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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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숲이희망이다]숲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숲이희망이다]경향신문과 북부지방산림관리청은 ‘녹색문화운동’ 실천의 일환으로 ‘우리 나무 바로 알기’ 캠페인을 펼칩니다.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우리 나라의 자생 수종의 이름과 특성, 숲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생태맹(生態盲)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진행됩니다. (사)대동풍수지리학회는 <경향신문>에 절찬리 연재 중인 "숲이 희망이다"가 신문이란 속성 때문에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안타까워 본 사이트를 통해 다시 종합 분류해 대동학인뿐만 아니라 일반 네트존에게도 그 아름다운 글을 재차 전달합니다. 본 내용은 절대 상업적이지 않기 때문에 <경향신문>도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또한 주옥같은 글을 연재해주시는 필진들께 고마움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문명은 숲에서 탄생했지만 숲의 학대는 그 문명의 종말을 가져왔다. 그래서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고 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숲에서 태어났다. 인도 인더스, 갠지스강의 유역이나 중국 황하 유역에서 발현된 초기 문명도 숲에서 피어났다. 울창한 산림을 이용하여 문명의 꽃을 피워올렸지만 이들 지역은 대신 숲을 파괴하면서 결국 종말을 맞았다. 숲이 사라지자 생태계가 파괴되고 기후가 변했다. 이어 환경재앙이 내려지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숲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왜 싸우는가? 이것은 물음인 동시에 대답이다. 숲이 사라진 곳에는 미움과 증오가 자라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떤가. 지금 우리는 문명의 힘을 너무 믿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온갖 생명붙이의 삶터 위에 문명이란 거대한 탑을 쌓아올렸다. 그럴수록 숲은 줄어들었다. 우리 곁에 있었던 숱한 종(種)이 스러져 갔다. 지난 세기 지구는 인간에 의해 인간만을 위해 돌았다. 약한 것들에게는 거대한 무덤이었다.


해마다 천기(天氣)에 대한 최고 최다 최저의 기록들이 양산되고 있다. 자연은 갈수록 사나워지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학대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능이 발달할수록 육체적으로는 더욱 나약해지고 있다. 이제 인간들은 점점 거칠어지는 자연 속에서 보조기구가 없이는 살아가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더 편한 것들을 만들어냈다. 냉, 난방장치는 자연을 위협하고, 놀란 자연은 다시 인간을 할퀸다. 자연과의 불화는 환경재앙을 불러왔다. 온실효과에 의한 기온 상승, 열대 우림과 숲을 파헤쳐 일어나는 생태계 파괴, 방사성 폐기물이나 생활쓰레기에 오염된 물과 흙, 화학물질의 대량 살포로 일어나는 오존층 파괴, 환경호르몬의 남용으로 벌어지는 성의 교란 등은 모두 인간만이 잘 살겠다는 이기심에서 비롯됐다.


어머니 숲, 신령한 힘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나무일 것이다. 세상을 푸르게 하고 순하디 순하다. 세상에서 인간에게 눈흘기는 나무는 보지 못했다. 저 홀로 크고 베면 넘어진다. 오만가지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에는 모든 것이 있다. 흙, 돌, 물, 새, 벌레, 곤충, 짐승이 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구름이 흐르고 바람이 분다. 해, 달, 별을 품고 하늘이 내려온다.


울창한 숲에 들어서면 신성(神性)이 느껴진다. 아름드리 나무둥치는 하늘을 떠받치고 잎들의 퍼덕임은 요정의 노래 같다. 드문드문 초록 지붕을 뚫고 쏟아지는 햇살무더기는 신의 계시 같다. 보이지는 않지만 뿌리는 저 깊은 땅 속으로 뻗어가 물을 퍼올리고 있을 것이다. 진화된 숲에는 인간이 범접하지 못할 위엄이 있고 나름대로 질서가 있다. 지하, 지상, 천상의 세 세계를 가로지르는 나무는 저 깊숙한 과거의 심연으로부터 현재를 거쳐 영원으로 뻗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했던 나무들, 거대한 유기체요, 에너지의 압축기인 숲. 온갖 잎과 열매로 생명붙이의 배를 채워줬다. 정녕 생명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숲은 어머니이고 경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숲은 야금야금 잘려나갔고, 인간의 톱질은 바로 인간의 심성을 잘라내었다.

큰 나무, 이오덕의 꾸짖음아동문학가 이오덕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펴낸 책 ‘나무처럼 산처럼’에서 우리네 미련함을 통렬하게 꾸짖었다. “까치가 곡식을 먹게 된 까닭이 있다. 농약을 마구 뿌려서 벌레들이 다 죽어 없어졌으니, 이제 까치가 먹을 거라고는 논밭의 곡식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농약을 뿌려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싹쓸이로 죽이는 데 아주 재미를 들였다.… 사람이 무슨 학문이고 철학이고 예술이고 문학이고 떠벌리면서 거짓과 속임수로 살지 말고, 저 풀숲에서 우는 벌레만큼 고운 울림으로 자연 속에 어울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스스로 무덤을 파고 죽음을 재촉하는 사람이 무섭고 소름끼친다. 이제 앞으로 내가 할 말은 다만 죽어가는 자연을 증언하는 것이다. 내가 부를 노래는 아직도 살아남은 내 모든 형제들에 대한 슬픈 찬미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오덕은 죽어가는 자연을 증언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승에서의 꿈은 그 옛날 하늘을 다시 보는 것이었다. 하늘과 땅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고운 저녁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감하고 싶어했다. 그는 저승에서도 아마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이 땅에 묻혔으니까.


그래도 숲이 희망이다우리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포기하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어디엔가 안길수 없고 어디엔가 내리지도 못하고 늘 떠다니는 도시인들. 이웃과 별빛, 달빛도 잃어버린 사람들. 그러나 현대인의 병은 숲속이 아니면 치유할 수 없다. 숲에서는 근원을 살피게 된다. 영혼을 씻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성인과 현인들이 숲에 찾아들었고 지혜와 진리가 숲속에서 나왔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가식이 없고 억지스러움이 없다. 숲에는 미움이 없다. 분노가 없다. 모든 것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그속에서 음악이, 문학이, 철학이, 종교가, 그리고 사랑이 우러난다.

경향신문은 온갖 사회병리에 멍들고 속도전에 지친 사람들과 함께 숲으로 들어가려 한다. 안기면 편하고 새 의욕을 채워주는 어마니 숲, 그 숲이 해답이라 믿는다. 각양각색의 나무가 모여서 숲을 이루듯 오만가지 사람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사회, 경향은 그런 사회를 꿈꾸고 있다. 숲은 못남이나 잘남을 지우고, 욕심과 넘침을 씻어내는 헹굼의 성소(聖所)임을 믿는다. 〈김택근 편집부국장 wtkim@kyunghyang.com〉 [경향신문 게재]

숲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