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숲 이야기 9] 금정산 등나무 군생지
얽히고 설킨 400여그루 '장관'
한반도의 등뼈 태백산맥 꼬리 부분인 표고 802m의 부산 금정산(金井山) 중턱에 조
계종의 유명한 고사찰 범어사(梵魚寺)가 자리잡고 있다. 이 사찰 입구의 계곡 주변에 400
여 그루의 등나무가 어우러져 자라는, 우리나라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등나무 군생
지가 있다. 물론 소나무 이외에도 팽나무, 서나무, 개서어나무, 층층나무와 같은 교목성
활엽수도 섞여 있는데, 이처럼 등나무가 군생하는 곳은 매우 보기 드물어서 천연기념물
176호로 지정됐고 식물 생태 연구의 중요한 자원이기도 하다. 옛부터 이 계곡은 등나무가
서로 엉켜서 기괴한 형태를 이룬다 해서 ‘등운곡(藤雲谷)’이라고 불리어왔다.
등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성 덩굴식물로 우리나라 중ㆍ남부지방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데, 짙은 그늘을 위해 파골라(등나무 벤치)를 만들거나 5월에 피는 연한 자주색 꽃
을 보기 위해 심는 것이 보통이다. 어린잎이나 꽃을 나물로 해먹거나 가을에 익은 씨를 볶
아 먹기도 한다. 등나무 줄기는 탄력이 있고 모양이 좋아서 조선조 영조 41년(1764년)에
신하들이 임금을 위해 만년등(萬年藤)이라는 등나무 지팡이를 만들어 바쳤다는 기록이 있
다. 일이 까다롭게 뒤얽혀 풀기 어려울 때‘갈등(葛藤)’이라는 말을 쓰는데, 갈(葛)은 칡
넝쿨을, 등(藤)은 등나무를 가리킨다.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칡은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
는 성질이 있어서 이들이 만나면 서로 먼저 기어 올라가려 해서 그런 말이 생겼다고 한다.
범어사 주위 6ha나 되는 넓은 면적에 군생하는 등나무 중 큰 것은 줄기의 길이가
약 25m, 굵기가 40cm나 되며 100년 이상된 것도 많다. 생육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며 하층
식생으로 조릿대와 해변싸리 등을 볼 수 있다. 문제는 소나무나 팽나무와 같은 교목을 타
고 올라가다 보니까 이 나무들이 자라는데 지장을 준다는 것. 그래도 서나무와 팽나무같
은 활엽수는 버틸 수 있으나 양수인 소나무는 등나무가 감고 올라가면 대부분 고사하게 된
다. 이 특성을 기초로 해서 희귀하게 군락을 이루는 등나무도 보존하고 다른 나무들도 살
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문화재관리청에서 올해 등나무 군생지 관리를 위해 약간
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등나무는 사랑의 나무로 많은 전설을 갖고있다. 옛날 어느 처녀가 같은 마을에 살
던 잘생긴 총각을 짝사랑하던 중 그 총각이 화랑이 되어 전쟁터에 나가 전사했다는 소문
을 듣고 비통해 하다 연못에 몸을 던졌다. 뒤늦게 죽지않고 돌아온 그 총각은 처녀의 소식
을 듣고 역시 비통해하며 연못에 몸을 던졌다. 그 후 그들의 혼이 연못가에 한 그루의 팽
나무와 이를 감싸 안은 등나무로 생겨났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그래서 등나무 꽃을 베개
속에 넣거나 삶아 먹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 하여 이 나무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
다.
신라 화엄10찰(華嚴十刹) 가운데 하나로 의상대사가 창건한 범어사에는 일주문을
비롯하여 많은 보물들이 있지만, 이 지역 바위틈 사이에 군생하고 있는 등나무는 살아 있
는 또 하나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다른 나무들을 휘어 감아서 괴롭히는 달갑지
않은 점도 있지만 아름다운 꽃과 향기, 짙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이곳의 등나무 군생지는
말 그대로 문화유산이다.
●바로 잡습니다
문경 김용사 절숲을 다룬 5월7일자 '마을숲 이야기' 중 '현세불이 사는 미륵리와 미래불
이 좌정하는 관음리'는 '미래불이 사는 미륵리와 현세불이 좌정하는 관음리'의 잘못이었습
니다. /정헌관ㆍ임업연구원 박사 Hgchung2095@foa.go.kr [한국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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