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희망이다 12]마을 어른, 정자나무
느티나무가 있는 시골 풍경은 도시를 낳아 길러준 농촌이 늙고 지쳐버리기 전 한국의 고요한 얼굴이었고, 남 없이는 나도 살 수 없다는 하늘같은 믿음으로 천지 어간에다 자식 낳아 기르던 한국인의 마음이었다. 주소며 번지는커녕 사는 동네 이름도 필요 없는 그저 두팔 한껏 벌리고 바람과 비, 천둥번개, 별자리들의 기척과 함박눈 내리는 밤의 등잔불빛, 상여 나가는 소리며 오래 기다렸던 자식 점지받고 고마운 마음으로 정화수 올리는 어머니 마음까지 껴안고 다독이던 느티나무. 오백살 또는 천년도 예사로 넘는 느티나무는 문자 이전의 아스라한 상고사 갈피마다 전설과 신화를 새겨넣은 시간의 관리자였다.
그리고 느티나무는 말없는 말로 한국인을 가르친 교사였고, 어른이셨다. 느티나무 그늘은 인간이 왜 함께 살아야 아름다운지, 혼자서는 신(神)을 즐겁게도 노하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철학 강의실이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느티나무 그늘학교에 다녔다. 아주 멋대가리 없는 요즘 말로 하자면 과외를 받은 셈인데, 교사는 예순살을 훨씬 넘기신 선달할배셨다. 과외 받는 학생은 네댓명에서 예닐곱명까지 들쭉날쭉이었지만 그 선생님은 전혀 나무라는 법이 없었다. 과외비도 물론 없었다.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것은 딱 세글자뿐이었다. 사람 인(人), 참을 인(忍), 어질 인(仁)이었는데, 이 과목과 교수방법은 한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느티나무 그늘학교 땅바닥에다 꼬챙이나 끝이 뾰족한 사금파리 같은 것으로 이 글자를 그렸다. 감히 썼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선생님의 말씀도 늘 한결같았다.
“이놈덜아. 천하 없어도 이 석자만 잘 새기고 살믄 되는기라. 사람으로 태어난 거는 고마 천하대복이다. 만약에 니늠덜이 개 짐승이나 배미로 태어났다쿠모 우찌되었것노? 개가 되었다믄 이여름철에는 보신탕꺼리가 돼서 몽딩이에 흠씬 두디리 맞고 죽어야할끼고, 배미였다믄 아무한테도 귀염받지 못하고 죽는날꺼정 천덕꾸리로 도망댕기야했것제. 사람으로 태어난기 올매나 좋노. 그래서 하는 말이지마는 사램이 사람 짓 할라쿠모 고마 억만가지로 자나깨나 참아야 하는기라. 참을 인(忍), 이 한글자를 잘 새겨두거라이. 이전에 곰하고 호랭이가 사람이 되고 자파서 마늘하고 쑥을 묵고 삼칠일을 굴속에서 지냈는데, 끝꺼정 잘 참은 늠이 사램이 된기라. 그라고 이 어질인(仁)자라 쿠는 거는 니늠덜이 어른이 되믄 절로 알아질끼다.”
선달할배한테 마을 사람 누군가가 코흘리개 조무래기들한테 그 세글자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 적은 결코 없었다. 우리 동무들도 글 배우려고 느티나무 그늘로 모여든 것이 아니었다. 그냥 우연이었다.
긴 긴 여름 한철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또 하나의 민족이 해마다 새롭게 펼쳐졌는데, 그곳에서는 누가 나서서 설득하고 도모하지 않았다. 오직 자연스럽게 위 아래가 제 자리에서 흐르고 자라나 아름다웠다. 맨 윗자리가 어른이었다. 어른이시지만 볼썽사나운 모습 보인적 없었고, 억지로 권위를 만들거나 아랫사람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셨다. 어른은 하늘의 별이나 태양 혹은 달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시는 소리나 그림자가 없는 편안함이고, 든든함이며, 믿고 의지하는 큰 나무이자 나무가 뿌리내리고 선 언덕이었다.
때로는 느티나무가 곧 선달할배였고, 세월이 흐른 뒤에는 그 느티나무 그늘과 울창한 푸르름 속으로 선달할배가 들어가서 느티나무가 되었다.
선달할배 어릴 적에도 또 다른 선달할배가 계셨고, 그런 선달할배는 늘 그 자리에 계셨다. 그 선달할배들이 모두 느티나무 속으로 들어가서 한분이면서도 수천수만 어른이 되신 영험을 만드셨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좋은 때마다 또는 슬프고 외로울 적에 느티나무 아래다 정화수를 떠 놓거나 정성이 깃든 음식을 차려 놓고 기도하곤 했다.
나는 소년이 될 무렵 고향을 떠났다. 청년이 되고 중년도 지나 머리털에 서리가 뻗친 장년이 될 때까지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객지를 떠돌고 있다. 입추 들머리에서 맴맴거리는 매미 울음소리가 얼핏 고향의 그 느티나무 그늘 학교를 떠올리게 한다. 선달할배 얼굴이 눈물로 어려온다. 그때 人, 忍, 仁 석자를 땅바닥에 그리던 코흘리개 동무들 안부가 궁금하다. 벌써 두사람은 흙이 되기도 했다. 선달할배가 물으신다.
“이놈아, 그동안 사람 노릇 제대로 하고 살았나? 백번을 참으모 하늘에서 떡이 내리온다는 말이 맞더나? 용서를 빌고, 용서해주기로 하믄 그것이 어질인이라던 내 말이 틀리더나?” 하고 물으시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선달할배 앞에 자신 있게 설 수가 없다. 참는 것은 못난 짓이고, 사람은 돈과 권력과 명예가 있어야 사람 행세하는 것이고, 용서를 비는 것은 약자나 하는 비굴함이라고 외쳐온 한국 현대사는 곧 나의 내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올 성묘 길에는 꼭 고향 느티나무 그늘 아래 가서 말해야겠다. 많은 것을 잘못했다고. 그리고 선달할배께 절을 해야겠다. 내 안의 오만과 편견, 성채를 짓고 도사린 분노와 거짓됨, 나를 점령하고 있는 어리석음을 깨워내고 태워내기 위하여 한없이 나를 낮추어야겠다. 내가 참으로 낮아지면 그만큼 어른이 많아지지 않겠는가 싶다. 〈정동주/작가〉[경향신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