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철화어문호(粉靑沙器鐵畵魚文壺, 보물 제787호)

   이 항아리는 높이가 27.7센티미터나 되는 당당한 크기면서, 분청사기에 등장하는 모든 장식의장 즉 인화․ 상감․ 조화․ 박지․ 귀얄․ 철화문 등이 호화롭게 망라된 국내 유일의 예로써 유명하다. 구연부는 비교적 넓고, 견부에 이르기까지 차츰 벌어진 형태는 아래로 내려오면서 서서히 좁아졌고, 동체 하부는 낮고 작은 굽이 받치고 있다. 한 눈에 아담하면서 귀여운 모습이나, 몸체에 비해 굽이 다소 작아 보이는 것이 흠이다. 마치 타이트스커트를 입은 마릴린 몬노가 하이힐을 신고서 흙 길을 걷듯이 약간은 불안정해 보인다. 항아리의 중앙에는 두 마리의 물고기와 연꽃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는데, 특히 물고기는 백토를 감입한 후 박지하고, 지느러미는 철채, 형태 선은 백상감, 비늘은 인화 기법으로 묘사해 표현이 매우 자유스럽고 대범하다. 또 어깨와 밑동 부분은 철채를 사용해 초화문과 연판문대를 돌렸고, 구연부 상면의 초화문과 목 밑의 뇌문대, 그리고 굽의 연판문대는 백상감을 시문하고, 동체에는 투명한 담록색의 분청유를 고르게 시유하여 전체적으론 푸른색이 미끈히 감돈다. 계룡산 가마에서 제작된 철화 분청이 분명하지만, 항아리를 장식한 다양한 수법만큼은 유례가 드문 회심의 역작이다.

     1970년 혹은 1971년의 봄이다. 대전의 역전 지하도에도 어느 샌가 행인을 따라 들어온 봄날의 따스함이 겨울의 찬 기운을 몰아내고 있었다. 당시 대전 역에는 민예품을 비롯해 도자기와 회화를 거래하던 골동상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20대 중반의 황윤성 역시 귀동냥을 할 겸 형님의 골동 가게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게 내부에는 연적을 비롯한 민예품들이 잡다했고, 문밖에는 부잣집에서 썼을 법한 맷돌과 돌확이 서너 개 놓여있었다. “형님, 나도 이 세계에 뛰어든 지 2년이 되었어요. 그런데 통 모르겠어요.” 그러자 졸듯이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키더니, 한심하다는 투로 황윤성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내 뭐라고 했어. 골동은 너같이 젊은 애가 할 짓이 못돼.” “형님, 그래도 나는 골동이 좋아요. 선배들도 좋고요.” “좋긴 뭐가? 그들이 술 사주고 밥 사주는 것은 모두 장사 속이야. 한 점을 걸고 승부를 거니 골동은 전쟁과도 같은 것이야. 잘못 사면 즉시 패가망신이야. 그러니 그만 둬.”

    하지만 골동계에서 2년을 보낸 황윤성에게 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어떻게든 대어를 낚아 하루빨리 멋지게 출세하고픈 마음이 더 급했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니 살아남으려면 물건을 제대로 봐야 하잖아요. 그러니 한 수 가르쳐줘요. 예, 형님.” 의자를 더욱 바짝 당겨 앉으며 애걸조로 말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비장의 묘법을 의미신장하게 털어놓았다. “물고기는 강에서 잡으면 돈이 안돼. 산에서 잡아야 큰 돈이 되지.” 황윤성의 머리가 쿵하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대전은 계룡산 가마에서 제작된 철화 분청의 집산지이다. 물고기가 그려진 도자기는 귀하며 큰 돈이 된다는 선배다운 일갈이다. 산에서 잡는 물고기란 무덤에서 출토되는 물고기가 그려진 분청사기를 가리키니, 황윤성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 것이다. 그 때, 가게 밖에서 안쪽을 기웃거리던 서너 명의 애들이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머리를 빡빡 깎은 모습이 초등학교 4~6학년 쯤 되어 보이는 같은 또래의 애들이었다. “아저씨, 깨어진 사기그릇도 사요? 그 중에서 키가 크고 똑똑해 보이는 애가 손을 둥글게 펴서 항아리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물었다. 당시에 깨진 도자기는 온전한 것의 십 분의 일도 값이 나가지 않았다. 황윤성은 ‘깨졌다는’ 말에 흥미를 잃었으나, 다음 말에 귀가 솔깃해지며 호기심이 바짝 당겼다. “그런대요, 그 깨진 도자기에 물고기가 두 마리나 그려져 있어요.” “ 뭐, 물고기 그림이 있어?” 어떤 직감같은 것이 황윤성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예, 우리가 밭에서 주었어요. 몇 조각이 났지만 서로 붙여보면 이가 잘 맞아요. 다만….” 한 아이가 말을 꺼내다 슬며시 꼬리를 감추었다. 애당초 물건을 가져와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도자기의 형태와 내용도 모르고 또 깨진 물건이라는 말은 들었으나 좀이 쑤셨다, 그래서 만원이란 돈을 급히 마련한 다음 그들이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다.

   그곳은 신탄진역에서 서울 방면으로 한 정거장 떨어진 매포라는 곳이었고, 그들이 주었다는 밭 역시 매포 역에서 가까웠다. 그곳은 또 철화분청이 제작되었던 계룡산과도 거리상으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논에서는 모내기가 한 참이었다.“그런데 이곳을 맞출 사기조각은 어디 있니?” 보자기를 풀고 도자기 파편을 살펴보니, 물고기가 그려있기는 했으나, 전체가 5~6조각으로 큼직하게 깨져있었다. 조각들로 이리저리 짝을 맞춰보는 황윤성의 눈에 실망의 빛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물고기가 깨져 아쉽다는 생각만 했을 뿐 정작 항아리에 베풀어진 다양한 장식의 가치에는 아직 문외한이었다. 더욱 실망스럽기는 구연부 쪽으로 은행잎 만한 크기의 사기조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없어요. 우리가 주울 때부터 없었어요.” 황윤성은 주둥이 쪽으로 한 조각이 휑하니 빈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물건이 보통 것보다 특이해 머리는 복잡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골동계의 초년병에 불과했다. 물건에 대해 자신이 없었고 또 깨진 것이라 얼마나 값이 나갈지 몰랐다. 그래서 산에서 잡은 물고기치고는 값을 헐하게 처 주었다.“물건이 깨졌으니 5천원을 주마.” 서 있던 애들이 한꺼번에 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당시 모심는 일꾼의 일당이 250원이었고, 50원이라면 하루 세 끼를 먹으며 여관에서 묵을 수 있는 돈이었다. 지금의 품삯으로 계산하면 100만원은 거뜬히 넘는 돈이니 아이들에게는 거금이었다. 황윤성은 그 즉시 3명의 인부를 사 아이들과 함께 도자기 파편이 나온 곳을 다시 찾아갔다. 발견된 장소의 주변에는 칡덩굴이 듬성듬성 들어차 있고, 얘들이 칡을 캐다가 그만둔 흔적이 뚜렷했다. 지방 호족의 무덤이 있었던 곳이나, 세월이 흘러 봉분이 없어지자 밭으로 개간해 쓰던 곳이었다. 하루 일당의 배인 500원을 주고 또 막걸리 값으로 10원을 더 얹어 받은 인부들이 삽과 괭이로 땅을 샅샅이 긁었다. 하지만 찾고자 했던 파편뿐만 아니라 다른 도자기 파편도 더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황윤성은 도자가 파편을 물에 씻은 후 짝을 다시 맞춰보았다. 주둥이 쪽의 한 부분만 비고, 나머지는 감쪽같이 들어맞았다. 그래서 한양대학교 앞에 있던 박고당(博古堂)을 찾아갔다. 당시 박고당의 주인은 황기동으로 황윤성과는 친척이다. 황기동은 세종대왕과 관련된 유물을 1,500여점이나 수집해 세종대왕기념관에 기증했고, 또 금속 병기의 수집에도 일생을 바쳐 육사박물관의 전시품에도 크게 기여한 분이다. 말년에는 충북 괴산에서 ‘괴산요’란 도자기 가마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나이는 황기동이 대선배였으나, 창원 황씨의 족보상으론 황윤성이 할아버지 항렬에 해당하여 서로 왕래가 잦았다. 좋은 물건을 가지고 왔어요.” 물건의 가치를 한 눈에 알아본 황기동은 그 즉시 파편을 가지고 송수복을 찾아갔다. 송수복은 도자기 수리에 있어서는 한국 최고의 기술자였다. 파편들의 짝을 서로 붙인 다음, 구연부의 떨어진 부분은 석고를 떠 형태를 채워 넣고는 그림을 그려서 복원하였다. 9개월이 지나 수리가 완료되자, 형태가 완전한 걸작품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탄생하였다. 기분이 좋아진 황기동은 황윤성에게 45만원을 주었다. 당시 시골에서 쓸만한 집이 15만~20만원 정도이고, 30만원이면 비교적 좋은 집을 살 수 있었다. 황윤성은 깜짝 놀랐다.“아니, 이렇게 많은 돈을 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송구한 마음이 든 황윤성은 5만원을 세어 다시 내 놓았다. 하지만 황기동은 굳이 사양하였다. “아니야, 이 물건의 값어치는 알 수 없으나, 가게도 장만하고 살림에도 보태쓰시오.”

   그 후로도 황윤성은 깨진 도자기 값으로 너무 많은 돈을 받았다고 생각해, 황기동의 집에 갈 때마다 미안스럽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황기동은 약 2년을 소장하면서도 언제나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거 좋은 물건입니다. 그리고 골동은 자기 집에 4~5년은 소장해 보아야 진위도 알 수 있고, 또 값어치도 압니다.” 세상의 물건에는 때에 따라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다. 수리를 통해 다시 태어난 명품, 분청사기철화어문호은 황기동이 2년 가까이 소장하다가 서산의 해미에서 염전업을 하던 박종상에게 옮아갔다. 박종상은 그 지방의 부자로 통하던 사람으로 골동품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해일이 크게 일어나 염전이 쑥대밭이 되었다. 손해를 커지고 자금난에 빠지자, 박종상은 이 항아리를 팔겠다고 소문을 냈다. 그러자 매가 꿩을 낚아채듯이 이 명품 항아리를 차지한 사람은 남궁익 혹은 김두환이다. 인사동에서는 김두환이 호암미술관에 넘겼다고 알려져 있으나, 분청사기 명품전에 출품된 분청사기철화어문호을 보고서 남궁익은 황윤성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자네, 이 물건 알지?”“그럼요, 내가 매포에서 조각들을 직접 샀는데요.”“그래, 이 물건은 내가 삼성에 넣어 비로소 물건이 된 거야.” 이 분청사기철화어문호은 삼성에 양도된 후 보물 제 787호로 지정받았고, 현재 호암미술관 명품관에 진열되어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도록의 해설을 살펴보면 잘못된 내용이 많다.

     2001년 8월, 호암갤러리에서 개최된 〈분청사기명품전Ⅱ〉의 도록에는 “목이 전부 수리되어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는 것이 유감스러운데…”라고 되어있다. 잘못된 내용이다. 목의 전부가 아니고, 구연부 쪽으로 은행잎 크기 만한 조각이 석고로 수리되었고, 동체 역시 5~6조각이 짝을 찾아 복원되었음을 이 비화를 통해 밝히는 바이다. --끝--

※참고 자료
1)황윤성 선생의 증언(2002년 11월 26일, 인사동 식당, 011-9993-6778)
2)분청사기철화어문호의 보물 지정 보고서
3)「분청사기명품전Ⅱ」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