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조는 스스로를 '민족풍수학자'로 부를 만큼 일반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서양 지리학을 전공한 그가 이 나라 역사와 기층적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풍수 사상에 관심을 두고 풍수 사상을 종합, 정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는 또 '지팡이 풍수와 시골 지관'으로 지칭되는 술수적인 풍수가 만연했을 때, 풍수가 발복만을 바라는 묘터잡기 사상만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좀더 안락하게 살아갈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하는 동양의 지리관 내지 생활 지혜임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럼 그가 말하는 자생 풍수란 무엇인가? 우리 민족은 생활 경험을 통하여 기후의 변화와 땅의 이용에 따른 다양한 사례를 일정한 확률로 통찰함으로써 자연 속에서 좀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였다. 배산임수의 터를 잡고는 산기슭에서 땔감과 곡식을 얻었고, 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을 마시고 살았다. 여름에는 홍수가, 겨울에는 북서풍의 매서움이 걱정되다 보니 방풍림을 심어 살을 에는 바람을 막고, 물길을 바꾸거나 사방 공사를 벌여 홍수의 피해를 줄이는 지리적 지혜를 성숙·발전시켰다.
그리고 장승, 당산목, 서낭당, 입석을 세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돌무더기를 쌓거나 굿 또는 민속놀이를 벌여 마을의 힘을 단결시켰다. 모두가 주어진 자연 환경 속에서 흉화를 피하고 길복을 얻고자 하는 지혜로 선사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우리네 서민 사회에 전승된 기층 문화이며 고대의 자연관이다. 이것을 최창조는 '자생 풍수'라 이름 지었고, 결함이 있거나 기가 허한 땅이 있으면 생활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를 이용해 보완 내지 보충하여 병든 땅을 다시 쓸모있는 땅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한국의 자생풍수 1" - p185]
풍수의 본질은 생기에서 출발한다. 생기란 천지 만물을 생육하는 빛, 온도, 산소, 양분, 물 등이 혼합된 에너지를 가리키며, 자연 상태라면 빛을 제외한 모든 요소가 흙 속에 존재한다. 또 산맥을 타고 흐르던 기는 물을 만나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 채 응집된다. 풍수는 그곳을 혈이라 부르며, 혈 위에 살거나 혹은 조상을 매장해야 산 사람이나 후손이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본다. 여기서 산천에서 생기가 최대한도로 응집된 혈을 찾는 방법과 과정을 이론화시킨 것이 풍수지리학이고, 생기에 감응받는 정도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달라지니, 좀더 길한 땅을 택하여 살거나 조상을 매장하자는 적극적인 운명개척 사상이 풍수 사상이다.
물론 이런 신비적인 요소가 현대 과학의 판단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합치되는지 혹은 비과학적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오직 개인의 믿음에 달려 있을 뿐이다. 현대 과학과 합치된다고 무턱대고 맹신할 필요도 없는 일이고, 또 합치되지 않는다고 무조건 미신이라고 매도할 수도 없다. 현대 과학의 잣대가 만능은 아니기 때문이다.["삶과 온생명(장회익 저, 솔 간행)" - p57]
심지어 현대과학문명을 만들어낸 서구인들 조차도 풍수의 발복 사상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 생활 풍수는 상술에 능한 중국인들이 서양 사람들에게 퍼뜨린 것으로, 주로 풍수로 인해 건강과 사랑, 부(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21세기 벽두인 지난 1월 여러 신문에 `미국 실리콘벨리에 풍수 열풍'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예컨대 인터넷 사업으로 거부가 된 차이사오사오가 대저택을 구입하면서 부동산 회사에 주문한 내용이 “가격은 묻지 않겠다. 풍수가 좋은 집을 구해 달라”는 것 뿐이란다. 같은 날 밤 나는 베이징대에 유학하고 있는 한 학생의 전화를 받았다. 베이징대에도 풍수 강의가 인기를 끌었는데 지난해 파룬궁 사건 탓에, 현재 담당 교수들이 자진해서 강의를 중단하고 있는 상태지만 곧 재개될 것이란 소식이었다. 단국대 김문수 교수에 의하면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스페인, 남아공 등 대륙을 가리지 않고 풍수가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우리가 지금 추구하고 있는 자생풍수와 같은 것은 아닌 듯하다. 그들은 주로 생활환경 속에서 기의 순환과 영향을 도식화하면서 건축물의 내, 외부 구조, 위치와 좌향, 가구 배치, 색깔 등 소위 인테리어 풍수로 알려진 생활 풍수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한겨레 신문 - "땅의눈물, 땅의 희망"]
윗의 글은 최창조가 한겨레 신문에 기재한 글로 본인의 저서에서 이야기한 바대로 내 식구 내 가족 잘먹고 잘살자는 이기적인 잡술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과연 풍수 속에 포함된 발복 사상이 사람들의 이기심의 발로일까, 아니면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성일까?
최창조가 말하는 자생풍수는 자연의 재해를 피하고자 하는 생활적 지혜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토속 신앙에 국한하여 풍수를 해석했을 뿐이지, 개인의 운명에 초점을 맞춘 정통 풍수학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정통 풍수는 생물의 주거지 선택이나 마을의 입지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묘지에 적합한 혈을 찾는 기술적인 방법이 풍수의 5대 요소, 즉 용, 혈, 사, 수, 향으로 나뉘어 이론적 체계를 갖추고 학문으로 전승되었다. 자생풍수처럼 지형적 문제점을 보완·방살(放殺)하는 데 치중하지 않는다.
문제는 최창조가 2천년에 걸쳐 전승, 발전해 온 혈을 찾는 방법과 과정을 한낱 잡술이라고 몰아붙인 데 있다. 특히 그의 사회적 영향력으로 볼 때, 자칫하면 그의 편협된 주장이 정통 풍수학이 21세기 인류에게 공헌할 여러 순기능까지도 절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염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며, 그의 자생풍수론에 대한 공개토론이나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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