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희망이다 28]동양화 속의 숲
나무가 무성한 것을 숲이라고 한다. 숲속에는 나무 외에도 여러 요소가 있다. 숲길을 따라가 보면 산짐승들의 흔적을 볼 수 있고,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구부리면 지천에 핀 야생화의 향기가 코를 감싸고, 풀벌레의 사랑노래가 교향곡을 이룬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돌과 바위, 태고적부터 솟아오르는 샘물과 물줄기를 이룬 계곡, 그리고 시원한 그늘과 바람, 젖어드는 달빛이 있다.
자연의 섭리 속에 뭇 생명들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숲은 하나의 완벽하고 지속적인 거대한 생명체이다. 숲은 곧 어머니 품속과도 같은 생명의 삶터이다. 이런 숲에서 문학이 나오고 음악이 들리며 미술이 탄생한다.
숲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파생된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예술적 성정(性情)으로 표출한 것이 산수화이다. 산수화에는 자연의 형이상학적 관점이나 문학·철학·예술적 정서나 흥취로서의 작품들이 많다. 특히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적(道家的) 풍류(風流)를 지향하는 경향이 짙다. 자연미에 대한 인식과 동경, 향유욕구로 말미암아 직접 자연을 유람하고 감상하면서 시도 짓고 그림도 그렸다. 자연미를 반영한 산수화의 감상으로 얻을 수 있는 정신적 향수는 다른 데에 비길 수 없다. 실제 산수의 자연미를 감상하는 것을 대체하여 와유(臥遊)가 오히려 산수화 감상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것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절대적 이상향을 직접 체험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것을 예술의 형식으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한 것이다.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체득하고 정경(情景)을 융합하여 필묵(筆墨)으로 승화한 것이 산수화라고 말할 수 있다.
산은 봉우리로 솟은 형상이다. 여기에 골격을 유지하는 바위가 있고 시공(時空)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무가 감싼다. 산은 거대하기 때문에 점이나 선 등 추상적인 조형기호를 집적구축(集積構築)하여 요철(凹凸)·원근(遠近)·맥락(脈絡)을 표현한다.
물과 구름, 눈(雪)은 원래 형상과 색이 없으므로 홍염(烘染)에 의탁(依託)하여 그린다. 때때로 해와 달이 등장하기도 하고 한 줄기 숲길에 점경인물(點景人物)이 첨가된다. 계절에 따라서 봄에는 이내(嵐) 속의 매화나 복사꽃을 그리고, 여름에는 무성한 숲과 함께 시원한 구름과 폭포를,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을 그리며, 겨울에는 깨끗한 설경(雪景)을 그린다.
무릇 산이란 물을 얻어야 살 수 있고 길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으며, 풀과 나무가 있어야 빛나며, 안개와 구름을 얻어야 빼어나고 예쁘다. 그림의 조형적 구성요소가 곧 자연의 조건이다. 수목의 특징과 산의 골격, 물길의 포치, 공간의 아득함, 시간의 흐름까지 한 화면에 압축하여 예술형식으로 창조한 것이 산수화이다.
울창한 숲과 운무(雲霧)에 싸인 기암괴석, 그리고 누각, 그 속에 뛰노는 서수길금(瑞獸吉禽)은 우리의 옛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경이다. 심산(深山)의 계류(溪流)와 아름드리 고목(古木)이 어우러진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선인들의 아취(雅趣)와 풍모(風貌)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감상하고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대지(大地)의 기운을 받고 자라난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고 그 숲이 대지를 감싼다. 그 속의 사람은 자연의 혜택으로 정신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자연의 정취(情趣) 속에 거닐면서 무한한 상상력과 모티브(motive)를 얻고, 자연 그 자체를 그림으로 그리면서 예술적 흥취를 만끽할 수 있다.
산수화는 고전(古典)이나 시문(詩文)의 내용을 그린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이다. 시적(詩的) 정취를 흠씬 풍기게 하는 아름다운 곳을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을 팔경(八景)으로 그렸다.
실제 경치를 소재로 그렸으나 나중에는 점점 관념에 따른 재구성으로 변하여 팔경(八景)은 산수화의 전형이 되었다. 명소의 풍광을 시문으로 노래한 관동팔경(關東八景), 단양팔경(丹陽八景), 악양팔경(岳陽八景), 한양팔경(漢陽八景) 등 서울에서 지방까지 ‘○○팔경’이 많다. 많은 팔경들이 숲 언저리에 있다. 숲이 없다면 황량한 곳에서 어떻게 팔경의 다양한 정취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숲과 나무가 제공하는 공간의 정취를 예술적 성정으로 새롭게 창조한 것이 산수화이다.
현대미술에는 다양한 화풍과 기법이 풍미하지만 근저(根底)에는 여전히 자연주의적 심미관이 지배적이다.
천지의 자연 속에 물체가 있고 물체 속에 형체가 있으며 형체 속에는 영적(靈的)인 신묘함이 있어 화가는 이 영적인 형태를 그려내는 것이다. 곽희(郭熙)는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사계절의 연람(烟嵐)의 변화를 정감(情感)어린 어조로 의인화(擬人化)하였다.
“실제 산수의 안개와 이내(嵐)는 네 계절이 같지 않다. 봄산은 담박하고 아름다워 미소짓는 듯 하고, 여름산은 자욱하고 푸르러 흠뻑 젖은 듯하며, 가을산은 맑고 깨끗하여 단장한 듯하고, 겨울산은 어둠침침하여 잠자는 듯하다.”
숲은 나무의 집합체가 아니라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공간이다. 산수화는 단순히 자연의 경물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자연의 정취를 관찰하고 정경(情景)을 융합하여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현대의 그림에서는 숲이 주는 풍부한 정서나 다양한 얘깃거리를 그리지 못하는 것 같다. 옛날과 다르게 인간이 자연과 괴리(乖離)되어 숲의 공간과 시간의 변화가 이루어내는 세계에 접근하지 못한 탓일까. 숲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외면한다면 풍부한 예술적 소스(source)를 어디서 얻을 것인가. 숲은 생태적 자연공간이라기보다 예술적 문화공간이다. 〈백범영/용인대 회화과교수〉 [경향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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