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명실상부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국가는 환율, 기업은 주가, 개인은 연봉이 우열의 기준이다. 삼성전자는 한국 증시에서 시가 총액의 21%를 차지하는 1등 기업이고, 브랜드 가치도 해마다 높아져 올해 83억 달러로 평가돼 세계 34위에 올랐다.

   또 반도체 D램은 지난해까지 9년째 시장점유율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주력제품으로 부각된 휴대폰 사업 역시 노키아, 모토롤라에 이어 현재 세계 3위를 달리고 있다. 1999년 이후 3년간 벌어들인 순이익이 모두 12조원에 달한다고 하니, 삼성전자에 관한 한 우리 국민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성싶다.

   삼성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오일 쇼크의 충격에도 타격을 입지 않는 일본 경제를 주목했고, 그 원인을 첨단기술의 발달, 그 중에서도 반도체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1983년 반도체산업 진출의 출사표를 던졌고, 사업 진출 10개월 만에 64KD램 개발을 기적처럼 성공시켰다.

   이런 성공의 배경에는 96년 256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국보급 두뇌 집단의 개척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간과해서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삼성전자가 오늘과 같이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돼 주었던 삼성 반도체, 그 최첨단 기술이 꽃피도록 공장 부지를 아낌없이 내준 '기흥'이란 땅의 성격과 가치를 알아보고 기억하는 일이다.

   반도체사업은 다른 사업에 비해 한층 높은 정밀성과 청결도를 필요로 하며, 공업용수가 풍부하고, 공기가 깨끗하며, 소음이나 진동이 없고, 자재와 완제품의 물류가 편리한 곳에 입지해야 한다. 반도체 생산의 최대 난제는 수율인데 이것은 먼지 한 톨 없는 완전 청정과 무진동을 의미하며, 그런 의미에서 반도체 사업장을 기흥의 매미산 남서쪽 기슭에 세운 것은 천기(天氣)와 지령(地靈)이 이병철 회장에게 엄청난 행운을 준 것이라 생각한다.

   당초 이 부지는 정부에서 특정 용지로 사용코자 예정해 놓은 것인데,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깨달은 정부가 삼성이 사용하도록 특별히 양해해 주었다. 삼성은 우선 10만평의 공장 부지를 확보한 뒤 신정, 구정의 휴가도 반납하고서 24시간의 돌관작업(突貫作業)을 진행해 공기를 3분의 1로 단축했고, 일본이 6년을 걸려 개발한 64KD램을 6개월 만에 개발하는 저력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기흥의 어떤 면모가 반도체와 찰떡궁합으로 맞아 반도체 생산의 최적지로 결정됐을까. 이유는 기흥이란 땅이 반도체 생산을 위한 지하수, 전력 공급, 토양 성분 등에서 다른 지역보다 우수하지만 무엇보다도 메모리 반도체와 땅의 성격이 딱 들어맞았고, 그 결과, 지기(地氣)가 힘차게 발동해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기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흥읍은 안성의 칠현산에서 분기해 김포의 문수산성까지 뻗은 한남정맥의 남쪽 사면에 위치하는데, 정맥의 북쪽 물은 용인 시내에 모여 경안천을 따라 북진한 다음 남한강으로 흘러들고, 남쪽 사면은 오산천에 모여 남서진한 다음 아산호를 거쳐 서해로 흘러든다. 그리고 삼성 반도체 기흥사업장이 입지한 기흥읍 농서리는 수지의 소실봉에서 남진한 기맥이 청명산(淸明山)을 거쳐 매미산으로 솟은 다음 신갈 저수지를 만나 전진을 멈추고서 지기를 응집한 곳이다.

   여기서 '그릇이 흥한다'라는 기흥(器興)이란 땅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 전국의 지명 중 '그릇 기(器)'자를 쓴 지역은 이곳이 유일한데, 그릇은 물건을 담아 놓는 기구이니 정보를 담는(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기흥에서 크게 번창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온수리(溫水里)에는 온천이 솟고, 비상리(飛上里)에는 공항이 들어서 듯이 옛부터 불러온 지명이 오늘의 현실과 부합되는 경우가 많아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기흥 사업장의 주산인 매미산 역시 산세가 매미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나, 예로부터 화려한 변신을 꿈꾸던 지기 충만한 땅이었다. 매미는 굼벵이로 땅 속에서 4~6년을 지낸 뒤, 번데기가 됐다가 껍질을 벗은 후 매미로 태어나며, 천하가 진동토록 우렁차게 울어 댄다. 이런 변태(變態) 과정은 죽지 않는 불사(不死)를 의미한다. 따라서 매미산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지기를 크게 품은 채 천 년을 잠자던 산이었고, 현대에 들어 반도체란 그릇이 생산되자 지기가 크게 발동해 나라에 부를 가져온 것이다.

   이제 2002년에 들어선 삼성전자는 소니를 능가하는 세계적 전자업체로의 도약을 꿈꾸면서 5~10년 뒤에 먹고 살 씨앗사업을 발굴하고 있다. 그런 일환으로 반도체사업 역시 메모리 의존도를 낮추고, 시스템 비메모리 반도체(LSI)와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등 3개 분야가 서로 균형된 매출과 이익 구조를 갖추도록 사업 구조의 개선을 모색 중이다.

   그렇지만 풍수적으로 볼 때 시스템 LSI를 기흥 사업장에서 생산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것은 시스템 LSI가 이익률에서 20~60%로 매우 높고, 기존 D램 생산라인도 이용하는 장점이 있지만 기흥이란 '그릇과도 같은 땅'의 성격이 정보를 담지 않는 LSI와는 서로 상생의 조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스템 LSI분야를 D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업으로 육성코자 한다면 부족한 시스템 기술의 확보와 함께 LSI의 성격과 지기에 꼭 맞는 땅을 찾아야 한다.

   성경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고 했다. 새 부대는 포도주가 발효하면서 내뿜는 가스를 견뎌 내지만, 주름 잡힌 낡은 부대는 터져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도체사업의 안정성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LSI제품을 성공시킬 그 땅에 대한 관찰 또한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