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30대 대기업들은 모두 기업의 색채가 강한 본사 사옥을 가지고 있다.

최상층 창문이 아치 형태로 된 현대의 계동사옥, 붉은 화강암으로 외벽을 통일한 삼성 빌딩, LG의 트윈타워 등이 그렇다. 본사 사옥은 큰 문중의 정신적 구심점인 종가댁과도 같이 그 기업의 권위를 상징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회사가 본사 사옥에 입주했는가에 따라 해당 그룹의 주력 내지 장자(長子)기업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한국의 기업들은 다각도로 사업을 확장시켜 작게는 10여개, 많게는 수 십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몸집을 키웠고, 세계와 경쟁하며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그런데 계열사가 여러 빌딩에 흩어져 있으면, 계열사 간에 상호 협조나 경영의 시너지 효과가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런 연유로 그룹의 사령탑들은 계열사에 대한 지휘, 통제의 편의뿐만 아니라 경영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핵심 사업을 한 곳에 모아 역량을 집중시키는 본사 사옥을 필요로 한다.

금호그룹의 창업주 고 박인천(朴仁天·1901~84) 회장은 46년 광주에서 택시 2대로 사업을 시작해 큰 기업을 일군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며, 한국 기업사에서 가장 정도(正道)를 걸은 인간적인 기업인으로 기억 된다.

48년에는 금호고속의 모태인 ‘광주여객’을 설립해 호남 지역의 교통난 해소에 크게 기여했고, 지역민들에게는‘틀림없는 버스’로 신뢰와 사랑을 받았다. 70년 경부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비약적으로 성장한 금호는 여객운송업의 선구자로서 기업의 골격을 갖추더니, 운송사업의 원활화를 위해 타이어산업에도 진출했고, 나아가 호남에 뿌리를 둔 기업답게 지역민을 위한 교육과 문화사업에도 아낌없이 투자했다. 또 88년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켜 국제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한 금호 그룹은 2002년 현재 재계 9위의 대기업으로 우뚝 섰다.

금호그룹이 서울에‘그룹의 얼굴’격인 본사 사옥을 처음 장만한 것은 창업 후 42년이 지난 88년의 일이다. 그때서야 사옥을 가진 이유는 광주고속과 금호타이어 등 주력 기업들의 본거지가 호남이고, 또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것은 기업정신에 위배된다”는 창업주의 신념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80년대 들어 그룹의 사업군이 운송(육상 ·항공), 화학, 건설, 철강 등으로 급격히 팽창하면서, 각 계열사들이 여러 건물에 흩어져 있음으로 업무 효율과 더불어 직원들의 소속감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자, 기업 공신력을 위해서라도 자체 사옥을 필요로 하게 됐다.

그래서 회현동에 자리한 지상 22층 규모의 한국무역회관을 사들이며 금호그룹은 마침내 신사옥 시대를 개막시켰고, 옥호를 ‘아시아나빌딩’으로 이름지었다. 그렇지만 이 빌딩은 아시아나항공이 급격히 성장함에 따라 곧 포화상태에 다다랐고, 업무 효율을 위해 계열사들을 다시 타빌딩으로 이전시켰다.

금호그룹은 다시 좁아진 사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96년 신문로에 신사옥을 착공했다. 그 후 반세기 만에 마련한 회현동‘아시아나빌딩’은 IMF를 맞아 구조조정을 위해 매각한 다음, 완공된 18층 규모의 신문로 사옥에 99년 드디어 입주해 오늘에 이른다.

현재 금호그룹의 본사 사옥이 자리한 신문로는 조선시대 인왕산의 왕기설(王氣說)에 따라 들어섰던 경희궁의 정문, 즉 흥화문(興化門)의 앞마당에 해당하니, 소위 궁궐로 왕기가 출입하던 곳이다.

광해군은 인왕산 기슭에 있는 정원군(定遠君) 옛집에 왕기가 서렸다는 말을 듣고서 그 집을 헐은 후 경덕궁이란 크고 아름다운 궁궐을 지었다. 무릇 궁궐을 지어 반역의 왕기를 눌러 막고자 한 것이다. 그렇지만 땅의 기운을 어찌 사람의 힘으로 당해낼 수 있겠는가! 결국 인조반정이 일어나 정원군의 맏아들이 광해군을 폐한 후 임금에 올랐으니(인조), 인왕 산의 왕기설은 사실로 드러났다. 영조는 경덕궁을 경희궁으로 고쳐 불러 오늘에 이른다.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한북정맥은 대성산→백운산을 거쳐 북한산까지 뻗어와 솟구쳤고, 북악산은 이 산에서 서남진한 용맥은 재차 머리를 든 산이다. 북악산에서 서진과 남진을 거듭한 용맥이 자하문터널을 지나 인왕산으로 솟고, 여기서 무악재를 넘지 않은 한 기맥이 남동진해 남대문을 거쳐 남산으로 솟았으니, 경희궁은 인왕산에서 남산으로 뻗은 간룡(幹龍)에서 동쪽으로 지룡(支龍)이 가지치며 청계천을 만나 지기를 응집한 땅이다. 따라서 금호빌딩의 부지는 태조산은 백두산이고, 북한산이 중조산이고, 인왕산이 소조산이다.

경희궁은 경복궁·창덕궁에 비해 비록 터는 작지만 지맥이 인왕산에서 낮게 구릉을 이루며 뻗어 왔고, 또 지대가 높아 분위기가 시원하다. 또 현재 구세군빌딩에 있던 흥화문은 문을 동쪽으로 둬 길한 기운이 궁궐로 출입하는 것이 용이했다. 풍수에서는‘누워 있던 용이 여의주를 얻고서 하늘로 오르는 와룡승천형(臥龍昇天形)’의 명당이라 부른다. 그런데 용은 여의주를 입에 물어야 하늘로 올라 온갖 풍운조화를 부릴 수 있다.

만약 여의주를 얻지 못하면 만년이 지나도 이무기로 남으니,‘조선의 풍수’에서는‘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기운 때문에 지기가 발동하고, 이 형국은 묘당(廟堂)에 설 큰 관리를 배출한 터’라고 하였다. 선조가 낳은 아들 중, 다섯째의 맏아들이 인종 임금이 된 배경에는 이곳에 집을 짓고 산 지덕의 감응 이외에는 어떤 이유를 찾기 어렵다. 세상에서는 풍수학을‘천지의 신령한 기운을 빼앗아 운명을 바꾸는 학문(奪神功改天 命)’이라고 부른다.

또‘궁궐지’에 '궁궐의 덕유당 서북쪽에 거북 형상을 지닌 두 개의 바위가 있다. 왕출암(王出岩)이다’라고 했다. 왕출암은 곧 군왕의 기운을 지닌 수컷 바위이니, 만약 이 왕기를 금호빌딩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금호그룹은 21세기에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함은 물론, 조만간 재계를 리더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수거북은 짝짓기를 위해 암거북에게 접근하고, 하늘의 제왕인 용 또한 영롱하고 신비한 빛을 내는 여의주를 얻어야 지기가 발동하니, 빌딩의 앞쪽에 거북과 여의주의 기능을 함께 가진 조각품을 설치하면 사업운이 대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