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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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마을 홍천뢰의 소나무 숲



















[마을숲 이야기 35] 한밤마을 홍천뢰의 소나무 숲


의병 키우던 숲이 피서객에 몸살



고려 태조 왕건의 여덟 장수가 신라 말 견훤과 싸우다 전사한 것을 추모해 이름붙인 팔공산 자락에는 대구, 군위, 영천이 나란히 붙어 있다. 850㎙의 팔공산 관봉에는 누구에게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갓바위가 있어 일년 내내 어머니들의 간절함이 들린다.

뿐만 아니라 팔공산에는 동쪽의 은해사, 서쪽의 파계사, 남쪽의 동화사와 더불어 북쪽에 국보 109호인 제2석굴암이 있다. 경주 석굴암보다 먼저 만들어졌으나 나중에 눈에 띄어 이렇게 불린다. 이 삼존석굴이 있는 계곡 아래의 넓은 들에 자리한 마을이 전통마을로 자주 소개되는 대율리(大栗里)다.

옛날부터 밤나무가 많아서 한밤마을이라고도 불리는데, 넒은 논을 뜻하는 한배미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원래 이 마을은 삼존석굴 근처에 있었으나 점차 들판으로 내려오게 됐다. 이 들판은 논에 물을 대면 고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없어진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은 고래들이라고 부른다.

아직도 특이한 돌담 등 옛 마을 모습을 가진 이 곳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으로 활약한 홍천뢰의 소나무 숲이 있다. 영천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나라의 포상을 마다하고 낙향했던 그는 군위와 인근의 영천, 청송 등에서 모인 의병들을 이 숲에서 훈련시켰다고 한다.

소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마을로 들어서려면 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 39그루, 오른쪽에 103그루가 마주 보며 서있는 이 숲을 통해야 한다. 가슴높이의 나무 지름이 70㎝나 되는 200여년생 소나무들이 어린 소나무들 사이에 섞여 성글게 됐으나 큰 그루터기와 자국들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에는 꽤 우거진 숲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마을 입구를 소나무로 가려 그 안에서 훈련하기 위해 심은 이 숲은, 성글어진 소나무 틈새로 뽕나무, 고엽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찔레 등의 아기나무들이 이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오른쪽의 소나무 숲 속에는 음력 1월 5일 동신제를 지내는 진동단(鎭洞壇)이 있으며 돌로 만들어진 돛대모양의 솟대 위에는 오리가 앉아 있다.“마을을 둘러싼 주변 모양이 바다에 떠있는 배 모양이어서 오리처럼 물에 잠기지 말라는 뜻”이라는 게 숲을 관리하는 의병대장의 후손인 홍갑근 이장의 설명. 전통적으로 오리형상은 다른 마을에서도 종종 솟대 위에 앉아 있으며, 이는 많은 후손을 기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배 바닥에 구멍을 내어서는 안된다며 샘(井)을 파지 못하게 한 까닭에 300여호가 살았던 이 마을에 우물이 4~5개 정도 밖에 없었다고 한다. 보호수로 지정된 150년 된 느티나무 5그루가 정자목으로서 마을의 시작을 표시하는 곳에 있는 초등학교의 교문 앞에는 의병대장을 기리는 추모비가 있어 이 숲이 구국의 도장이었음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매년 여름이면 도시의 더위를 피해 한티재를 넘어온 사람들로 북적이게 되어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온 숲이 시들어가고 있다. 숲의 훼손을 막으려고 애쓰는 마을주민들과 군위군으로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필자의 방문이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약해진 소나무와 부러진 가지들이 잘 손질되고 있는 한밤마을의 소나무 숲을 지키려는 그들의 자긍심에 감사하고 싶다. 솟대 앞에서 소나무 숲을 통해 올려다 본 팔공산은 밝은 해를 등에 업고 한밤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국일보 게재]

충북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풍덕마을 방풍림

춘천 지내리 소나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