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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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평 상곡리의 마을숲

[마을숲 이야기 30] 함평 상곡리의 마을숲


홍수와 강한 계곡바람 방지하려 조성 묘지주변 개간안해 오히려 숲 보전돼



전남 함평군은 농업의 중심지로 노령산맥의 서부 맥을 이어받아 산세가 세 갈래로 나누어지고 그 사이에 너른 들이 퍼져 있다. 들이 넓기 때문에 자연히 바람이 세게 불어 이들을 막을 장치가 필요했다. 마을숲이 이곳저곳에 많이 조성된 까닭이다.

대표적인 곳으로 나산면 월봉리, 대동면 금산리와 향교리, 그리고 상곡리의 상모마을을 들 수 있다. 이중 상곡리는 조선시대 현감 소재마을로서 파평 윤씨의 시조인 윤길의 후손들이 500여년 전부터 이곳에 정착해 마을 주변의 지형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하여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원래 이 마을은 영산강 지류인 해보천 주변의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평지에 위치하여 홍수가 잦았고 하천을 따라 부는 강한 계곡바람의 피해도 적지않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숲을 조성하였는데, 지금도 주로 파평 윤씨 종택과 사당을 중심으로 숲이 길게 남아 있다.

이곳에서도 문화가 숲의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함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택과 사당을 위하는 마음이 주변의 나무도 함부로 대하지 않게 하였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묘지가 숲을 훼손한다고 하지만 함평을 포함한 전라 서부 지역처럼 산이 적은 곳에서는 오히려 묘지가 숲을 보호한다. 높은 곳에서 보면 너른 들에 숲이 꽤 많이 남아 있는데 거의 모든 숲 속에 묘지가 있다. 농사지을 땅이 아무리 필요해도 묘지 주변의 숲은 개간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숲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화적인 가치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상모마을은 장성에서 24번 국도를 따라 함평으로 가다가, 해보초등학교를 지나서 파평 윤씨 집성촌을 물어서 찾아가면 되는데, 지금도 전통사상을 담고 있는 연못이며 소위 뼈대있는 집안을 느끼게 하는 한옥들이 많이 남아 있다. 숲 속에는 느티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왕버들, 용버들 등의 가슴높이지름이 작게는 40㎝, 크게는 220㎝까지 자란 거목들이 늘어서 있고 하층에도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지난 추석에 찾았을 때에는 석산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특히 숲이 시작하는 산자락에는 청계정(聽溪亭)이 서 있고 그 옆에 있는 고목에는 오색딱따구리가 살고 있어 운치를 더했다.

석산은 수선화과에 속하는 식물인데, 예로부터 수선화과에 속하는 식물 중 석산, 상사화, 백양꽃을 모두 상사화라 통칭하면서 이 꽃이 집안에 있으면 부자지간에 서로 못 본다고 하여 집안에 는 심지 못했다. 함평에서도 옛 어른들이 상사화라고 통칭하면서 집안에 있는 것은 담장 밖으로 내어 던지며 ‘개무릇’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 말이 좋지 않다고 2000년 축제를 준비하면서 꽃이 화려하기 때문에 ‘꽃무릇’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고 한다.

물론 꽃을 찬양하는 것은 좋지만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중요한 정보를 잃을 수 있다. 선조들이 ‘개무릇’이라 부른 것은 집안에 두기 좋지 않은 식물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꽃무릇’이라고 부르면 이런 문화 정보는 앞으로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화려함에 취하는 것도 좋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보는 지혜도 가꾸어야 할 것이다.

이 마을숲은 규모는 많이 축소되었지만 다행히 땅은 비옥하기 때문에 나무가 잘 자랄 수 있으나 마을은 쇠락하고 있다. 특히 현대식 연못을 만들고 정자를 짓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문화경관은 반드시 자기만의 아름다움이 있기 마련이다. 이 마을에는 기왕에 전통사상을 담고 있는 문화유적이 많기 때문에 남의 것을 흉내 내어 형식만 갖춘 시각적인 미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에서 발견하는 본질적인 미를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한국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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