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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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월천리의 당산목 회화나무

[마을숲 이야기 22] 나주 월천리의 당산목 회화나무


마을·후손 안녕 기원하는 堂山木
꽃피는 모습보고 '풍흉' 점치기도





전남 나주시 왕곡면 월천리에는 나무 둘레가 약 5㎙나 되는 큰 회화나무가 당

산목(堂山木)으로 마을 사람들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1630년경 경주 최씨 최효기라

는 사람이 이곳에 처음 터를 잡고 마을 한복판에 이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지니 나이가 대

략 400살 정도 된 셈이다. 일부 굵은 가지가 부러지기도 하고 나무줄기에 큰 구멍이 생기

기도 했지만 지금도 마을사람들의 보살핌 속에서 그런대로 기력을 유지하며 당산목으로서

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나주 시내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약 7㎞쯤 되는 곳에 있는 월천

리 구래 마을에서는 그 해의 풍년 농사와 함께 자손들이 평안하고 번창하길 비는 당산제

가 매년 정월 보름 이 회화나무 밑에서 정성스럽게 치러졌다.


일년 전에 제주(祭主)를 미리 정해 당산제를 지낼 때까지는 제주가 상가(喪家)에

도 가지 않는 등 많은 까다로운 금기사항을 철저히 지킨다. 뿐만 아니라 정월에는 마을에

서 아이를 낳지 않아야 태어나는 아이나 마을에 화가 미치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어서 그

해 정월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출산할 예정이면 외지에 나가서 아이를 낳고 3일 동안은 마

을에 들어오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모든 재앙을 미리 막고 마을의 안녕과 자손들이

잘 되기를 비는 당산목의 대상이 되는 나무는 나무의 상징적 의미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선

택되었다. 그렇게 정해진 당산목은 마을사람들이 온갖 정성을 다해 보살핀 덕분에 오래 살

고 거대한 모습을 갖게됐다.


구래마을의 당산목인 회화나무도 그런 깊은 뜻을 가진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최

효기도 자손들 중에 훌륭한 학자 또는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울 인물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회화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옛날 중국 주 나라 때는 과거에 급제하거나 벼슬

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회화나무를 한그루씩 심었다고 하며, 그 관리가 모든

관직을 명예롭게 마치고 떠날 때도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의 북경 거리에

는 이 나무가 가로수로 많이 심겨져 있다. 이와 같은 풍습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관리들

이 올바른 정사를 펴서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게 하겠다는 다짐의 의미로 회화나무를

자기 주변에 심었다. 한 예로 조선 인조 25년(1647) 영의정에 오른 이용재라는 사람이 고

향인 당진에 회화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는 지금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옛날에 재판관이 송사 문제를 처리할 때 회화나무 가지를 들고 재판에 임했다

는데 그것은 송사를 바르게 처리하겠다는 재판관의 깊은 다짐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

다.


회화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수로 나무 높이가 35m, 직경은 6m까지도 자

랄 수 있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팽나무와 함께 거목으로 자라는 나무 중의 하나로 현재

전국에 400년 이상 된 100여 그루가 천연 기념물 또는 노거수로 보호받고 있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8월 초순에 황백색 꽃이 나무 전체를 뒤덮을 만큼 많이 피는데, 이 시

기는 양봉을 위한 밀원이 거의 없는 때라서 밀원수종으로서도 아주 적합한 나무다. 회화나

무는 웅장하고 거대한 당산목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의 꽃 피

는 모습을 보고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즉, 꽃이 수관의 위쪽에서부터 시작

해 점차 아래로 내려오며 피게 되면 풍년이 오고, 아래쪽 꽃이 먼저 피면 흉년이 든다고

믿어 왔다. 우리 선조들이 당산목을 잘 보살펴 온 것도 영체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

다. [한국일보 게재]

강원도 양양군 말곡리의 소나무 보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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