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 땅에는(둔남면 오수리)에는 주인을 위해 죽은 개의 충혼을 기린 의견비(義犬碑)가 있고, 그 곁에는 ‘오수(獒樹)’라 불리는 느티나무가 서 있다. 옛날에 김개인(金蓋仁)이란 사람이 있어, 그는 언제나 개를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이다.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도중에 잔디 밭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때 부근에서 난 들불이 김개인에게로 점점 타들어왔다.

  위험을 느낀 개는 주인을 깨우려고 짖기도 하고, 옷을 물어 당기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골아 떨어진 주인은 요지부동이었다. 다급해진 개는 냇가로 가 몸에 물을 흠뻑 적시고는 주인 근처의 불길 위를 뒹굴었다. 주인을 향해 번져오는 불길을 막기 위함이다. 수 백번을 반복하던 개는 기진맥진해 쓰러졌고, 결국은 불타 죽었다. 얼마 뒤, 잠에서 깨워난 김개인은 깜짝 놀랐다.

  사방은 온통 잿더미로 변해 있고, 사랑하던 개는 자기 곁에서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을 알아 챈 그는 크게 슬퍼하면서 개 무덤을 만들어 주고, 짚고 다디던 지팡이를 꽂아 두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지팡이가 살아서 큰 느티나무로 자라났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나무를 오수(개나무)라 부르고, 마을의 이름까지 ‘오수 마을’로 삼았다.

  전국적으로 분포한 느티나무는 성장이 빠르면서 비옥한 땅에서 잘 자라고, 햇볕을 좋아하는 나무이다. 가지가 사방으로 둥글게 퍼져 넓고도 짚은 그늘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우니 마을 어귀의 정자목으로 자리잡았다. 느티나무는 오래사는 나무이다. 큰 느티나무는 고향을 잊고 사는 도시인에게 할머니처럼 넉넉하고 정다운 존재며, 마을 사람들에게는 담소와 마을 일을 결정하는 모임의 장소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느티나무가 많아 지명조차 ‘느티나무골’로 불리는 곳이 있다. 충북 괴산(槐山)으로, 신라 때는 개잠성이라 불리었다. 백제군이 처들어오자, 신라 장수였던 찬덕(讚德)은 풍전등화같은 위기에서 끝까지 싸울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식량과 물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목숨을 보전하길 원했다. 더 이상 싸을 수 없음을 깨달은 찬덕은 머리를 큰 느티나무에 들이박아 자결하고, 그 충절을 높이 산 신라 조정은 개잠성을 괴산으로 고쳐부르게 하였다. 괴산은 지금도 군 내 곳곳에 느티나무 거목이 즐비하고, 필자는 괴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대부분을 그곳에서 자랐다.

  느티나무는 또 재질이 우수하고 문양이 아름다워 가구용 목재로써 인기가 가장 좋다. 특히 수많은 세월이 그려낸 나이테는 어느 예술품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어찌보면 동양의 산수화를 그대로 옮긴 듯한 그림이고, 어찌보면 기묘한 천연 문양이 기하학적 균형감을 이룬 듯하다. 특히 뿌리로 만든 공예품은 얼마나 빼어난 자태로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가? 그래서 가구를 만드는 장인(소목장)이라면 누구나 괴목 수집에 열을 올린다.

  좋은 작품은 좋은 느티나무를 구하는 것으로 거의 결정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댐 건설로 수몰되는 지구에 서 있는 느티나무는 장인들끼리 구입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한다. 가구용 판재를 켜기 위해 제재소로 가져가면, 주인에게서 문전박대를 받기가 쉽상이다. 거기에는 우리 민족이 겪은 전란과 질곡의 수난사가 나무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강화도에 있는 ‘정족산성(鼎足山城)’은 1866년 조선군 양헌수(梁憲洙) 부대가 프랑스 군대와 접전을 벌여 프랑스 군사 32명을 죽이고 50여 명에게 중상을 입혀, 구한 말 열강의 침략에 맞서 최초로 승리를 거둔 격전장이다. 그런데 그 싸움의 일등공신은 다름아닌 성 안에 서 있던 느티나무였다. 이 나무는 전란이 있을 때면 윙윙하고 울어 자명목(自鳴木)이라 불리는데,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 오던 날도 밤 새워 울었다고 한다.

  그러자 양헌수는 적의 기습을 눈치채고 1천여 명의 조선군을 모아 전투 태세로 돌입했고, 그 중에는 명사수로 소문난 강계 포수도 많았다. 드디어 적의 칩입이 거세지자, 느티나무에 몸을 보호한 강계군은 백발백중의 사격 솜씨를 뽐내 프랑스 군대를 통쾌하게 무찔렀던 것이다. 그렇지만 총받이가 된 느티나무는 자기 몸 속으로 수많은 총알과 포탄 파편이 뚫고 들어와 만신창이가 되어 ‘총알 박힌 나무’가 되었다.

  전국의 느티나무치고 어느 것 하나 그 속에 총알과 파편이 박히지 않을 것이 없다하니, 제재소의 주인이라면 기겁을 할 일이다. 애써 날을 세운 톱날이 순식간에 쇠붙이에 의해 절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티나무는 고운 문양만큼이나 장인의 애를 썩이는 나무고, 온갖 정성으로 은은하고 정갈한 가구로 탄생시키는 장인의 손길만큼은 오늘 날에 와 더욱 귀하게 생각된다.

[사진 : 남원 보절면의 느티나무(제 281호)
조선 세조 때에 우공이란 장수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에 뒷산에 올라가 맨손으로 나무를 뽑아 와 심어 놓고는 ‘누구든 이 나무를 다치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말한 뒤에 떠났다고 한다. 그 후 우공은 나무의 공덕으로 나라에 큰 공을 세워 수군절도사에 올랐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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