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희망이다 23]숲에서 태어난 시(한국)
우리 시에서 숲은 시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이미지와 상징으로 수용된다. 숲 그 자체를 시로 쓴 경우는 드물지만 산이나 계곡, 나무와 새와 꽃 등 숲과 연관된 소재를 다룬 시들은 무수히 많다. 시의 신인 아폴론과 뮤즈들이 숲에서 살듯 어쩌면 모든 시는 숲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는 우리 신화 속의 고시가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시인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인식에 비친 숲의 다양한 의미와 변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신과 인간이 감응하는 성소(聖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전해온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네 머리를 구워 먹으리라.’
이 노래는 하늘에서 신이한 인물이 내려올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부족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거북을 닮은 산봉우리에 올라 막대기를 두드리며 부른 ‘구지가(龜旨歌)’이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사람들이 하늘의 계시를 받고 우두머리를 내려달라고 춤과 노래를 바친 곳이 숲 속이요, 하늘이 이에 감응해 우두머리를 내려보낸 곳도 숲 속이라는 점이다. 성소로서의 숲은 단군신화를 탄생시킨 태백산 신단수나 김알지왕의 신화를 탄생시킨 경주 계림에서도 그대로 찾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숲은 최초의 서정시로 평가받는 ‘황조가(黃鳥歌)’를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님 잃은 나는 뉘와 함께 돌아갈꼬.’ 고구려의 제2대 왕인 유리왕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전자가 숲을 매개로 한 신과 인간의 감응이라면, 후자는 자연과 인간의 교감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숲은 민족정신의 원형질을 이루는 신화의 탄생지로서뿐만 아니라 민족 최고의 시와 노래의 탄생지로 민족문화의 유구한 터전이 되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영혼의 헹굼질, 그 빛나는 각성
숲은 진리와 영감의 원천이다. 숲은 물질문명과 욕망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타락한 영혼을 헹굼질해 빛나는 각성에 도달하도록 인도해 준다. 숲은 또 문학을 비롯해 음악·미술·무용 등 거의 모든 예술장르에 깊은 영감을 제공한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미적 정서와 신성을 복원시킨다. 특히 시에서 숲은 말씀의 사원이며, 모든 감각과 이미지들의 성채로 모든 존재하는 것들과 호응한다. 이러한 호응은 현대시를 개척한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가 말한 ‘코레스퐁당스(Correspondance)’와 다를 바 없다.
‘저녁 노을이 지면/ 신들의 상점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성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사원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성’
30대에 요절한 기형도 시인의 ‘숲으로 된 성벽’이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농부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답고 신비로운 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이 평화로운 성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농부들과 같이 먼저 그 영혼을 구름이나 공기처럼 깨끗이 정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숲 앞에서 경건해져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설령 그러지 못했다할지라도 고은의 시에서처럼 숲에 들면 경건함이 절로 배어들기도 한다.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를 보자.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 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중략)// 얼마만이냐 이런 곳이야말로 우리에게 십여년 만에 강렬한 곳이다/ 강렬한 이 경건성! 이것은 나 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을 내 벅찬 가슴은 벌써 알고 있다/ 사람들도 자기가 모든 낱낱 중의 하나임을 깨달을 때가 온다’
3.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숲은 언제나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고요하다. 또 숲은 온갖 짐승과 곤충이 짝짓고 먹이를 찾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평화롭다. 숲이 가지는 이같은 역설, 이같은 품성 때문에 시인과 화가, 음악가들이 그토록 숲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새소리, 시냇물 소리, 바람소리... 베토벤에게 오는 이 모든 소리는 더 이상 그의 귀에 살지 않고 이젠 아주 가는 떨림만 남아 그의 몸 곳곳으로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귀기울일 때마다 실핏줄과 심장과 살가죽과 뼈마디들은 모두 청각이 되어 일제히 떨며 열렸다. 그 떨림 속에서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정원이,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들판이 자라고 있었다’
김기택의 시 ‘전원교향곡’의 한 부분이다. 베토벤이 청각을 잃고 빈 근교의 하일리겐슈타트라는 울창한 숲을 산책하면서 전원교향곡의 악상을 가다듬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베토벤은 이 곡을 완성하고 “전능하신 하느님, 저는 숲속에서 행복합니다. 이 얼마나 장엄한 곳입니까? 숲속의 정적이여, 당신을 우러러 경배하기 위한 이 고요함이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숲이 다시 시인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있음을 볼 수 있다.
4. 안기면서 품는 존재의 희열
숲이 인간에게 베푸는 축복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숲에 안기는 기쁨일 것이다. 숲 속에서 우리는 그대로 감싸안긴 존재가 된다. 이 품어짐 속에서 모성을 느끼고 그 모성으로 세상을 다시 뜨겁게 품는다. 안김으로써 품는 거의 동시적인 체험으로 우리들 각자는 온전한 전체로서 존재하는 희열을 맛보게도 된다. 이 희열은 나 자신을 향한 귀향이고, 순수로 회귀하는 침잠이고, 신과 대면하는 전율이 아닐 수 없다.
정현종의 시 ‘초록기쁨-봄 숲에서’는 이같은 경지를 얻은 뒤에 나온 탄성으로 다가온다.
‘해는 출렁거리는 빛으로/ 내려오며/ 제 빛에 겨워 흘러 넘친다/ 모든 초록, 모든 꽃들의/ 왕관이 되어/ 자기의 왕관인 초록과 꽃들에게/ 웃는다, 비유의 아버지답게/ 초록의 샘답게/ 하늘의 푸른 넓이를 다해 웃는다/ 하늘 전체가 그냥/ 기쁨이며 신전이다’
숲 사이로 황금 빛살이 출렁이며 쏟아져 오는 광경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축복이다. 어스레한 엷은 어둠의 저 끝, 피안과 접한 숲의 가장자리에서 무슨 향내가 안개처럼 피어오를 것만 같다. 〈김우태/계간 ‘시와생명’주간〉 [경향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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