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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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 석평마을 석송령

[마을숲 이야기 26] 예천 석평마을 석송령


특별한 靈氣느낀 마을사람이 전답상속
나무가 재산권 행사, 학생들에 장학금도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나무에게도 감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특수한 능력을

기대하며 자연과 조화된 삶을 살아왔다. 나무는 모든 생물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고 덩치

도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숭상하는데, 그만큼 나무도 사람의 정신세계까지 긍정적

으로 다듬어주고 사랑한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석평마을에 가면 우람하고 잘 생긴 600년

쯤 된 소나무 한 그루가 마을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이 나무 이름이 석송령(石松靈)이

라 하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기한 나무로 자연사랑에 대한 우리 선조

들의 깊은 뜻을 간직한 흐뭇한 자랑거리다.


석송령이 재산을 갖게 되고 나라에 세금을 내며 학생들에게는 장학금까지 주게

된 사연을 알아보면 이렇다. 지금부터 600년 전 경북 북부 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이

마을 앞 석평천으로 떠내려온 소나무를 마을 사람이 건져서 이곳에 심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소나무를 어렸을 때부터 바라보고 자라온 이수목이라는 석평마을 사람이 이 나무로부

터 특별한 영기를 느껴 1927년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전재산인 1,191평의 전답을 이 나무

앞으로 상속해주고 석송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토지대장에 보면 석송령의 주민등록번

호가 3750-00248이고 1927년 8월10일부터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된 것으로 명기돼 있

다.


이 마을에 사는 석송령 보존회장 김성호(66)씨에 따르면 1975년 고 박정희 대통

령이 이런 소식을 듣고 석송령 보호기금으로 500만원을 보내줘 적지 않은 재산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 재산으로부터 나온 기금으로 석송장학회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 마을 학생들

44명에게 혜택을 줄 수 있었다고 한다. 석송령은 나무높이가 10㎙, 둘레 4.2㎙, 폭이 32㎙

나 되고, 차지하는 땅도 300평에 달한다. 1982년에 천연기념물 제294호로 지정됐고 마을

사람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아주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영기가 있고 많은 전설을

간직한 이 나무에 음력 정월 보름이면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신제(洞神祭)를

지내고 부녀자들이 나무 주변을 돌면서 막걸리를 부어주는 행사를 매년 해오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일체성을 느끼게 하는 풍습으로 이 동신제 때 석송령에 고하는 축

문의 한 구절을 보면 이렇다. “신(神)께서 도와주시어 모든 것에 사랑이 넘치고 우리가

간구할 때 병마와 모든 액운을 물리쳐 주시니 이 마을 사람들이 행복하므로 오래도록 정성

을 다해서 모시겠나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경찰이 미신을 없앤다며 이 나무를 베려

고 톱을 자전거에 싣고 마을로 오다 넘어져서 크게 다쳐 베지 못했고, 한국전쟁 때도 다

른 마을 사람들은 죽고 다쳤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석송령은 법적 지위나 인격을 부여받아 인간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

될 뿐 아니라 정신적 지주가 되는 대표적인 우리 민속 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의 신비

생활’(피터 톰킨스, 크리스토퍼 공저)이라는 책에 보면 식물도 우리처럼 생각하고, 느끼

고, 기뻐하고, 슬퍼한다고 하였다. 예쁘다는 말을 들은 난초는 더욱 아름답게 자라고, 볼

품없다는 말을 들은 장미는 자꾸 시들어 간다고 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일찌감치 석송령

과 같이 나무를 비롯한 대자연 속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사람과 똑같은 인격을 부여하

며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슬기로움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일보 게재]

담양 관방제림(官防堤林)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 소나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