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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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연둔리 '숲정이'

[마을숲 이야기 29] 전남 연둔리 '숲정이'


"재앙 부르는 바위 가리자" 울력으로 가꾼 아름드리 군락



“우리 연둔리 숲정이는 울력으로 가꾸어 온 것입니다.”처음에는 지역 방언인가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숲정이’는 마을숲을, ‘울력’은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하는 일을 의미하는 순 우리말이었다. 전남 화순군 동복면 연둔리에 가면 동복천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큰 숲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연둔리 숲정이다.

이곳은 왕버들, 느티나무, 서어나무, 검팽나무 등 230여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마을숲이다. 그 폭이 50㎙가 넘고 길이는 700여㎙나 되는데 그 안을 걸어보면 마치 터널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미 수명을 다해 가지가 썩고 칙칙한 잿빛의 몸뚱이만 남아 있는 서어나무가 드문드문 눈에 띄는가 하면 아직 뿌리를 완전히 내리지 못해 지주가 받쳐진 어린 느티나무들도 보인다. 느티나무는 이 숲정이의 다음 세대 주역으로서 대를 이어갈 후계수다.

연둔리의 뒷산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동복천 건너에 있는 구암리에서 그 바위가 보이면 마을에 큰 재앙이 생긴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450여년 전, 당시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한 강씨라는 성을 가진 만석꾼이 뒷산의 큰 바위를 가리기 위해 나무를 심었으며 그 이후 지금까지 마을사람들이 울력으로 키우고 지켜온 것이 오늘날 울창한 숲의 모습을 갖춘 숲정이가 됐다는 것.

이 숲정이가 연둔리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각별한 존재였음을 짐작케하는 것은 이 마을에서 지켜져 내려오는 아주 엄격한 규약이다. 뜰 안의 나무의 경우, 심든 베어내든 소유자 임의로 할 수 있었으나 숲정이 만큼은 비록 썩은 나무라 할지라도 어느 누구도 나뭇가지 하나 마음대로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큰 바위를 가려야 한다’는 전설에는 마을의 안전과 안녕을 위하여 큰 숲정이를 만들어야 한다는 역설적이며 은유적인 뜻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당시 연둔리에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는 넓은 터는 있었으나 저지대인데다 홍수해를 당하기 쉬운 입지에 있었기 때문에 물을 막지 못하면 애당초 마을이 유지될 수 없었다. 따라서 흙을 돋우어 제방을 쌓고 마을 뒷산의 큰 바위가 가리워질 정도로 큰 숲을 만들어야만 했다.

지금은 동복천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숲정이 뒤쪽에 마을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숲이 형성돼 있으며 예전에 큰 바위가 반사되어 비쳤을 동복천 수면 위에는 숲정이의 물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 마을에서는 제방보수, 제방보호를 위한 나무심기와 같은 숲정이 만들기 외에도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큰 돌을 쌓아 보(洑)를 짜거나 외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나무다리를 보수하는 일도 울력으로 하였다. 울력 참여는 마을 사람들이 의무였지만 축제 분위기로 치러져 모두들 울력을 고대하고 기다렸다고 한다.

이같은 울력이 90년대 초반까지는 행해졌으나 그 후로는 한번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울력을 주도할 젊은 사람이 없고 노인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던 탓이기도 하지만 석축보는 콘크리트보로, 나무다리는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되어 보수를 할 필요가 없어진 것도 일조를 했다. 연두리는 70년대까지만 해도 100여 세대에 500명이 넘는 제법 큰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70여명 정도만 남아있다. 울력이 없어진 뒤부터 숲정이의 제방보수나 나무를 심는 일은 화순군청의 몫이 되었다.

마치 향토사학자처럼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준 칠순이 훨씬 넘은 전 이장 김점칠씨. 이미 ‘축제’ 울력은 과거에 묻혀버려 추억 속에서나 떠올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깊고 큰 아쉬움이 그의 얘기 속에서 간간이 배어 나왔다. 연둔리 숲정이는 2002년 생명의 숲, 유한킴벌리와 산림청이 함께 선정한 ‘아름다운 마을 숲’이기도 하다. [한국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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