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목록으로
  동서양의 우주목

[숲이 희망이다 11]동서양의 우주목



막대 알사탕 5개, 소주 1병. 충남 홍성군 궁리의 당산나무 앞에 놓인 재물은 조촐했다. 의외의 애틋한 광경에 서러웠고 한편으론 반가웠다. 농경문화가 튼실했던 지난 세월에 당산나무에 대한 이런 대접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서러웠다. 그러나 일각을 다투는 정보혁명의 산업사회에서 당산나무를 향한 그 애틋한 정성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리고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나무를 신성하게 여기는 인간의 관습은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신성한 존재로 나무를 숭배하는 풍습은 어떻게 유래되었을까? 나무는 고대 인류에게 대단히 중요했다. 식량, 의약품, 재목, 피난처, 땔감은 모두 나무에서 얻었다. 이런 물질적 보상 이외에도, 나무는 인간의 자각을 발달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무만이 간직한 아름다움, 강인함, 품위는 물론이고, 적응력, 영속성, 안정성, 번식력 등은 나무의 정서적이며 상징적 가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래서 나무는 고대 인류의 감정, 열정, 애정, 신념과 종교, 두려움에 대한 상징으로 발달되었다. 상상력이 풍부한 고대 인류는 나무가 가진 이런 상징적 특성들을 신화나 전설로 형상화하여 신성한 나무로 숭배했으며, 그 사례가 우주수(宇宙樹)이다.


지구상에 살아있는 생명체 가운데 나무 이상으로 우주의 리듬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는 생명체는 없다. 우주의 리듬이란 태양계의 순환 주기에 따라서 하루가, 달이, 그리고 절기가 끊임없이 순환되는 주기적 현상을 의미한다. 수백년 동안 지속적으로 봄에는 싹을 틔우고 가을에는 잎을 떨어트리는 나무의 생육특성은 고대 인류에게 태양이나 달이 가지고 있는 우주의 리듬과 다름없었다. 나무만이 가지고 있는 장구한 수명과 거대한 덩치와 재생성(再生性)은 고대 인류에게 끝없이 재생되는 우주나 영생의 원천을 상징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수많은 자연물 중에 유별나게 나무만이 지닌 독특한 생육특성은 고대 인류로 하여금 나무를 자연스럽게 숭배하도록 만들었고, 그런 숭배 의식이 발전하여 종국에는 우주수나 세계수 또는 생명의 나무처럼 신성한 나무로 형상화되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우주수의 형태를 간직한 신성한 나무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먼저 동양 문화권에서 접해볼 수 있는 우주수의 흔적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경우, 부상(扶桑)이 우주수로 등장하고 있다. 뽕나무 잎을 가진 이 나무는 아홉 개의 태양이 아랫가지에 있고, 한 개의 태양이 윗가지에 걸려있는 높이가 3백리나 되며 둘레가 2천여 아름에 달하는 거대한 신화적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 동해 복판에 솟아있는 소나무가 우주수로 나타나고 있다. 만년송(萬年松)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나무의 뿌리는 우주의 원천인 구천(九泉)에 박혀있고, 그 가지는 해와 달이 머무는 구천(九天)을 뚫고 솟아 있으며, 천하만물의 기(氣)가 이 소나무에서 이합집산을 한다고 전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의 중심에 자라는 거대한 소나무가 우주수로 전설 속에 등장하고 있다. 인도는 신화적인 아스바타(Asvatha)나무가 우주수로 등장하는데, 이 우주수의 가지들은 지상, 물, 공기, 창공, 불 그리고 우주적인 현상을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다.


서양의 경우, 우주수의 흔적은 이집트, 바빌로니아, 러시아, 노르웨이의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집트의 경우, 천국의 신인 너트(Nut)와 해더(Hathor)가 몸을 숨기고 있는 무화과나무가 우주수로 등장하고 있다. 바빌로니아의 신화적 우주수는 유프라테스 강 하구 근처의 유두(Euidu)라는 고대 도시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이 우주수는 대지를 비옥하게 하는 샘과 강물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자라며, 지혜의 여신 에아(Ea)가 살고 있는 심연의 수렁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오래된 러시아의 신화 중에서도 부잔(Bujan) 섬에서 자라는 거대한 참나무가 우주수로 등장하고 있는데, 아침 저녁으로 이 참나무에서 태양이 뜨고 진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주수의 가장 전형적인 예는 북유럽에 위치한 노르웨이의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노르웨이의 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물푸레나무, 이그드러실(Yggdrasil)은 세 개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지하에 박혀있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살고 있는 지상에 박혀있으며, 마지막 뿌리는 신들의 거주지인 천국에 있다고 한다. 지옥과 지상과 천국을 연결하는 통로가 바로 이 물푸레나무인 셈이다.


우주나 세계를 창조하는 근원으로, 서로 다른 세계의 연결 고리로, 가족이나 이웃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다산이나 풍요, 영생을 기원할 수 있는 대상물로 상징화된 신성한 나무(우주수와 세계수)는 고대 인류의 심성에 각인되어 세대를 이어 내려옴에 따라, 문화가 전래된 이동 통로를 따라, 지구상의 구석구석으로 전파되어 온 인류의 문화 요소가 되었다. 생명, 풍요, 창조, 관용, 에너지, 강인함의 상징으로 고대 인류에게 각인되었던 신성한 나무는 오늘날도 우리들의 심성에 여전히 살아 있다.


이즈음도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숭배하는 흔적은 여러 종교에서는 물론이고, 대중적인 습관, 전설, 전통과 의식 등에서 그 족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기념적인 건축물의 준공식에서, 아이의 탄생을 기념하여, 또는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이 있는 곳에서 여전히 나무를 심는 의식이 상징적으로 거행되고 있다. 나라 사이에 중대한 조약이나 협정을 맺는 자리에, 그 조약이나 협정이 깨어지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길 비는 상징적 의식의 하나로 기념식수가 행해지고 있는 것은 신성한 나무가 가진 영속성에 대한 상징적 의미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리라. [경향신문 게재]

불교와 숲

마을 어른, 정자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