다. 북아메리카의 히다차인디언은 미주리강 상류의 계곡에서 가장 큰 나무인 백양나무를 베는 것은 죄악으로 생각하고, 큰 통나무를 필요로 할 때는 저절로 넘어진 나무만을 썼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그런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노인들은 자기 부족의 불행이 백양나무 정령을 무시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남태평양에 널리 퍼져 있는 홍수 신화에서 숲은 홍수를 막는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하와이에는 카-와이-오-울루라는, ‘발생의 물’을 빨아들여 성장하면서 그 물을 거대한 뿌리에 저장해두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만약 그 나무가 없었다면 모든 골짜기들은 물에 잠겼을 것이라고 원주민들은 말한다.


가이아나의 아카와족 또한 홍수의 기원을 한 그루의 나무에서 찾고 있다. 우주가 탄생하던 무렵 지고의 신 마코나이마는 온갖 짐승들을 창조하고 아들 시구에게 그들을 다스리게 했다. 그때 지상에는 거대하고도 아주 경이로운 나무 한 그루가 솟아 있었다. 가지에는 갖은 열매들이 열리고, 줄기 둘레에는 바나나와 옥수수를 비롯한 온갖 곡식들이 자라고, 뿌리 주변에는 고구마(?) 감자(?) 마 등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 이를테면 그 나무는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모든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은혜로운 나무였다. 천신(天神)의 아들 시구는 이 나무의 혜택을 온 세상에 퍼뜨리고자 했다. 이 나무가 자라는 곳에는 굶주림과 배고픔 따위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구는 나무를 베어서 그 조각과 씨를 세상 곳곳에 뿌리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 기적의 나무를 도끼로 찍어 쓰러뜨린 순간 시구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베어낸 나무의 그루터기 안은 동굴처럼 뻥 뚫린 채 오직 물만 가득 차 있었는데, 그 물은 땅 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거대한 수원지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무는 그 물을 빨아들여 온갖 열매와 곡식을 제 몸 안에서 키워냈고, 또 그러면서도 지하의 수맥이 터져 땅 밖으로 넘쳐흐르는 것을 막고 있었다. 이 사실을 재빨리 간파한 시구는 야자나무 잎으로 짠 덮개를 그루터기에 덮어 홍수를 막았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미봉책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게으르고 심술궂은 한 갈색 원숭이가 그 뚜껑을 열었고, 그와 동시에 그루터기 안에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솟아올라 땅을 뒤덮어버렸다. 시구는 짐승들을 거느리고 산으로 달아나 야자나무 위로 올라갔다. 폭풍과 함께 어둠이 밀어닥쳤다. 홍수 기간 동안 그들이 살아남는 데에는 야자 열매가 큰 도움이 되었다. 물이 빠지자 그는 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두 조각의 나무를 비벼 불을 지피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궈나갔다.


땅 속 거대한 수원지에 뿌리를 박고서 그 태고적 샘물을 끌어올려 생명의 양식을 가꾸고 또한 그 그루터기로서 지하의 물줄기가 지상으로 범람하는 것을 억제하는 나무. 약간의 과장은 있지만, 신화 속의 그 나무가 갖는 역할은 지구 생태계에서 각각의 나무들과 숲이 차지하는 위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김영래/소설가·시인〉 [경향신문 게재]

단군 신화 속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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