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제 신문]고제희 학회장 인터뷰 기사
2010.01.01

“세종시 풍수적으로 좋지 않은 곳”
‘국가 공인 컨설턴트’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
풍수(風水)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람’과 ‘물’이라는 뜻으로, 땅과 공간의 해석과 활용에 대한 동아시아의 고유 사상이다.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의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으며, 실제로 조경과 건축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일제시대 이후 합리와 과학으로 무장한 근대성은 한때 풍수를 근거 없는 믿음에 기초한 한낱 미신일 뿐이라며 맹공을 퍼부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 대학에 관련학과가 우후죽순 개설되고 가장 냉철하기로 이름난 대기업의 경영자들조차 열렬히 풍수를 신봉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선뜻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힘든 풍수지리는 도대체 어떤 마력을 지녀 2010년을 목전에 둔 지금도 한국인들을 그토록 잡아끄는 것일까?
‘국가 공인 풍수사’로 통하는 고제희(50) 대동풍수지리학회장, 그는 이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는다. “풍수는 인간이 자연과 공존·상생하며 조화를 이루는 생태학이다. 뿐만 아니라 작은 노력을 통해 운을 상승시키는 위안과 믿음의 과학이다.”
건설사·공공기관·부유층… 한국은 풍수를 좋아해
풍수와 관련한 그의 활동 반경을 보면 한국사회가 아직도 얼마나 ‘풍수친화적’인지 대번에 알게 된다.
그는 현재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의 초부유층 VVIP에게 전문적으로 서비스하는 하나금융그룹 WM(Wealth Management)본부와 기업은행 WCTS(Win Class Top Service)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VVIP들이 빌딩 등 부동산을 매입할 때 동행, 풍수지리에 관한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건설사들 역시 그를 열렬히 찾는 주 고객 중 하나다. 현대건설·삼성건설·대우건설·포스코건설·SK건설 등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그에게 지금껏 아파트·주상복합 부지에 관해 수십 건 이상의 풍수 컨설팅을 의뢰했다. 특히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현대건설 CEO 시절에 이어 LH 사장 취임과 동시에 그에게 집무실의 벽지·조명 및 테이블 방향을 포함한 풍수 컨설팅을 받았다. 허명수 GS건설 사장도 올 초 취임하며 집무실 배치, 실내 인테리어, 주 금고 위치 등에 관해 자문받았다.
공공기관 역시 의외로 풍수를 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시·토지공사·한국농촌공사·한국전력 등 공공기관을 대상으로도 사옥 이전 내지 자신의 프로젝트에 관해 수십 건의 자문을 수행했다. 특히 2003년 참여정부가 수도 이전을 추진할 당시에는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의 자문위원으로 공식 위촉돼 세종시를 포함한 대상 부지에 관한 답사와 풍수 평가 업무를 담당했다. 이를 통해 그는 ‘국가 공인 풍수사’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지금도 1년에 100회에 달하는 강연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풍수를 알리고 있다.
역사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인연
그를 만나기 전 한복을 입고 돋보기 안경을 쓴 심각한 도사풍(?)의 인물을 연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에 환한 얼굴과 달변을 갖춘 학자 내지 컨설턴트에 가까웠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평범한 회사원에 불과했으며, 풍수와는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닿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출신인 그는 1984년 삼성테크윈에 입사, 관리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문화·예술 계통 쪽에 오히려 관심이 있었던 그는 자원해 같은 삼성 계열사인 호암미술관으로 이동했으며, 취미 삼아 역사 인물 답사를 하게 됐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출간한 책이 전 3권으로 구성된 <한국의 묘지기행>으로,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찾는 스테디셀러다.
“전국에 흩어진 역사 인물의 생가와 묘지를 다니다 보니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풍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 각종 고문헌과 기존 서적을 바탕으로 혹독한 수업을 했다. 마침 인터넷이 보급되는 시기여서 사이트에 각종 풍수 이야기, 논문, 답사기들을 게재했는데 이곳저곳에서 호응을 얻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며 그간 전국을 주름잡았던 ‘도사’들이 점차 사라졌다(웃음). 아마도 풍수가 단순한 미신이 아닌 논리를 바탕으로 한 과학이라는 인식이 국민에게 새롭게 각인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종시, 풍수적으로 최악 조건 갖춘 곳
최근 수정론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세종시에 대해 실제 풍수 자문을 했던 컨설턴트로서 입지에 대한 견해를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 2004년 당시 정부에 제출했던 ‘신행정수도 후보지에 대한 풍수적 평가’ 보고서를 건넸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세종시에 대해서는 혹평 투성이었다. “배산임수적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으며, 후손이 끊어질 땅(絶孫之地), 산과 강이 앞뒤로 분리되지 못한 지형으로 배수의 진을 친 것 같은 위태로움, 생기가 왕성히 응집할 수 없고 흩어지는 곳, 좌청룡과 우백호를 제대로 갖추지 못함으로써 살풍이 부는 풍수적 국세가 매우 흉한 곳….”
“참여정부와 코드를 맞추지 못해 힘들었겠다”고 농담을 건네자, 그는 “뭐 그런 면도 없지 않았다”고 웃으며 답했다. “나에겐 풍수가 엄정한 논리에 바탕한 과학이자 세계가 주목할 만한 생태학이라는 신념이 있다. 그렇기에 풍수사가 권력이나 시류를 좇아 나쁜 곳을 좋다고 말하는 것은 자존심을 파는 짓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건강과 삶 고려된 개발 꿈꾼다
풍수와 관련한 세간의 믿음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기업의 CEO가 9·19·29 등 9자가 들어가는 층에 입주하는 게 좋다는데 근거가 있는가?
“풍수적으로 전혀 상관 없는 일이다. 층보다는 창밖을 내다봤을 때 산마루나 다른 빌딩이 인중선에 있을 때가 좋은 곳이다.”
수송동 이마빌딩(왕궁의 말을 키우는 곳이었다고 함) 옆에 있는 대림산업 사옥이 풍수적으로 위치가 좋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왕궁의 말터는 좋은 기운이 모인 곳인 만큼 근거가 있다.”
서울 한남동·성북동·평창동 등 전통적 부촌으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원래 그렇게 좋은 땅인지….
“지리적 위치 자체도 좋지만 무엇보다 그곳에 고층빌딩이 없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사람이 땅을 밟고 있으면 좋은 기운을 받고, 재물을 지키며 향유하기 쉽다.”
세종시와 함께 건설업계의 가장 큰 이슈인 4대강 사업에 관해 물었다. “원래 풍수적으로 땅은 음, 물과 바람은 양의 기질을 갖는다. 하나를 인위적으로 키우면 다른 곳은 몸살을 앓게 된다. 이 때문에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면 운이 흉해진다.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는 물론 MB정부와도 코드를 못 맞추는(?) 발언이다.
그러나 모든 개발이 사람의 건강과 삶이 고려된 개발이었으면 하는 그만의 코드는 영원히 변치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