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목록으로
  산은 강을 넘지 못한다

  7할 이상이 으로 둘러싸인 한반도에 자리잡은 우리에게 산은 곧 삶의 고향인 동시에 죽음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양지바르고 아늑한 산자락이면 으레 크던 작던 마을이 들어서 있고, 우리는 산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먼 할아버지 대부터 조상들의 뼈와 살을 산에 묻어 왔기에, 산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포용한 잉태지(孕胎地)이기도 하다. 아울러 조상의 영혼이 숨쉬는 성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면 거대하게 굽이치는 산맥과 산줄기 사이의 조그만 땅에 오밀조밀 모여 사는 우리의 작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저 산의 커다란 품에 안겨 그 정기를 받아서 살 뿐 절대 자연에 대하여 강자일 수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북한산과 관악산은 한강을 마주보고 있지만 근본 뿌리는 전혀 다른 산이다."
  "무슨 소리야. 두 산 모두 광주 산맥에 속한 산으로 금강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북한강을 건너 북한산에 이르고, 다시 남쪽으로 뻗어 한강을 건너 관악산과 광교산으로 이어졌어."
  싸우지 말자.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북한산과 관악산은 비록 가까이 마주보고 있지만, 뿌리는 몇 천리나 떨어져 있는 즉 촌수(寸數)가 매우 먼 산이다. 산과 산으로 이어진 산맥은 강이나 내(川)를 만나면 무조건 멈춘다. 그러므로 강을 사이에 두고 지척에 있는 산일지라도 근원만은 서로 다른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산맥은 강을 건너거나 강 아래로 이어지지 않는데, 우리는 마치 장백, 마천령, 함경, 낭림, 강남, 적유령, 묘향, 언진, 멸악, 마식령, 태백, 추가령(구조곡), 광주, 차령, 소백, 노령산맥 등에서 보듯 산맥이 제멋대로 강을 건너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잘못 배워왔다. 이런 산맥의 구분과 명칭은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小藤文次郞)에 의해서 명명되었다. 그는 19세기 후반부터 감행한 한국의 지질조사를 바탕으로 1903년 「An Orographic Sketch of Korea(조선의 산악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논문을 쓴 배경에는 조선을 합방한 후에 금을 비롯한 지하자원을 수탈하고자 땅 속에 흐르는 광맥을 산맥인 것처럼 표시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옛 지도는 바로 '산줄기 지도'라 할만큼 정확하게 산줄기를 따라 이어지고, 강과 바다를 만나면 산맥이 끝남을 확실하게 표시해 놓았다. 두만강의 땅 끝에서 뻗어 목포의 유달산에서 멈추고, 신의주 앞산에서 시작하여 부산의 금정산까지 연결된 능선을 한줄기로 연결시켜 놓았다. 그런가 하면 언뜻 스쳐보아 산줄기가 없을 법한 낮은 산능선까지도 세밀하게 측정하게 뚜렷이 산줄기를 그려 놓았다. 아울러 산줄기에 의해 구별되는 물줄기도 시작은 어디이며 어느 고을을 거쳐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자세히 그려 놓았다.

  신경준(申景濬)이 작성한 『산경표(山經表)』는 옛 지도에 나타난 산맥을 문헌으로 정리한 책이다. 전국의 산맥을 하나의 대간(大幹),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규정하고, 여기에서 다시 가지처럼 뻗은 기맥(岐脈)까지 족보책을 엮듯이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산맥의 이름과 순서는 (1)백두대간(白頭大幹)(2)장백정간(長白正幹)(3)낙남정맥(落南正脈)(4)청북정맥(淸北正脈)(5)청남정맥(淸南正脈)(6)해서정맥(海西正脈)(7)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8)한북정맥(漢北正脈)(9)낙동정맥(洛東正脈)(10)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11)한남정맥(韓南正脈)(12)금북정맥(錦北正脈)(13)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14)금남정맥(錦南正脈)(15)호남정맥(湖南正脈)이다.

  산경표를 살펴보면,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뻗어내린 한반도의 중심 뼈대를 이루며 모든 물줄기를 크게 동서로 양분하는 산맥이다. 정맥은 대간에서 가지쳐 나온 산줄기로 큰 강의 유역 능선, 즉 큰 강이 발원하는 곳이다. 따라서 정맥은 산줄기의 높이, 규모 등에 관계없이 아무리 낮고 미약한 산줄기라도 그 끝까지 표현하였다.

  산과 물은 음과 양의 관계로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야 전체가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산의 우뚝함은 물의 깊숙함과 대조되어야 더욱 뚜렷해지고, 산의 고요함과 물의 흘러감이 어울러져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풍요로워진다. 따라서 큰 산줄기인 정맥은 큰 강과 내(川) 그리고 깊은 골짜기가 생기는 물의 발원지로 대체로 특정한 산에서 시작해 강 하구의 해안선에서 끝나고, 작은 산줄기인 기맥은 도시와 마을을 형성하며 강과 내 앞에서 멈춰선다. 절대로 산줄기는 강이나 내를 건너뛰는 법이 없고, 물줄기 역시 산을 넘지 못한다.


<사진 : 백두대간>

산에도 조상이 있다