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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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Ⅱ. 座談 內容

  지 선생이 세상을 떠나시기 9개월 전인 1999년 1월 29일 오후, 필자는 지인(知人)과 함께 동대문 운동장 앞쪽에 위치한 지 선생의 사무실을 찾았다. 건물은 허름했고, 사무실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현판이 걸려 있어, 지 선생의 사무실 임을 알았다.

  사무실은 방이 두 칸으로 나뉘어졌는데, 한 칸은 손님들이 대기하는 공간이고, 안 쪽이 집무실이다. 약간 어두운 대기실의 사각 소파에는 이미 여러 명의 중년 남녀가 앉아있었고, 선생은 출타한 후 귀사 중이란 말을 들었다. 탁자 위에는 여러 권의 앨범이 양쪽으로 쌓여있었다.

  한 쪽은 역술인 협회의 활약상을 담은 사진첩이고, 한 쪽은 그 동안 지 선생이 영면의 터를 잡아준 재계·정계 인사의 안장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첩이었다. 배상명 박사, 이병철 회장(삼성), 홍진기 회장(중앙일보), 김상만(동아일보), 이범석 장군, 김학렬(전 부총리), 원용덕 장군 (이미 지 선생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등으로, 장사지내는 현장 사진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선생이 귀사하자, 사람들이 순서대로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고, 5분 이내로 상담은 끝났다. 사주관상을 보러온 분들이다. 상견례가 끝나자, 대담은 13:40∼14:40까지 이어졌고, 인사를 마치고 집무실에서 나오자, 기다리던 8명의 손님이 짜증 섞인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음은 필자와 지 선생과 나눈 대담 내용들의 요약이다.

  [지 선생] 동작동의 국립묘지와 대전의 국립묘지는 내가 잡아준 것이다. 풍수를 하려면 눈이 열리는 개안(開眼)이 되어야 한다.
  [필자] 육영수 여사의 묘가 물구덩이라는 항간의 소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 선생]당시 나는 출장 중이었다. 불러서 국립묘지에 도착해 보니, 최와 남씨 할아버지가 자리를 이미 잡아두었다. 김종필씨가 미리 "흉하지 않으면 그대로 쓰게 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최와 남씨 할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대로 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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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해
  (참고로 지 선생이 그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는 이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한다.)

  ★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pp163∼164]
   묘터로 가보니 터를 잡은 최풍수와 남풍수 두 노인이 현장에 있었고, 이미 광중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자리를 잘못 잡았음을 직감했다. 청룡백호는 뚜렷한데, 내려오는 용이 너무 빈약했다. 흉지는 아니었지만 그리 좋은 자리도 못되었다. "썩 내키지가 않는군요" 그러자 관리소장은 "이미 늦었어요. 그냥 쓸 수 밖에요." 그렇게 해서 이후의 작업은 총책임자로 지휘하고 육여사를 안장했다.

  ★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p160]
   단언컨대 그 자리는 물이 차지 않았다. 아니, 물이 찰래야 찰 수도 없다. 왜냐하면 사전에 그런 일이 우려되어서 수리전문가가 나서서 배수로를 철저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 박대통령 묘의 관리자(육여사의 안장시에 현장에 있었다고 증언)
   육여사의 광중을 파니 물이 배어 나왔다. 그래서 땅을 깊게 판 뒤에 자갈을 두텁게 깔고 배수관을 묻고서 그 위에 흙을 덮은 다음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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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이병철 삼성회장의 장사를 주관했는데, 그 터가 좋은 곳입니까?
  [지 선생] 그렇지 않다. 내가 호암미술관 주변의 다른 곳을 추천했는데, 부득이 본인이 고집을 부려 그 자리로 잡았다.
  [필자] 연천에 있는 선생의 선영을 가 보았습니다. 효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미리 마련한 선생의 가묘(假墓)에 그대로 묻히고 싶으십니까?
  [지 선생]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다른 곳을 택할 수도 있다.
  [필자] 풍수 공부를 하면서 어떤 책을 보면 좋겠습니까?
  [지 선생] 호순신(胡舜申)이 쓴 〈地理新法〉은 읽어볼 책이다.
  [필자]지금까지 선생이 소점한 묘를 찾아다니며 풍수공부를 하였습니다.
  [지 선생]풍수에 공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장지에 길지가 없는데 자리를 택해 달라면 참으로 곤란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잡아준다. 명당은 덕을 쌓아야 들어가지 돈이 많은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필자]<한국지리총람〉을 읽으면 형기론인지 이기론 책인지 불분명합니다. 그 책의 이론적 근거는 무엇입니까?
  [지 선생]이미 오래된 책이고 보통의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쓴 것이다. 그 책에 소개된 명당 답사기는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것들이다.
  [필자] 집필을 왜 더 안 하십니까?
  [지 선생]시간이 없다.
  [필자]이제 풍수는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결록을 써야 합니다.
  [지 선생]옳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과연 명당을 얼마나 잡을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필자]연세는 어떻게 되시고, 건강하십니까?
  [지 선생]78세이다. 현재 식이요법으로 체중을 8kg이나 뺐다. 평소 두주불사인데 현재 식이요법 중이라 술을 먹지 않는다.
  [필자]전국의 유택을 다니며 풍수공부를 하였습니다.
  [지 선생] 그렇게 해야 한다. 나이는 몇인가?
  [필자]41세입니다.
  [지 선생]그럼 돼지띠겠다.
  [필자]그렇습니다.
  [지 선생]앞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풍수 선배로써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지 선생]선배의 경험을 배우면 공부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진 : 지 선생 생전에 현 묘소 자리에 마련하였던 가묘로 습한 곳이라 잔디가 자라지 못하여 매년 사초를 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잔디가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Ⅰ. 머리말 - 필자 고제희

Ⅲ. 風水 工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