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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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에 서린 민속

[숲이 희망이다 7]숲에 서린 민속




주변을 보자. 도심은 숲을 이룬 듯한 빌딩이 솟구친다. 시골의 공간은 전봇대 등이 수직적이다. 나무도 대체로 곧게 선다. 그것이 빽빽한 숲일 경우는 경쟁적으로 하늘높이 올라간다.


우리는 이를 우뚝 서서 관찰한다. 크게 따질 바가 아니라면 수직적으로 곧은 모습은 나무숲과 인간의 공통점이다. 나무숲에서 찍은 사진의 인물도 대부분 서있다. 그리고 숲 속 사진의 중앙은 인물이다. 그렇지만 인물이 없으면 사진의 전체적인 중심은 숲이 된다. 괜히 중심의 숲에 인물이 끼여들어 나무숲의 본질을 흐트러뜨리고 만 셈이다.


나무숲은 신화 속에서 우주의 중심이다. 다르게는 세계의 축이란다. 이 관념은 동서양이 따로 없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종교학자로 활동했던 루마니아의 엘리아데(M. Eliade)는 신화적인 나무, 기둥, 제단 등은 모두 수직적 구조라고 밝혔다. 즉 북유럽신화의 물푸레나무, 고대 그리스의 델포이 언덕, 이집트의 피라미드, 단군신화의 신단수 등이 수직적이다. 이 구조는 세계의 중심이나 중앙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는 긴 설명이 필요없는 일반상식의 관념이다. 그래도 여기에서 우리의 단군신화 ‘신단수’의 수직성을 얘기하는 것은 허사가 아니다. 한민족은 높은 산이나 나무숲을 신성시했다. 그것은 만물유신사상, 바로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체로서 하늘높이 솟은 신단수이다. 선인들의 나무숲 민속도 수직성의 신단수와 무관하지 않다.


예컨대 한민족은 묘지 주변에 소나무숲을 조성해 영혼을 달랜 풍습이 있다. 이는 수직적으로 곧은 숲이 있어야만 영혼이 그 숲을 이용해 천상계와 지상계를 오르내리며 스스로 위로를 삼을 수 있다는 정령관념이다. 그러니까 숲이 없으면 영혼이 안정을 잃고 묘지 밖으로 탈출해서 자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믿는 습속이다.


나무숲 속언도 수직성과 관련이 있다. 꿈에 소나무숲이 무성하면 집안이 번창한다는 믿음은 소나무가 하늘높이 왕성하게 자라는 것을 번영으로 표상한 주술적 관념이다.


게다가 소나무숲은 한민족의 중심인 동시에 축이기도 하다. 소나무가 ‘애국가’에 등장하고 남산에 자란다고 했다. 서울 남산이 한반도의 중간지점이니 애국가의 소나무는 한국의 수도 한복판의 나무가 아닌가. 지리적으로도 소나무 또는 그런 숲이 자라는 곳은 동북아시아의 중국, 일본, 한반도뿐이며 한반도는 그 중앙에 있다. 뿐만 아니라 소나무는 무가의 ‘성주풀이’에서 경북 안동 땅에서 씨를 받아 산천에 뿌렸더니 크게 자라나 재목감이 된 나무이다. 이 소나무는 ‘성주풀이’의 성줏대이며 성주를 상징하는 중심목이다.


그런가 하면 나무숲 민속에서 공간의 수직적 관념은 중국고사 ‘연리지(連理枝)’의 한국적 인식으로도 가늠할 수 있다. 한민족은 옆으로 퍼지는 나뭇가지의 연리지 고사보다는 곧게 서는 나무줄기의 ‘연리목(連理木)’으로 변화시킨 말을 선호한다. 즉 중국의 연리지(나뭇가지)는 공간의 수평적 의미가 있으나 한국의 연리목(나무줄기)은 수직적 의미가 짙다.


연리지는 후한말의 ‘채옹전’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말 그대로는 서로 다른 나뭇가지가 맞닿아 하나의 나뭇가지처럼 사는 자연현상을 뜻하지만 오늘날에는 연인이나 부부의 애정이 지극히 깊음을 비유한 말로 쓰인다. 한국의 연리목은 요즘 애정과 사랑의 소망을 위해 정성으로 축원하는 나무로 각광받고 있어 우리의 토속적 민속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쯤해서 각도를 약간 달리해 보자. 대나무숲 얘기다. 수직적으로 뻗는 숲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나무숲이다. 이 숲은 주로 집 뒤뜰에 많다. 집뜰에 대나무숲을 만든 뜻은 주로 바람막이의 역할 때문이었을 게다. 그런데 그뿐이었을까. 한민족의 신선사상이 복합적인 관념이라면 바람막이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아마도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상서로운 극락조 ‘봉황’을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 집뜰에 대나무숲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봉황은 5개의 동물형상을 하는 사람의 키만한 전설상의 새이다. 벽오동나무에 둥우리를 짓고 대나무 열매를 먹는단다. 봉황이 대나무 열매를 먹는다는 인식은 대나무가 60년 안팎의 주기로 평생 한번 열매맺고 나서 죽는 성질을 상서롭게 여긴 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사실 대나무는 식물학적으로 초본이면서도 목본의 성질이 있음은 물론 꽃도 평생 한번만 피는 신기한 식물이다. 민간에서는 이런 신기를 주술적 관념으로 받아들여 집뜰의 대나무에 꽃이 피면 집안이 망하는 것으로 알았다. 이상하게도 한민족은 태평성대를 위해 집뜰에 대나무를 심지만 그 대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동해안의 별신굿에서 무당이 굿을 할 때에 신대(신간)를 세우는 이유는 하늘의 신이 대나무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 여기에서도 수직적으로 꽂는 신대는 세계의 중심을 의미하며 ‘신단수’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아무튼 한반도의 샤머니즘적 나무숲 민속은 세계축의 수직성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런 우리의 나무숲 민속은 오래도록 전승하기를 바라지만 점차 삼림욕장과 휴양림같은 실존적인 휴양문화에 밀려나는 것 같아 사뭇 아쉽다.

나무의 능력, 숲의 힘

겨레의 나무, 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