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숲 이야기 23] 포항 청하中 학교숲
숲이 아이들을 키운다
꽤나 족보가 확실한 숲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576년 전인 세종9년(1427)에 청하
현감 민인(閔寅)이 바람을 막고 홍수에 대비하기 위하여 조성한 숲으로 지금은 경북 포항
시 청하중학교 학교숲이 돼있다. 이다. 이 숲은 동해안에서 내륙쪽으로 불어오는 바닷바람
을 막기 위한 방풍림이자 청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한 수해방지림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
숲의 어린 소나무는 동량감 재목으로 훌쩍 커버렸다. 사람이 태어나서 어른이 되려면 몇
번의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데, 이 숲 또한 마찬가지였다. 연산군 및 고종 때는 사리사욕
에 눈이 먼 탐관오리가 이 숲을 벌채하여 훼손하는 등 몇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과거 약 3
만여 평에 달하였던 숲은 현재 2000여평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8백여 그루의 소나무는 다행히도 잘 가꾸어져 2001년 ‘아름다
운 숲’ 전국대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숲’으로 선정되었다. 청하중학교 담을 따라
현재까지 남아 있는 소나무숲은 수령이 대략 80~200년으로, 가슴높이의 나무 지름이 60㎝
가 넘는 큰 것에서부터 20㎝가 겨우 되는 작은 것까지 매우 다양한 크기의 소나무가 초승
달 모양으로 교정을 길게 둘러싸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숲을 관덕관송전(觀德官松田)이
라 불렀는데, 관덕은 이곳의 옛 지명이며 관송전은 관에서 조성한 솔밭을 뜻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목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소
나무숲을 봉산, 황장봉산, 송전이라는 이름을 붙여 특별히 관리했는데, 이 중 해변가나 섬
에 지정한 솔밭을 송전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야 관청에서 관리하였으므로 관송전(官松田)
이라 해야 옳겠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이 숲을 관리하니 학송전(學松田) 또는 역사성을 간
직한 관송전(觀松田)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관송전의 가치는 바닷바람이나
물의 피해를 막아주고 목재로 쓰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청하읍내에 세워진 많은 건물들
이 바닷바람을 막아주고 청하천 제방도 더 이상 범람하지 않는다. 또 값싼 수입 목재가 이
미 국내 목재소비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관송전의 가치가 줄어든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욱 값진 역할을 맡고 있다.
관송전은 이 학교를 거쳐간 많은 학생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는 교육의 터
전이었으며 놀이 장소였다. 콘크리트 교실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있다가, 그것도 모자라
땀 흘려 운동한 후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어야 하는 도시 학생들과는 달리 이 곳 학생들
은 놀다 지쳐 쉬고 싶으면 관송전 숲속으로 들어간다. 솔잎은 햇볕을 막아 그늘을 제공하
고 솔바람은 어느새 학생들의 땀을 식혀준다. 학생들은 관송전을 쉼터의 공간으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이 숲에서 자연을 배운다. 2,000여평에 자리 잡고 있는 800여 그루의 소나무
와 교정의 꽃들은 저절로 크는 것이다. 학생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꽃씨를 뿌리고 나무
를 심으며 잘 자라도록 물주고 땀흘려 돌보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관송전은 학생들과 함
께 커가며,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관송전을 닮아간다.
이 숲을 지키고 가꾸어 온 이삼우 선생님(청하중학교 이사장)은 숲이 사람을 키
운다는 신념을 갖고 계셨다. 학교숲과 마을숲을 보호하고 계승하는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
어 살 수 있는 안목과 심성을 갖고 있는데, 학생들과 마을주민들이 매일 접하는 공간인 학
교숲과 마을숲을 잘 가꾸어 보전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심성을 바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다. ‘아름다운 숲이 있는 아름다운 학교’라는 경영방침을 갖고 있는 학교, 그 속에 있
는 관송전은 사람이 숲을 만들고 숲이 사람을 키우는 대표적인 학교숲이라 할만하다.
[한국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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