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고제희 선생이 내외경제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기업과 풍수"입니다. 매주 금요일 연재되고 있습니다.

   "강남의 배추밭을 사 놓으면 10년 뒤에는 앉아서 거부가 될거요. 하지만 나는 기업가야. 기업가는 땅 장사로 돈을 벌면 안돼." 최종현 회장의 기업관이 잘 드러난 말이다.

   그 결과 SK그룹은 10대 재벌 기업으로 성장할 때까지 번듯한 사옥 하나 없이 줄곧 남의 빌딩에 세들어 살았다.

   SK그룹은 1986년에 와서야 을지로 입구에 처음으로 자기 빌딩을 구해 입주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90년대 정보통신사업에 진출하고, 또 3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하자 본사 사옥의 역할을 다하기 어려워졌다.

   계열사들이 서울 시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 상호 협조나 시너지 효과가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하자, 최 회장은 본사 사옥을 지어 핵심사업을 한곳에 모을 결심을 하게 된다. 서린동에 위치한 지상 36층, 지하 7층 규모의 SK빌딩은 이런 배경을 거쳐 99년에 완공됐다.

   건축가 김종성 씨에 의해 설계된 이 빌딩은 종로의 풍경을 정제시킨 걸작으로 평가받는데, 이 빌딩에는 아주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

   건물 밑 네 기둥에 거북 발의 문양이 그려져 있고, 정문과 후문의 현관 앞에는 거북 머리와 꼬리를 상징하는 조형물과 문양이 그려져 있다. 무심코 바라보면 조형물과 문양이 거북을 표현한 것임을 도저히 알 수 없다.

   SK본사 빌딩은 청계천의 북쪽에 위치한 채 청계천로를 바라보며 서 있는데, 빌딩 터는 북한산에서 남진한 용맥이 북악산으로 솟기 직전, 한 줄기 용맥이 삼청공원으로 가지치고, 다시 이 기맥의 한 가닥이 낮은 구릉으로 남진해 청계천을 만나며 지기(地氣)를 응집한 곳이다.

   즉, 북한산의 기맥이 멀리에서 뻗어와 물(청계천)을 만났으니, 풍수에서는 '신령스런 거북이 물을 마시는 영구음수형(靈龜飮水形)'으로 표현하며, 지기가 왕성한 터라 간주한다.

   또 SK빌딩을 감싼 주변의 산세 역시 빌딩 내부에 생기가 머물도록 지기의 순화를 꾀한다. 북악산에서 인왕산을 거쳐 남산으로 이어지는 산 능선이 우측을 감싼 백호이고, 북악산에서 삼청공원→창덕궁→종묘로 이어지는 낮은 산 능선이 좌측을 감싼 청룡이 되며, 남산이 앞쪽의 살풍을 막아 주니, 이곳은 소위 사신사(四神砂)가 잘 짜여져 대를 이어 부를 이룰 길지로 봐도 손색이 없다.

   SK빌딩의 완공을 미쳐 보지 못하고 최종현 회장이 98년 타계한 것은 애석한 일이다. 빌딩이 완공되자, 손길승 회장은 “빌딩을 거북이 등으로 떠받쳐야 사업이 오래도록 번창할 것이니 대안을 수립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지시를 받은 비서진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거북이 등으로 빌딩을 떠받치도록 설계되지 않은 상태에서 빌딩은 이미 완공됐기 때문이다.

   전설에 동해에는 삼신산(三神山)이 물에 떠 있는데, 여섯 자라(六鰲)가 머리로 산을 떠받들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빌딩을 거북 등에 세우는 것은 그 빌딩이 나라의 기둥으로서 역할을 다한다는 기원이 담겨있고, 또 음(陰)인 영구음수형의 터와 양(陽)인 거북 빌딩을 절묘하게 교합시킴으로써 사업 번창과 무병장수를 기원하고자 함이다.

   비서진은 고심 끝에 빌딩을 거북 등 위에 올려 세울 대안을 마련했는데, 빌딩 정면의 중심에는 거북 머리 형상의 석물을 설치하고, 빌딩 네 귀퉁이에는 거북 발 모양의 무늬를 만들고, 뒤쪽에는 거북꼬리에 해당하는 삼각 문양을 배치했다.

   결국 평면도로 보면 빌딩은 거북 등 위에 올라 있고, 정면에는 거북 머리, 후면에는 꼬리, 네 귀퉁이에는 5개의 발가락을 가진 거북 발이 표출된 셈이다.

   특히 장방형의 검은 머리에는 8개의 흰점을 찍었는데, 이것은 '하늘천(天)'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고대 소설인 '숙향전'에는 이마에 '天'자가 있고 발에는 '王'자가 새겨진 거북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거북을 남해 용왕의 딸 또는 수중동물의 왕으로 묘사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빌딩 정면의 거북 머리에 '天'자 문양을 새긴 것은 SK그룹이 국내 초일류 기업의 선두에 있음을 무언으로 상징한 조형물이다.

   또 왕릉비(王陵碑)나 고승의 탑비(塔碑), 그리고 정승의 신도비(神道碑)를 보면, 대개 거북 받침 위에 비신(기록판)을 세우고 비신 위쪽에는 뿔 없는 쌍룡이 여의주를 다투는 문양을 새긴다. 거북은 만 년을 산다는 장수를 상징하니, 임금과 고승, 또는 고관대작의 위엄과 공훈, 그리고 학문과 덕행이 기록된 비 역시 영원토록 보존되길 바라는 기원에서 비롯된 풍습이다.

   SK본사 빌딩은 주산에서 길게 남진한 평지룡(平地龍)에 자리 잡았는데, 건물의 형체는 오행 상으로 길쭉한 목성체(木星體)에 해당한다. 이 형태는 안산이며 수성체(水星體)인 남산의 기운을 상생으로 받아 길하고(水生木), 주산인 북한산의 화성체(火星體)와도 상생의 관계에 있어(木生火) 길하다.

   또한 부지의 기운은 오행 상으로 금국(金局)인 흰색이며, 빌딩 외관은 수국인 검정색이다. 이 역시 금생수(金生水)라 상생의 조화를 이룬다.

   따라서 모나고 흉한 형상 없이 수려하면서 반듯한 SK빌딩은 주변 산들의 생기를 상생으로 받는 형태이면서, 빌딩 색깔까지 부지의 기운에 순응토록 선택했다. 그 결과, 사업이 순조롭고 번창할 빌딩 상을 지녔다.

   그러나 SK그룹이 발전과 번영을 거듭하기 위해 풍수적으로 걸림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풍수는 사옥의 입지도 길해야 하지만, 경영자가 사는 주택 역시 복지(福地)일 것을 요구한다. 경영자의 주택은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푼 뒤 활력을 되찾는 곳이어야 하고, 만약 피로가 누적된다면 질병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쉐라톤워커힐호텔 내 최종현 회장이 살던 빌라는 풍수적으로 길하지 못했고, 그 결과, 최 회장 내외의 건강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그 풍수적 원인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