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타워에 올라 서울의 북동쪽을 바라보면 붉게 단풍 든 남산 자락 끝으로 더욱 붉은 네모진 건물이 유독 눈에 띈다. 바로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이 '한국의 얼굴'이라며 자랑스러워했던 호텔신라다.

23층의 건물에는 700여개의 객실과 1000명을 수용하는 회의장이 있고, 호텔 내 식당에는 각국의 최고급 요리가 푸짐하다. 보통은 '○○호텔' 식으로 호텔이란 글자를 상호 뒤쪽에 붙여 부르지만, 이 호텔만큼은 상호 앞쪽에 붙여 꼭 '호텔신라'로 부른다. 왜냐하면 호텔이 들어선 터가 역사적으로 특수할 뿐만 아니라 한국 제일의 호텔이란 자긍심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호텔이 위치한 터는 남산에서 흥인지문 북쪽의 낙산으로 이어지는 서울 성곽의 남동 능선인데, 이곳은 조선시대에 한양 외곽을 수비하던 어영청에 속한 남소영(南小營)이 있던 곳이다.

이곳의 형국을 풍수로 판단하면 앞쪽에는 군대가 주둔한 형세와 같은 둔군안(屯軍案)이 있고, 왼쪽에는 깃발이 나부끼는 형태의 기고사(旗鼓 砂)가 북한산에 즐비해 소위 '장군이 의자에 앉아 지휘하는 장군대좌형 (將軍大坐形)'의 형국이다. 따라서 이 지형의 소응은 천하를 호령할 위대한 인물을 배출할 땅이다.

하지만 구한말에 들어 어영청이 폐지되자 남소영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터에는 1967년에 영빈관이 들어섰다. 영빈관은 한국을 방문하는 국빈급 인사들이 묵던 전용 숙소였고 현재는 영빈관이란 현판만 붙은 채 호텔에 속한 회의장으로 사용된다. 즉 3만평에 달하는 호텔 부지는 장군을 배출한 땅에서 외교를 담당하는 장소로 쓸모가 바뀌더니, 현재는 사람이 모여 자고 먹고 만나는 장소가 된 것이다.

풍수에서는 땅의 성격에 맞춰 땅을 이용할 때만 지기가 발동해 복을 준다고 한다. 만약 아직 쓸모에 맞게 지기가 변하지 않았다면 지기가 순응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안동에 사는 류종혜가 하회 마을에 양진당을 짓고 살고자 했을 때이다. 기둥을 세우면 바로 넘어지기를 수차례 반복 했다. 하루는 산신령이 꿈속에 나타나 "네 터가 아니다. 네 터로 삼고 자 하면 3년 동안에 활만인(活萬人)하여라"라고 말했다. 잠에서 깬 그는 즉시 큰 고개에 오두막을 짓고서 3년에 걸쳐 만명의 행인에게 밥을 대접했다. 그 후 기둥이 넘어지지 않았다. 양진당이 완공되자 풍산 류씨들이 몰려와 하회마을에 정착했다고 한다.

공사가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영빈관이 준공된 일이나 착공 후 6년이 지나 개관한 호텔신라가 오랫동안 경영상으로 어려웠던 일들은 모두 지기와 사람의 사용 간에 서로 궁합이 맞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즉 군대가 주둔할 정도로 기가 거셌던 땅에 사람이 유숙(留宿)하기 위한 영빈관과 호텔이 들어서자, 땅이 몸살을 앓았던 것으로 해석된다.

1970년대에 들어 정부는 관광사업을 육성코자 대기업들에 호텔을 짓도록 지시했는데, 삼성 역시 '영빈관을 인수해 국빈이 투숙할 수 있고, 1000명 규모의 국제회의를 개최할 수 있는 호텔을 건립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삼성으로서는 마음에 내키지 않는 호텔 사업이었다. 하지만 이왕 영빈관을 인수해 호텔을 건설할 바에는 모든 면에서 일류 수준이 돼야 한다고 이 회장은 생각했다. 그래서 도쿄 도심에 있는 오쿠라(大倉 )호텔을 모델 삼아 경영 노하우를 배우고, 외관과 내부 치장의 방식까지 힌트를 얻어 설계에 반영했다. 오쿠라호텔은 이 회장이 일본에 갈 때마다 묵었던 호텔이고, 시설과 서비스가 초일류일 뿐만 아니라 일본의 정서와 서구의 기능성이 조화를 이룬 현대식 건물로 유명하다.

1973년 '임페리얼호텔'이란 이름으로 기공식을 가진 호텔신라는 그 후에 차관 도입과 오일 쇼크, 그리고 건설 기술자의 확보에서 어려움을 겪더니, 6년이 지난 1979년 3월 '호텔신라"로 개명하고서 개관했다.

'신라'라는 이름은 우리 고유의 문화를 찬란히 꽃피웠던 신라시대의 우아한 품위와 향기를 오늘에 재현시켜 보자는 의도에서 지은 이름이다. 그 결과 외관과 내부 설계에는 신라의 전통미를 최대한 살렸고, 기능적인 면은 오쿠라호텔의 것을 참작해 박춘명 씨와 일본의 TAISEI건설이 함께 설계했다.

호텔신라는 간룡(幹龍)에서 장충체육관 쪽으로 짧게 북서진한 용맥에 자리잡아 지기는 왕성치 못하지만, 좌측의 장충단공원에서 흘러든 수(水 )는 혈장을 둥글게 감싼 후 순행하여 양기는 길격이다. 하지만 남서방의 남산 제2호터널에서 호텔로 불어오는 살풍만큼은 혈장의 기맥을 손상시키는 흉수(凶水)이다. 따라서 나무 숲을 조성해 바람을 막거나 또는 거북상을 배치해 살기를 차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거북은 주변의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신령한 힘을 가진 동물로서 흉한 지형물을 향해 거북을 배치하면 살기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또 주산인 남산이 목성체인데, 건물 지붕은 평평한 토성체이다. 목극토(木剋土)으로서 흉하며, 땅의 기운은 화기(火氣)를 품고 있는데 현관 앞쪽에 수성(水星)인 못을 설치하였다. 지기의 발동을 방해하는 조경물이니 못을 없앤 후 조산(造山)을 설치하거나 잔디밭을 넓게 조성하면 길한 기운이 몰려들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호텔신라는 또 다른 변신을 꿈꾸는데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비즈니스호텔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객실과 면세점 수입의 90% 이상은 외국인으로부터 나오고, 호텔은 어차피 큰 이익이 나지 않는 일종의 문화사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외국인의 관심을 모으려면 기업활동에 풍수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독일 함부르크의 파크-하얏트호텔은 룸 내부를 풍수설에 근거해 개조 한 뒤부터 평균 63%였던 객실 사용률이 70%로 껑충 뛰어올랐다고 전한다. 따라서 호텔신라 역시 각 방의 침대를 풍수적으로 길한 방위에 배치하거나 벽지 침구 소품 등을 오행에 맞춰 비치함으로써 호텔의 분위기도 바꾸고 경영 성과도 호전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