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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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 와룡리의 숲

[마을숲 이야기 17] 천안 와룡리의 숲


동양척식회사 별장 정원 韓·日대표 수종 인공조성'



우리나라의 마을 숲은 대부분 그 마을에 닥쳐오는 재앙을 막거나 경관적 가치를 높

이기 위한, 풍수지리적 의미에서 조성됐다. 하지만 충남 성환읍 와룡리의 숲은 좀 다르

다. 와룡리는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은 온통 축산연구를

위한 가축 방목지인 목초지다. 그 가운데 약간 도드라져 있는 1㏊ 정도의 면적에 오래된

집 한 채와 우리나라 자생수종인 참나무, 서어나무, 전나무, 산벚나무와 일본이 자랑하는

금송, 화백, 그리고 유럽의 독일가문비나무 등을 심어 인공으로 조성한 숲이 있다.


일제가 조선의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한 다음해

인 1909년 동양척식회사 사장의 별장으로 수원과 천원군에 있던 호화주택인 판서집을 뜯

어 이 곳으로 옮겨 재건축하고 거기에 정원용 숲을 조성한 것이다. 여기에 재조립된 건물

의 외형은 조선시대의 전통적 대감집이지만 내부는 일본식으로 개조하여 취원각(翠遠閣)이

라 이름을 지었다. 양반가 주택으로서 기풍은 있으나 지금은 관리가 되지 않아 많이 훼손

됐다.


취원각이라 부르는 이 주택을 지은 뒤 가운데 정원에는 단풍나무를 심었고, 건물

앞에는 전나무를, 그리고 건물 주변에는 일본 원산의 금송을 심었다. 나무를 심을 당시 40

년생 이상의 큰 나무를 심었기에 이 정원의 숲은 대부분 나이가 140년생 이상의 오래된 나

무로 구성되어 있다. 정원 가운데에 있는 단풍나무는 지면에서부터 여러 개의 줄기가 나

와 우산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높이가 7㎙, 수관폭이 13㎙ 정도로 지금도 웅장한 자태를 뽐

낸다. 건물 앞쪽에는 진입로 형태로 나란히 심어져 있는 전나무들이 높이 20㎙, 직경 60

㎝ 정도로 자라고 있어 질서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 틈새에 새들이 종자를 날라와 뿌리를 내린 듯한 말채나무가 하얀 꽃을 피운다.

건물 주변에는 일본이 원산이며 세계 3대 조경수로 꼽히는 금송과 금편백이 그 자태를 뽐

내고 있다. 건물 동쪽에는 보통은 식물천이의 극성상(極盛相)에서 볼 수 있다는 서어나무

를 식재하여 이채로운 경관을 연출하고, 이른 봄 산지에서 꽃과 잎이 동시에 피는 경관수

목인 산벚나무도 있다. 그 곁에는 오래전 미국에서 도입되어 식재되었으나 강건너 불 보듯

이 뒷전에 밀려 있던 튤립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곧고 우람하게 자란다. 취원각 뒤편

의 서쪽 사면에는 소나무 천연림이 보존되어 있으나 점차 쇠퇴하여 상수리나무가 그 사이

를 비집고 상당한 면적에 여러 개체가 자라고 있는데 그 중의 한그루는 수고 17㎙, 가슴높

이 직경 80㎝ 정도로 지금까지 조사된 상수리나무 중 가장 큰 거목으로 기록될 만하다.


상수리나무는 그 열매를 원래 도토리라고 하는데 그 열매에서 생산되는 녹말가루

로 만든 도토리묵이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른 덕분에 도토리가 상수라 또는 상수리로 이름

이 붙여졌다는 유래가 있다. 도토리묵은 지금은 가을에 도토리 열매를 모아 녹말가루를 만

들어 놓았다가 특별한 날 집안에서 만들어 먹는 별미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식량이 부

족한 시절 도토리가 구황식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마을 주변의 상수리나무는 한

발이라도 먼저 도토리를 수확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커다란 돌이나 떡을 치던 메(떡메)로 줄

기를 맞는 수난을 당했다. 그 흔적이 여기의 상수리나무에도 남아 있다. 그 부분이 패여

썩어가고 있었다. 이제 취원각의 주인은 떠나고 없고 와룡리 상수리나무의 패여 있는 흔적

을 보니 선조들의 배고픔을 새겨놓은 듯해 가슴을 저민다. [한국일보 게재]


경북 영주 소수서원의 소나무숲

서승진 산림청 임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