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숲 이야기 39] 원주 문막 진밭마을숲
쉼터이자 마을 지키는 당숲
초여름,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온 날, 진밭마을 마을숲으로 떠났다.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취병리에 자리잡은 진밭마을은 일당산 계곡을 따라 형성된 산골마을이다. 과거 물기가 많아 밭이 질다 하여 붙여진 이전동(泥田洞)에서 지금의 마을 이름이 유래됐다. 밭농사를 짓기 힘든 땅이라 그런지 마을주민들은 지금 대부분 소와 사슴을 키운다.
이 마을숲을 처음 보았을 때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의 양쪽에 자리 잡은 가로수인지 알았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가며 숲을 보니 몇 가지 특이한 점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물푸레나무, 벚나무, 신갈나무 등 활엽수가 많았다. 드물게 허리 굵은 소나무가 보이기도 했지만 이 숲의 주인은 분명 활엽수였다.
숲의 낮은 곳에는 산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물봉선, 현호색, 눈괴불주머니, 애기똥풀, 풀싸리 등이 자라고 있었다. 사람 손으로 심겨지고 가꾸어진 가로수라면 이런 다양한 나무와 풀이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가로수 역할까지 맡고 있지만 본래 진밭마을 마을숲은 마을의 들머리를 지키는 수구막이였다.
계곡을 끼고 마을이 시작되는 입구에 자리 잡은 이 숲은 마을의 전체 모습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가려주고 기운이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갖고 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숲의 초입에 세워진 장승들이었다. 처음에는 2000년 7월 마을공동체의 자발적인 축제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던 ‘숲과 마을 미술축전’의 흔적이라 여겼다. 그러나 장승이 이 숲 앞에 왜 세워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늘 그렇듯이 이러한 의문은 그 마을의 어른을 찾아가면 풀린다. 선조(先祖) 때부터 삼백년 동안 진밭마을에서 살고 있는 김종구님은 매년 추수를 마치면 마을 끝머리 산에서 자라는 아름드리 소나무 두 그루와 이 마을숲 입구에서 제사를 지내는 마을의 전통이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렇다면 이 마을숲은 진밭마을을 지켜주는 당숲이기도 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이 마을숲은 주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한여름 무더위가 계속되면 숲은 주민들의 피서지이며 만남의 장소가 된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끈끈한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도시 사람들 입장에선 이런 마을숲이 정말 부러울 것이다.
주위 환경과 마을 주민들의 구성원이 바뀌면서 마을숲에 대한 심성도 변하였다. 변화가 너무 빠르다 보면 마을숲 자체가 사라지게 되거나 마을주민들조차 관심을 갖지 않는 버려진 마을숲이 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진밭마을 마을숲은 외부의 빠른 변화 속에서도 마을숲의 역할과 주민들의 심성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소중한 자연유산이라 할 수 있다.
‘숲과 마을 미술축전’을 주도했던 김봉준님은 축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당산이 여주, 양동, 문막을 가르는 곳. 강원도 첫 산골을 진밭마을이라 부르니, 마을 한 가운데 수풍이 있고 골마다 이름 있네. 산에서 정기 받고 숲에서 인심 나니, 오래된 미래의 숲과 마을로 자손대대 이어가세.” 축문의 기원처럼 오래된 미래의 마을숲과 진밭마을이 앞으로도 풍요롭게 이어나가기를 바란다.
[한국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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