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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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격이 부여된 나무들























[숲이 희망이다 31]인격이 부여된 나무들



나무에 인격이 있을까? 나무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나무와 대화하고, 사물이 아닌 생명체로서 환대하고 찬사를 보내면 나무에도 인격이 생길 것이다. 감정이입과 일체감을 형성하려면 나무를 인격체로 보는 마음이 중요하다. 나무를 사람과 같이 격식을 차려 대접해 준다면 나무는 여름에는 그늘을 제공하고, 겨울에는 연료를 공급해서 따뜻하게 해주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장소를 제공한다.


나무를 인격체로 대한 것은 글에서 잘 나타난다. 동량(棟梁)이란 글자는 건축재라는 뜻뿐만 아니라 재주 있는 출중한 사람을 뜻할 때 쓰인다. 또 속담에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날 없다’ ‘나무 같은 사람에 돌 같은 마음이다’ ‘나무도 나이 들면 속이 빈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나무를 의인화한 것이다. 경남 남해 물건리에는 고기를 모으는 오래된 어부 방조림이 있다. 마을사람들이 사랑포구나무라고 부르는 팽나무는 할머니 나무이고, 바로 옆의 이팝나무는 할아버지 나무라고 부르는데 모두 마을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무에 사람과 같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준 실례로는 석송령이 대표적이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에 석송령(石松靈)이란 600여살 된 소나무가 있는데, 80년 전 석평마을에 사는 이수목이란 노인이 소유하던 토지를 이 나무이름으로 기증하고 세상을 떠나자 주민들이 그의 뜻을 모아 등기를 함으로써 재산을 소유한 나무가 되었다. 성(姓)은 석(石)이고 이름은 송령(松靈)이다. 땅에서 나오는 소득에 대한 여러 가지 세금을 내고 있으며 은행에 저금통장이 있어 해마다 이 지방의 학생을 골라 장학금을 주고 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에는 거금인 5백만원을 이 나무에 준 일이 있는데 이 또한 석송령을 인간으로 대접했던 까닭이다. 주민들은 석송계를 조직하고 매년 음력 대보름날 석송령 앞에서 지난 한 해 동안 변고없이 깨끗하게 지낸 사람을 골라 제주(祭主)로 하여 제사를 올리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빈다. 나무에 재산을 물려주는 바람에 자손 대신 마을사람들이 묘소와 재산을 관리하고 마을 화합의 구심점이 되었으니 석송령은 가히 인격을 가진 나무의 으뜸인 것이다.


한편 나무를 의인화하여 벼슬을 주었다는 전설도 있다. 속리산 법주사 입구의 천연기념물 정이품송(正二品松)은 1464년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소나무의 아랫가지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輦)이 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가 가지를 위로 들어 무사히 지나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에 세조는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경기 양평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 세종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다. 예전 서울 서대문 밖 의주로 서편의 천연동(天然洞)에 반송정(盤松亭)이 있었다. 반송정 남쪽에 있는 모화관(慕華館) 부근에 오래된 소나무가 아름답게 굽은 줄기를 자랑하며 녹음을 제공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고려왕이 서울에 행차했다가 비를 만나 이 나무 밑에서 비를 피했다. 그래서 왕이 장군(將軍)이란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나무에 인격을 부여한 예는 중국의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진나라 시황제가 태산에 올랐다가 폭풍우를 만나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그 후 황제는 이 소나무에 오대부(五大夫)라는 지위와 토지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또 중국 숭산(嵩山)에는 줄기가 다섯 아름이나 되는 크고 늙은 측백나무가 서 있었는데,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대장군(大將軍)의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 당나라의 무후(武后)도 측백나무를 오품대부(五品大夫)에 봉(封)했다고 전해진다.


나라의 변고가 있을 때 이를 알렸다는 전설도 재미 있다. 용문산 은행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랐다는 설이 있다. 어떤 이가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더니 그곳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가 있고, 정미의병(1907년)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


조선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의 울창한 솔숲 가운데에 600년된 관음송이 있다. 단종의 애달픈 생활을 지켜보아서 관(觀)이고 그의 오열을 들었으니 음(音)이라 하여 관음송이다. 두 갈래로 갈라진 한 가지는 곧바로, 한 가지는 서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있는데 이 갈라진 가지 사이에서 단종이 유배생활 중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 나라에 큰 변이 있을 때 나무껍질이 검은 색으로 변해 변고를 알려주어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시하고 있다. 경남 거창군 위천면 당산리의 600년된 미인송은 경술국치, 광복 및 6·25전쟁 등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렸다는 전설이 내려오며, 지금도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 주민이 모두 모여 영송제(靈松祭)를 지낸다.


아마도 나무는 사람없이 살 수 있으나 사람은 나무없이 살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기후를 가진 곳에서는 소수의 사람이 살아가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나무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선조들이 나무를 사람처럼 귀히 여긴 것이 자연보전사상의 모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천용/국립산림과학원 임지보전과장〉[경향신문 게재]

유물로서의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