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숲 이야기 10] 고흥 금탑사 비자나무 숲
햇빛마저 숨죽인 '400년 연륜'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바둑판을 갖고 싶어한다. 좋은 바둑판이라 하
면 보통 비자나무와 은행나무, 가문비나무 원목을 최고로 친다. 한말의 풍운아 김옥균이
피살되기 직전까지 소장했던 바둑판을 갖고있던 일본의 한 수집자가 1994년 이를 한국기원
에 기증하였던 일이 있다. 비자나무로 만들어 진 이것은 최고급 바둑판은 아니지만 역사
와 명성 때문에 소위 명반(名盤)의 대열에 들어간다.
명반이라고 알려지면 보통 집 한 채 값을 호가하기 때문인지 비자나무는 옛날부터
우리나라 남부지방 곳곳에 심어져 애지중지 관리되었던 귀중한 나무였다. 고흥 금탑사는
신라 선덕여왕 6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금탑사의 비자나무는 사찰 창
건 후 300∼400년이 지난 1700년 이후에 식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해도 300년 넘
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짧은 세월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 숲도 해방과 6.25전쟁의
혼란기에 벌채되고 훼손되는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현재는 금탑사와 고흥군에서 비자나무
림 내 모든 나무에 번호표를 붙여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여기에 있는 비자나무들은 수고
9~14m, 가슴높이 직경이 16~101cm까지 다양하다.
비자나무림은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가지와 잎이 무성하다. 그래서 비
자나무의 후계목은 거의 볼 수가 없고 그 속에 맥문아재비, 된장풀, 마삭줄이 매우 드물
게 자라고 있다. 현재는 3,900평에 3,313그루의 비자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고려사, 세종
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조선왕조실록 등에 비자나무의 분포지역과 조정에 바치는 세공
(歲功)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비자나무 분포지역이 더 넓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나 전남지역에 비자나무를 심었던 이유도 바로 조정에 세공을 바치기 위
한 것으로 보인다.
금탑사는 사찰림인 비자나무림에서는 매년 20∼30가마의 열매를 수집, 떡이나 강정
을 만들어 신도들과 나누어 먹었으나 요즘에는 손이 모자라 과거의 반 정도 밖에 수확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금탑사 비자나무숲 가장자리에는 가을이면 석산이 핀다. 석산은 일본
에서 도입되어 절 주변이나 가정에 관상용으로 심는 꽃으로 무리지어 자라는 특성이 있
다. 이른 봄 짙은 녹색의 잎이 무성하다가 9월이면 잎이 사라지고 꽃대가 길게 올라와 붉
은색의 꽃이 무리지어 피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비자나무림 주변의 숲에는 율곡 이이선생의 부친이 호환이 두려워 심었다는 나도밤
나무, 푸조나무, 솜대, 비목, 개서어나무, 곰솔 등 남부지역 수종과 온대지역 수종인 상수
리나무, 굴참나무, 까치박달, 느티나무, 벚나무, 쪽동백 등 함께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
숲의 하층에는 참취, 나비나물, 송악, 대사초, 남산제비꽃, 꿩의다리아재비 등이 자생하
고 있다. 300년을 이어온 비자나무숲을 잘 가꿔 미래에 이어줄 책임은 우리의 몫이다.
최명섭/ 임업연구원 박사(hnarb@foa.go.kr [한국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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