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에 위치한 H미술관의 우측에는 S기업의 창업자인 L씨가 생전에 살던 한옥이 한 채 있다. 그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으로 연못 위쪽에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나무는 본래의 거목이 죽자 그 죽은 나무 등걸에서 새순이 나와 사람 팔뚝 굵기로 자라났다. 보통 그 정도 크기의 은행나무라면 은행이 열리지 않는데, 그 나무만은 은행이 주렁주렁 열린다.

  왜 그럴까? 죽은 고목의 정기가 뿌리를 통해 갓 태어난 은행나무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고목과 새 나무는 뿌리가 동일하다. 비록 고목은 쓰러져 형체마저 문드러졌지만,같은 뿌리에서 다시 싱싱한 새순이 돋았으니 그 삶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인생에서 자식을 두는 의미도 그러할 것이다. 자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자신의 정기를 받은 후손이 계속 번성하니, 비록 자신의 형상은 사라졌으나 계속 살아 있는 셈이다. 고목이 뿌리를 통해 새 나무에 정기를 뿜어 주듯이 조상 역시 유골에서 발하는 생기 에너지를 통해 오래도록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


  거목이 된 나무가 묘지에 있다면 마치 생전에 조상을 뵙는 듯 하여 마음이 경건해진다. 묘지목이란 묘 주변에 즐겨 심는 나무이다. 전국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묘지목으로써 노거수로 자란 것은 배롱나무와 향나무이고, 또 "도래솔"이라 하여 반송도 많이 심는다. 천연기념물 제214호인 진안의 이팝나무는 "아기사리"라 불리는 아기의 무덤에서 자란 것이란 한다.
  충남 당진에는 문장 8대가에 속하는 선조 때의 송익필(宋翼弼)의 묘가 있고, 한 옆으 배롱나무[紫微]가 있다. 가지를 땅으로 낮게 드리운 배롱나무는 일명 목백일홍이라 불린다. 나무의 절개가 대단하여 백 일 동안이나 꽃을 피워 정원수는 물론이고 열녀문이나 충신문 앞 쪽에도 많이 심는다. 또 부산의 정문도 묘에는 천연기념물 제 168호로 지정된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900년의 수령을 자랑하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풍수적으로 묘지목을 선정할 때는 기념식수와 마찬가지로 수종과 묘지 내의 위치를 잘 선택해야한다. 심을 당시만을 생각하여 원칙없이 식목한다면 오래지 않아 고사해 버린다. 수목 선정은 묘지가 입지한 자연환경을 풍수적으로 면밀히 관찰해 그 환경에 적합한 나무와 위치를 잡아 식목해야 한다. 향나무가 잘 자라는 곳과 반송이 잘 자라는 곳은 입지조건에서 차이가 있다. 가시적인 경관 위주의 식목보다는 자연 환경에 맞춘 〈안성맞춤형 조경〉이 요구된다.

***<오래살 나무가 입지할 터를 찾는 풍수적 방법은 '고제희 교수의 쉽게하는 풍수공부'의 '노거수와 풍수'부분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음.>***


<사진 : 묘지조경에 많이 쓰이는 반송으로 일명 묘지송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