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목록으로
  기독교와 숲

[숲이 희망이다 9]기독교와 숲




기독교는 성경이 말하는 내용을 믿고 따르는 종교이다. 그런데 이 성경에는 숲과 관련된 사실들과 사건들이 매우 많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숲은 큰 몫을 차지했다. 천지를 창조하던 주일의 셋째 날에 하나님은 각종 나무들과 풀들을 만드셨고, 그것들로써 수풀과 산들을 채우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설치하셔서 사람을 거기에 두어 살게 하셨으며, 그 동산에는 온갖 종류의 수목들이 자라게 하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인간이 에덴동산이라는 하나의 숲을 무대로 생활하게 하셨다. 이때 이후로 인간은 숲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게 되었고, 실로 많은 숲들이 성경에 등장하게 되었다.


성경 속의 산이라고 해서 모두 숲을 가진 것은 아니다. 시내산처럼 주로 바위로 된 산도 있고, 에발산처럼 나무가 없는 민둥산도 있지만, 대부분의 산들에는 숲이 우거져 있고 초목들이 자라고 있다. 헤르몬산에는 백향목 숲이 무성하고, 갈멜산에는 관목 숲들이 우거져 있으며, 길보아산에는 상수리나무가 가득하다. 그리심산에는 감람나무 숲과 기타 다양한 숲들이 이어져 있으며, 다볼산에는 관목으로 이뤄진 잡목 숲이 여기저기 보이고, 감람산은 이름 그대로 아름드리 감람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산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산은 아무래도 시내산과 시온산일 것이다. 전자는 시내반도에 있고, 후자는 예루살렘에 있다. 전자는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 즉 십계명을 받은 산이고, 후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곳에 인접한 산이다. 다시 말해서, 시내산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선포된 곳이고, 시온산은 신약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선언된 곳이다. 이러한 산들에서 표현된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인간은 태초에 상실한 에덴동산 즉 낙원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동산의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하늘의 숲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성경에는 128종의 식물들이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말이 성경 시대의 팔레스타인에 서식한 식물의 종류가 128종밖에 안 되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초목들이 있었겠지만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가 짊어지고 골고다(갈보리)로 가셔서 그 위에 못박혀 돌아가신 십자(十字) 형태의 나무이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명기 21:23)는 말씀에서 보듯이, 십자가는 저주와 형벌과 치욕의 나무이다. 그러나 그가 나무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사도행전 5:30; 10:39; 13:29; 갈라디아서 3:13) 우리의 죄를 감당하셨고(베드로전서 2:24), 그리하여 우리가 스스로 담당해야 할 저주와 형벌과 죽음을 면하게 해 주셨다.


환언하면, 태초에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야기된 저주와 죽음이 십자가(十字架)라는 나무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해소되고 해결된 것이다. 말하자면 십자가는 인간의 구원(救援)과 대속(代贖)의 나무가 되었으며, 영광과 희망의 기호가 되었다.


이 나무 곧 십자가가 가르치는 도(道)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고 치욕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구원을 얻은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다(고린도전서 1:19, 24). 이와 같은 의미를 깊이 깨달은 사도 바울은 “내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갈라디아서 6:14)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스도를 못박아 죽이기 위해 사용된 십자가가 무슨 나무로 만들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이런 저런 추측들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 재료가 어떤 나무였는지 간에 십자가는 기독교 교리의 중심에 서 있고,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십자가가 세워진 언덕인 골고다 또는 갈보리가 위치한 예루살렘 도성과 그 도성을 감싸는 숲인 시온산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영원한 축복과 확실한 생명을 상징하는 산이 되었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은 “시온산 향해 가는 성도들아, 앞길의 장애를 두려워 말아라”,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니 시온의 영광이 비쳐오네”, “시온성과 같은 교회, 그의 영광 한없다” 등과 같은 찬송을 소리 높여 부른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설치할 때, 그 숲 속에 특별히 심어둔 두 종류의 나무가 있었다. 그것들은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였다(창세기 2:9). 이 둘은 인간의 생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죽게 된 인간은 생명나무로부터 격리되고 생명과 평화의 동산인 에덴의 숲으로부터 추방되었다(창세기 3:22-24).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이 다시 생명나무에 가까이 가서 생명의 실과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 위에 달려서 돌아가신 나무 형틀인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다.


성경이 제시하는 인간의 역사에는 세 개의 숲과 그 숲 속에 우뚝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가 있다. 그 세 개의 숲은 에덴동산과 시온산과 새 예루살렘의 새 시온산이다. 그리고 그 숲들 가운데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인류 역사의 시발점에서 인간을 타락시켜 죽게 한 선악과나무이고, 둘째는 인류 역사의 중심점에 서서 인간이 당한 죽음의 저주를 제거하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나무이며, 셋째는 인류 역사의 종착점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을 믿는 이들에게 주어질 생명나무(요한계시록 22:2, 14)이다. 결국 기독교는 세 개의 숲과 세 그루의 나무와 관련된 종교라 할 수 있다. 〈남대극/ 삼육대학교 총장〉 [경향신문 게재]

겨레의 나무, 솔

불교와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