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고제희 선생이 내외경제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기업과 풍수"입니다. 매주 금요일 연재되고 있습니다.

  워커힐호텔과 집터

  서울과 수도권 동부 쪽을 오가다 보면 광진구 아차산에 한강을 내려다 보며 우뚝 솟아 있는 한 건물이 유독 눈에 띈다. 바로 워커힐호텔이다.
  이 호텔 경내에는 본관과는 별도로 여러 채의 빌라가 숲 속에 들어서 있는데, 이 빌라는 정객들의 비밀스런 쉼터로 이용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가 검찰 비리수사 대책을 숙의했던 사파이어빌라도 이곳에 있고, DJ와 JP가 내각제 개헌 유보와 신당 창당에 합의했던 에스톤하우스 역시 호텔 북쪽의 강가에 위치해 있다. 특히 5공시절 지어진 에스톤하우스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됐는데, 얼마 전에는 MBC 드라마 ‘호텔리아’의 촬영장으로 사용돼 다시 한번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곳에는 또 고 최종현 회장이 살던 저택이 있다. 최 회장은 서교동 집이 세 자녀가 성장해 비좁아지자 새 집을 구해 이사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너무 호화로우면 아이들의 교육에 좋지 않다는 생각에 워커힐호텔 경내에 있는 빌라 한 채를 전세 내 살았다. 50여평 빌라에 세 들어 살던 최 회장은 약 20여 년 전 워커힐호텔 경내 아차산성의 동북 쪽 산 기슭 터에‘一’자형의 2층 저택을 지은 후 입주했다.

  그 후 최 회장은 ‘에메랄드’로 불리는 이 집의 터가 풍수적으로 좋지 않다는 얘기를 풍수사로부터 들었다. 한강이 광나루 쪽을 찌를 듯 달려 드는 곳이니 일시 머물며 완상하고 휴식을 취하기는 적당하지만 장기간 살기에는 문제가 매우 많은 곳이란 설명이었다.

  하지만 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집이란 일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며,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사람인데 어찌 사람의 기가 땅의 기운에 눌릴 수 있느냐 하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풍수적으로 좋지 않은 때문이라고는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최 회장은 그 집에 살면서 건강을 잃어 폐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부인 역시 남편을 간병하던 중 원인 모르게 영면했다. 지난 일이지만 주인 없는 쓸쓸한 빈 집을 보니, 만약 최 회장이 풍수적 조언을 받아들였다면 좀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SK그룹 제1대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이 48세로 요절한 배경에도 집터가 흉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최종건 회장이 삼청동에 새 집을 마련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SK는 데이진이란 회사와 기술제휴를 맺고 있었다. 데이진의 오오야 회장의 부인은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면 안 되니, 삼청동 집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다. 사 진을 본 부인은 그 집의 지형이 사나워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최종건 회장 역시 자신이 기가 센 만큼 충분히 누룰 수 있다며 예정대로 이사했다. 그 후 어찌된 영문인지 최종건 회장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최종현 회장이 15년 넘게 생전에 살았던 에메랄드 자택은 풍수상 앞쪽의 한강이 반궁수(反弓水: 혈을 등진 채 배역으로 흐르는 형세)로 흘러 드니 살풍(殺風)이 불어 오고, 지기(地氣)도 응집되지 못한 곳이다. 주 용맥은 아차산성에서 남동진해 에스톤하우스로 뻗어 가는데, 이 용맥은 아차산성을 떠나 곧 남동진하는 지맥을 낳고, 다시 에메랄드 못 미쳐 남 진하는 지맥을 또 낳았다. 그러므로 집터는 남동진한 주맥에서 지맥이 남진으로 갈라 뻗어간 그 사이에 위치한다. 즉 용맥을 타고 흐르던 기가 물을 만나 응집된 곳이 아니고, 지기가 양분되어 흘러가는 안쪽이다.

  풍수에서는 이런 곳을 ‘사타구니 혈’이라 부른다. 두 다리 사이 성기가 있는 곳으로 사람의 그곳이 언제나 습하듯이, 자연에서도 두 산줄기가 갈라지면 그 사이로 물이 흐른다. 소위 수맥이 흐르거나 물이 찬 흉 지이다.

  본래는 산기슭이었을 터에 산을 깎거나 성토로 협곡을 메워 부지를 평편하게 마련했다. 성토한 흙에 바람까지 들어차 지기 역시 쇠약하다. 또 집 앞쪽도 흙 축대를 쌓아 마당을 넓혔지만 본래는 계곡이었을 것이다.

  계곡은 밤낮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음곡풍(陰谷風)이 부는 통로로, 이런 찬바람은 사람의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어 풍병을 앓게 한다. 이런 곳은 사람을 상하게 하니 집터뿐만 아니라 묘터로도 피해야 할 곳이다.

  그러면 워커힐호텔 터는 어떨까. 옛날 한양과 부산을 연결하던 광나루의 북쪽 언덕 위에 위치한 워커힐호텔은 현재 수려한 자연환경과 서비스를 앞세워 세계적인 초일류 호텔로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1963년 개관한 호텔은 1973년에 SK그룹의 계열사가 되었고, 현재는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대규모 신관을 신축 중이다.

  워커힐호텔이 들어선 터는 지맥 위에 똑바로 들어서지 못한 채 계곡 위에 넓게 자리해 지기가 쇠약하다. 또 좌측의 남동방에서 도래한 한강 물 이 호텔을 화살처럼 쏘아 충사(沖射)한 후 우측의 남방(丙午破)으로 빠지는데, 호텔의 좌향까지 동향에 가까운 신좌을향(辛坐乙向)으로 놓여 길하지 못하다.

  풍수 경전에 이르길, “정(情)이 지나치다. 간혹 초년에 발복하는 사람도 있고 불발하는 사람도 있다. 혹 장수하는 사람도 있고 목숨이 짧은 사람도 있으니 길흉이 상반된다”라고 했다. 이곳에서 자연의 기를 충분히 받고자 한다면 건물의 방향을 동남향[巽巳向]으로 앉혀야 한다.

  이처럼 이곳은 주택을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호텔 터로는 최적이다 . 워커힐호텔은 동쪽에서 흘러온 한강이 아차산에 막혀 물길을 남서쪽으 로 바꾸는 곳이며, 절벽이 높게 형성된 대(臺)에 위치해 전망이 좋다.

  대는 물에 의해 산이 깎여 나가며 언덕이 높게 형성된 곳으로, 사방을 조망하기에 좋다. 또 아래에는 물이 깊은 소(沼)가 있어 예부터 정자(亭子)가 들어설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홍진(紅塵)의 더러움을 멀리하는 선비들이 살림집과는 동떨어진 자기만의 공간을 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정자 문화이다. 정자는 시인묵객이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산수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학문을 닦거나 벗들과 음풍농월하던 장소였다. 뒤로는 푸른 아차산을 베 개 삼고, 앞으로는 넓은 한강을 조망하기에 제격인 이곳은 휴식 공간이나 또는 모임을 열기 위한 다락[樓]이 들어설 장소로 적합하다.

  또한 신축 중인 신관 건물은 최고 등급의 호텔답게 풍수적 좌향까지도 길하게 배치돼 향후 호텔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